영화 리뷰 (스포 있음)
장르란 무엇인가? 프랑스의 철학가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는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예술가와 수용자 간의 어떤 묵시적인 계약에 의해 공유되는 일단의 관례와 규약’을 장르로 규정했다. 장르는 저마다 공통된 특성, 즉 ‘관례와 규약’이 있다. 가령 추리물에는 항상 미스테리한 사건과 진상을 파헤치는 주인공이 나온다. 신선한 재미를 위해 관례에 변주를 주는 건 좋지만, 관례를 아예 무시해 버리면 사람들이 작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미스테리한 사건이 없는 추리물은 사람들에게 ‘추리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두 개 이상의 장르를 융합할 때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서로 다른 장르가 조화를 이루면 신선한 재미를 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개봉 전 슈퍼히어로 장르와 호러 장르의 융합을 예고하며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강력한 마법사 ‘닥터 스트레인지’가 빌런 ‘스칼렛 위치’로부터 마법 하나 쓰지 않고 도보로 도망치는 장면은, 호러 영화에서는 빠질 수 없는 연출이지만, 전작에서 보여준 닥터 스트레인지의 다재다능함을 부정하며 팬들의 몰입을 방해했다. 결국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슈퍼히어로 영화로서도, 호러 영화로서도 매력을 어필하는 데 실패했다.
<베테랑 2> 또한 마찬가지다. <베테랑 2>는 코미디 영화이자 스릴러 영화다. <럭키>, <극한직업> 등 범죄라는 소재를 사용한 코미디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벼운 위기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악역 또한 익살스럽거나 어딘가 허술한 면이 있어 사건이 가볍게 마무리돼도 위화감이 크지 않다.
하지만 <베테랑 2>의 악역 박선우(정해인)는 ‘익살’과 ‘허술’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치밀한 계획으로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사이코패스 살인마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처럼, 종국에는 서도철(황정민)이 아들과 죄 없는 일반인 중 한 명의 목숨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든다. 이러한 서스펜스는 서도철의 팀원들이 납치된 아들을 구하고, 서도철과 박선우가 익살스러운 전투를 벌이면서 끝난다. 사적제재를 둘러싼 딜레마, 아들과 일반인의 목숨 사이의 딜레마는, 속된 말로 ‘얼렁뚱땅’ 마무리된다.
<베테랑 2>는 분명 재밌는 영화다. 배우들의 연기는 극에 몰입할 수밖에 없게 만드며, 연출도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준다. 그럼에도 <베테랑 2>를 고평가 하지 않는 이유는 코미디 장르와 스릴러 장르의 조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베테랑 2>의 기승전결에서 ‘기’와 ‘결’은 코미디 영화, ‘승’과 ‘전’은 스릴러 영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작중 분위기 전환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는 작품의 주제 의식을 퇴색하고 작품의 완성도를 깎아 먹는 결과를 낳았다. 결말까지 스릴러 장르의 분위기를 이어갔다면 좀 더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