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겁쟁이였다. 도망치지 않았을 뿐

남편의 시선

by 박현아

병원에 가던 날이면 남편은 유난히도

말이 없어졌다.


하루 종일 말을 하고 떠들던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무정자증이라는 말을 들은 뒤로는

그는 겁이 더 많아졌다.


원래 겁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그제야 다시 알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환채취술을 하는 날이

그의 인생 첫 수술이었다고 했다.


수술대에 누워

가만히 천장 조명만 바라보다가

눈을 감으면 너무 무서웠다는 그에게

나는 무슨 말을 건넬 수 있었을까.


마취가 되기 전,

눈을 꼭 감고

건강한 정자만 나오게 해달라고

부지런히 기도했다고 한다.


아빠가 되게 해 달라는 말보다

먼저 했던 기도였다.


수술이 끝난 뒤,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그는 비로소 숨을 쉬었다고 했다..


“아빠, 건강한 정자들이 많이 나왔어요!”


아래의 묵직한 통증보다

마음에 오래 내려앉아 있던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간 느낌이었을까.


정자는 총 다섯 앰플이 채취되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집에 돌아와

생각보다 괜찮다던 그는

샤워실에 들어가 한 참을 있다 나왔다.


아픔을 숨기는 사람이라기보다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혼자 견디는 사람처럼 보였다.


다섯 개의 앰플 중

우리는 단 두 개를 사용해

이 년의 난임시간을 버텼다..


매번 이식이 끝날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앰플이 하나 줄었을 때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계산했다.


남은 시간,

남은 가능성,

다시 무너질 확률을.


1월에 아이를 보내고 마지막 이식을

결심했을 때,

그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했다.


이번에 해보고 안 되면

최소 2년은 쉬자고.


서로의 몸을 돌보고 나를 먼저 돌보자고.


다시 아이를 잃을까 봐,

또다시 내가 수술대 위에

혼자 누워 있어야 할까 봐

그는 많이 무서웠을 것이다.


그때는 마지막이라고 불렀지만

그것이 시작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마지막이라 여겼던

두 개의 배아는 쌍둥이가 되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의 인생으로 들어왔다.


돌이켜보면

그는 처음부터 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무서웠고, 망설였으며,

몇 번이고 언제 든 뒤 돌아보고 싶어 했던

사람이었다.


병원에 가는 날이면 괜히 말수가

줄었고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괜찮다는 말 대신에 잠시 쉬면

안 되겠냐고 조심스레 묻던 사람이었다.


두려움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 두려움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을 뿐.


그는 용감해지지 못한 채

도망치지도 않았으며

그 자리에, 내 곁에 남아 있었다.


그것이 어쩌면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선택이 아니었을까.


그는 겁쟁이였다.

다만 도망치지 않았을 뿐이다.






#난임

#시험관시술

#무정자증

#남성난임

#난임부부

#남편의시선

#아빠의마음

#부부이야기

#에세이

#도망치지않은사람



작가의 이전글몸이 아니라 마음을 조리해야 했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