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기념하여 쓰는 감사 일기
나는 11월에 태어났다.
무더위가 물러가고, 내가 유독 무서워하던 벌레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면 곧 생일이 온다는 생각에 늘 마음이 들떴다.
가을과 초겨울이 이어지는 그 시기를 좋아했고 아직도 좋아한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이를 조금 더 먹고 나니 찬바람은 이제 반갑기보다 묘하게 겁이 난다.
‘이렇게 또 시간이 지나가는구나.’ 아쉬움이 가슴을 스친다.
아이를 낳고 난 뒤, 생일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생일은 오직 내가 축하받는 날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부모님, 특히 엄마가 제일 떠오른다.
그날은 엄마가 가장 힘들고 용감했던 날이다.
엄마는 나를 임신했을 때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몸이 약해 병원에 누워 지내기도 했고, 크게 다치기도 했다고.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듣기 싫어서 딴청을 피우곤 했다. 그 말속에서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젊었던 시절의 엄마에게 큰 공감을 해주지 못한 것이 죄송하다.
요즘도 매일 통화하고, 매일 내 아이를 키우며 겪는 희로애락을 엄마한테 주절주절 털어놓는 나.
그런 나를 보며 애처럼 바라보는 우리 엄마. 마치 눈으로 '다 지나간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우던 시절의 엄마를 지금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더 많이 공감하고, 더 많이 응원해주고 싶다.
"엄마 지금 잘하고 있어, 나 정말 잘 크고 있어."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최근 유난히 마음이 가라앉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유를 붙이면 덜 불안할 것 같아 여기저기서 원인을 찾다가 결국 인정했다.
아직 내 마음이 성숙하지 않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파도 같은 우울일 뿐이라고.
그러던 오늘,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피아노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 마지막으로 배웠던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 악보를 펴고 오랜만에 손가락을 올렸다.
“도, 도, 솔, 솔, 라, 라, 솔...”
가만히 소리가 흘러나오자 나는 몇십 분 동안 그대로 자리에 앉아 피아노를 쳤다.
그러다 울컥했다.
엄마가 어린 시절 겪었던 고단한 삶 때문에 너무 원했지만 해보지 못한 것 중 하나가 피아노였다.
‘나는 못했지만 내 아이에게는 꼭 시켜줘야지’ 하고 나에게 시켜준 피아노.
그 때문에 엄마와 갈등도 많았고 나에게는 짐이자 애증의 대상이었던 그 피아노가 오늘은 나를 치유했다.
얽히고 무거웠던 마음이 하나씩 풀리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 엄마는 열등감을 채우려고 나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삶이 힘들 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쉼표를 피아노를 통해, 책을 통해, 많은 것들을 통해 잘 이겨내는 사람으로 키워주고 싶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피아노를 치고 의자에서 내려와 바로 브런치에 로그인하여 이 글을 쓰고 있다.
생일이 다가온다.
요즘 흔들리는 마음으로 위태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행복하다.
나를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고 위하는 내 가족과 부족한 나를 잘 따라주는 토끼 같은 아이가 있어서 이렇게 하루를 살아낼 수 있어서 그 사실만으로 감사하고, 행복하다.
피아노를 칠 수 있어서, 글을 쓸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
역시 나는 11월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