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초대받고 싶은 영어

by 호박씨

'주재 동안 어떤 순간이 가장 행복했을까?'라고 한다면, 따뜻한 시선으로 주재 생활을 되돌아봐야 할 터이다. 아직은 쉽지 않다.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보다는 '네가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를 목표로 삼는 것이 택한 삶을 바라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로서 거절당하고, 인정받지 못했을지언정,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아이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엔 외로웠다. 내가 외로웠다. 좀 더 나은 네가 되어야 해라는 마음으로 나를 다그치듯, 좀 더 나은 너희들이 되어야 해라는 잣대에 재단되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세상에게 다그침 당하지 않게 하려고, 악역을 자처했다. 다그치고 또 다그쳤다.


맨디는 주재 생활에 기한이 없었다. 1인 법인장인 그녀의 남편은 임기 없이 독일에서 일했다. 능력 있는 그가 일을 잘 해내는 만큼, 맨디가 대만으로 돌아갈 기약은 없었다.

맨디의 아들 윌리엄은 그야말로 엄친아였다. 뭐든 잘하는 아이였고, 그냥 잘하는 것이 아니라 뛰어나게 잘했다. 맨디 언니의 바람을 넘어서서 언니조차 부담스러워하는 아이였다.

아들이 윌리엄처럼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윌리엄처럼 되면 네가 행복할 거야라고 생각했다. 롤모델이 있다면 모든 일은 간단해진다. 따라 하기만큼 쉬운 일이 또 있을까?


그런데, 롤모델로 삼은 이는 TV나 영화 주인공처럼 Happily ever after, 영원히 행복한 삶은 사는 것이 아니다. 삶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아이들이 나를 엄마라 불러주니 엄마일 뿐, 난 그들의 인생 선배도 인생 친구도 아녔구나 싶다. 너의 행복을 바라서 하는 말이라며 따라 하길 종용했지만, 따라 해 본들 영원한 행복이라는 것이 아이에게 주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 엄마, 왜 난 초대 안 해? 나도 가고 싶어."

스페인 아이 D의 생일이었다. D 엄마는 아이들의 하교 시간에 맞춰서 교실 앞에 서있다가 생일 초대장을 나눠주었다. 아이가 셋인 엄마는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다. 일곱 살 나이가 많은 D의 언니, 오빠가 있고 유럽 다른 지역에서의 주재 생활이 길어 국제 학교 경력이 긴 엄마인데 저런 행동을 하는구나 싶었다. 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교실 앞에서 얼음이 되어 서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초대를 받지 못했다.

독일 온 지 1년 남짓이 되었을 때였으니, 아이는 이제 말을 좀 알아듣고, 수업을 가까스로 따라가고 있었다. 어느 세월에 친구를 사귀겠는가? 같은 학년의 한국 남자아이들은 2명이었는데, 한 명은 엄마가 계속 카운슬러에게 호출을 당하는 유명한 문제아였다. 다른 한 명은 주재원 엄마들 사이에서 회자가 되는 유명한 문제적 엄마의 아이였다.

1년 만에 그 아이들과의 사교 관계를 포기했다. 선택지가 둘인데, 둘 다 선택할 수가 없는 이번 대통령 선거 같은 상황과 들어맞는 때였다.

입학 시기가 비슷한 윌리엄과 친해지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아이보단 내가 더 노력했다. 윌리엄은 이번이 두 번째 국제학교이고, 독일 생활 3년 차이다 보니 영어는 청산유수였다.

" 엄마, 윌리엄도 초대받았는데, 왜 난 초대 안 했어? "


답을 주고 싶었다. 해결해주고 싶었다.

오만가지 욕이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D 엄마가 일요일마다 가는 교회가 싫다. 종교인들 욕을 해댄다. 스페인 사람을 비롯한 유럽인들은 왜 저렇게 개인주의적일까 생각했다. 애가 셋이여도 저러니 하나였으면 정말 봐주기 힘들었겠다.

뒷 자석에 탄 아이가 다시 묻는다.

" 엄마, 나도 가고 싶어. D 생일 파티 가면 안돼? "


엉뚱한 답을 한다.

" 너 생일에는 반 아이들 한 명도 빼지 말고 모두 다 초대하자."

" 왜? "

" 네가 속상한 만큼 누군가 속상할 일 만들지 말자. 우리 그러자. 알았지?"

봄에 엄마는 너의 생일에 대한 계획을 짰다. 너는 겨울 아이인데, 엄마는 봄부터 너의 생일을 떠올린다.

겨울이 지나고 나온 반가운 독일 봄햇살이 쏟아지는 하굣길 3시쯤이었다.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어서 좋았고, 운전을 하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길은 운전이 미숙한 나에게 적당하게 한산했다.

모든 것이 좋은 날인데,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막막함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독일도, 유럽도, 주재도, 국제학교도 싫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돌아감이 안된다면, 잠시 들러서 인천공항에 내려 대성통곡 한바탕을 하고 싶었다. 그렇고 나면 행복해지진 않아도 슬프진 않을 것 같았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차로 5분 거리다. 마음은 8000km 떨어진 한국으로 도망을 갔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빈 집에 아이와 돌아오니 정적이 나에게 말을 건다.

어딜 도망가려고....

그래서, 아이에겐 말하지 않았으나 홀로 마음을 먹었다.

영어는 잘해보자.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영어는 잘해보자. 그렇고 나면 덜 막막할 것 같다.

생일 파티에 초대받으려면 영어를 해야 한다는 이 희한한 공식은 독일 도착 1년 차 처음 맞던 봄에 만들어 내었다. 공식은 사실 오류 투성이다. 롤모델 삼은 아이를 따라 하면 행복해진다라는 명제와도 다르지 않았다. 틀린 명제와 잘못된 공식들과 함께 하니 외롭진 않았다. 그들을 친구 삼으니 슬프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행복도 자취를 감췄다. 영어 여정 속에서, 행복은 도처에 있었을 텐데 단 하나의 조각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틀린 명제와 잘못된 공식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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