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 Volunteer는 free가 아니다.

by 호박씨

둘째가 실컷 준비를 잘하고는 운다. 셔틀버스를 타기 싫다는 이야기를 한다. 교정이 넓어 아침 등교 시간에 초, 중고가 있는 정문 근처에는 유치원 건물동으로 가는 셔틀버스가 있다. 유치원 쪽 후문에서 오는 초중고등학생들을 싣어다 나르기도 하고, 딸아이처럼 정문에서 유치원생들을 나르기도 한다.

첫째가 엘레멘터리, 초등학교 건물로 옮기고 나자, 유치원 건물은 사실 아침 시간엔 얼씬 하기가 싫다. 유치원 카페테리아는 힘든 공간이었다. 입학 첫날 방과 후 담당자에게 한방 먹은 것도 국제학교 유치원이었다.

( X 같은 방과 후 담당자를 만났던 국제학교 첫날 이야기는 여기--> https://brunch.co.kr/@a88fe3488970423/53) 혼자 아이들 첫 상담을 가야 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생각하던 곳도 유치원이었다.

둘째의 학교 가기 전 루틴 같았던 울음은 잦아들었지만, 그래도 가끔 컨디션이 별로인 날도 있다. 그러면 둘째를 데리고 엘레멘터리 정문으로 걸어간다. 초등학교가 나오는 학교 정문을 통과해 넓은 교정을 지나면 유치원으로 다다른다. 버스 타기가 싫어서라는 이유를 댔으니, 마음을 읽어주는 시늉을 해야 둘째와 좋은 헤어짐을 할 수 있다. 그래야 호박씨의 하루도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다.



초, 중, 고등학교가 한데 있는 International School이니, 둘째만큼 조그마한 동양 아이도 있지만, 루이뷔통 백 쇼퍼백을 매고 긴 금발을 휘날리는 보그 모델 같은 고등학생들도 있다. 그 아이들 모두 한데 정문을 지나간다. 저 앞에 한국 학년으로는 6학년쯤 되어 보이는, Uppper school 6th grader 여자아이가 보인다. 국제학교 외국 아이들 사이에 섞여있는데 아이의 기운이 거침이 없다. 가만히 그 아이를 쳐다보니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피하지 않고 눈을 빤히 들여다본다. 서양인 같다. 한국 아이들은 어른이 쳐다보면 눈길을 피한다.


주문을 외워보았다. 지금 내 손을 잡고 가는 이 작고 통통한 손을 가진 딸의 4년 후 모습은 저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동공의 통과하는 저 이미지와 같은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날 아침 먹은 마음에 진심이었다.

그래서 또다시 아침, 교정을 가로질러 둘째를 데려다준다. 침을 꿀꺽 삼키며 유치원 건물로 들어선다. 아이만 쳐다보고, 아이만 듣는다. 유치원에서의 서툴고, 어색하던 나와 나의 영어는 흘러간 과거다.


1년여간 학교 봉사란 봉사는 다 했다. 작은 아이 교실에서 필요한 봉사에는 호박씨가 있었다.

동아시아 아이들에게 가장 큰 명절인 구정, Lunar new year 가 되면 유치원 담임 선생님이 시그널을 보낸다. 다.

" 행사할 거지? "

설날에 대한 설명을 하고, 앞에 나가서 영어로 발표를 하는 일은 학교가 아니었다 해도 질색할 일이다. 게다가 아이 반이라니. 상상만 해도 살 떨릴 일이다. 그래서 준비라는 걸 한다.

일단 PPT를 잘 만든다. 그림이 장땡이다. 유치원생들에게 글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미국계 국제 학교 유치원은 진도 나가기를 지켜보려면 속에서 천불이 난다. 돌이켜 보면 그런 찬찬한 진도 덕분에 부지런히 잘 따라갈 수도 있었다 싶다. 한국의 속도, 한국 학교가 무섭지 한국 교육에 비하면 사실 upper 스쿨 이전의 미국 교육은 최강 거북이 속도다.

PPT에 관한 설명, 장당 1 문장의 설명은 아이에게 외우라고 하면 된다. 반에 한국 아이가 3명이 되던 해부터는 아이들을 시켰고, 그 전에는 문장들을 써가서 흘깃흘깃 보며 읽곤 했다. 설날에 대한 설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반 아이들에게 어필을 하려면, 우리 딸하고 말 좀 많이 하고 지내렴 하는 마음을 담뿍 닫아 미니 한과와 동전 초콜릿을 준다. 복주머니를 한국에서 공수할 여력이 되면 금상첨화다.

이 이벤트를 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계획하고, 담임 선생님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이 나에게는 영어 공부였다. 국제 학교 선생님과의 의사소통만큼 공짜 영어 수업이 어딨단 말인가?



이런 일련의 과정들의 이름은 Volunteer다. 자원봉사다.

대가가 없는 일은 세상에 없다. 마음이 찬란해지는 파도 소리와 눈을 밝히는 낙엽의 풍경은 그 자리를 향해 한발 한발 뚜벅뚜벅 걸어온 발의 고생이 그 대가다.

" 호박씨는 정성이네요. 그런 일을 Volunteer로 챙겨서 하시는군요."

학교에서 설쳐대는 호박씨의 귀에 흘러 들어오는 이런 말들에 사실 답해주긴 쉽지 않다.

행동 하나하나에 값어치를 매긴다. 대가를 건다. 종교가 없으니 신에게는 아니고 세상의 기운, 천지의 에너지에게 대가를 요구해본다. 내 손을 잡고 눈물이 살짝 그렁한 채로 교정을 건너가는 딸아이가 언젠가는 햇살 같은 웃음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영어를 구사하며 외국애들과 정문을 통과하는 날이 오는 것. 그것이 내가 원하는 대가다.


학교에 자꾸 가서 부딪히면서, 누가 우리 아이가 합이 잘 맞는지 가늠해본다. 딸아이는 선생님을 잘 따르니, 상담 날이 되면 여느 엄마들처럼 담임만 만나지 않는다. 미술 선생님과 음악 선생님도 교실 문을 열어두고 소통을 하는 날이 상담의 날이다. 그들과 소통하기가 어렵다면, 아이가 아무리 선생님들과 평소에 친하다고 해도 그 교실 문을 두드리기 망설였을 것이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내 Choir 합창단에 있었는데, 음악에 진심인 아이는 음악 선생님과의 제대로 친했다. Choir 합창 콘서트 날, 한 소절의 선창은 딸아이가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품어볼 정도였다. 물론, 딸애가 하진 못했지만,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콘서트 날까지 두 달 여가 남은 날, 집에 오자마자 아이가 노래 한곡을 알려주며 가사를 20보 정도 출력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이 노동은 엄마 몫이다. 콘서트가 곧인데 아이들이 가사를 외우지 못하니, 점심시간이 끝나고 달아 오는 Recess 쉬는 시간 운동장에서 가사를 나눠주고 보충 수업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아이가 세운 계획인데 엄마인 호박씨의 자원봉사에는 신바람이 따라붙는다.

한국에 오기 직전 마침 상담 season이 있었다. 내 눈엔 음악 선생님은 깐깐하고 예민한 금발머리 아티스트라 어렵기만 하다. 그런데 구역 아이는 음악실을 들려야 한다고 한다. 담임 만났으면 됐지 싶지만, 아이의 기운을 말릴 수는 없다. 열린 음악실 안에는 외국 부모와 아이들이 바글바글하다. 상담 날은 각종 교과 교실의 문이 열려 있기에, 음악 선생님도 음악실 안에 부모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악기와 작품들을 구비해두고 방문을 기다린다. 다른 부모들과의 이야기가 끝나자, 다가가 한 달 뒤 우린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말해주었다.

그녀가 말한다.

호박씨의 딸이 가서 아쉽다고, 호박씨 딸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라고 말한다.


자원봉사 Volunteer를 자원한 것은 맞는 말인데,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는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 절에 진심이신 시어머니가 종종 복을 짓는다라는 문장을 사용하시곤 한다. 내가 짓는 복이 돌아 돌아 언젠가는 딸아이에게 차곡히 쌓이기를 바라는 마음에 국제 학교 자원봉사에 진심이었고, 봉사에 필요한 영어에 진심이었다. 봉사에 필요한 생활영어를 하겠다고 독일에서 내가 다닐 영어학원은 없었다. 없었을 것이다. 알아본 적이 없다. 다만 지속적으로 부딪혀 메커니즘을 익히고 익숙해짐으로써 말실수할까 봐 두려운 마음을 부셔댔다. 그렇게 정문을 들락날락거리고, 널따란 교정을 드나들며, 4년 후, 5년 후의 딸아이를 그렸다. 아침에 내 눈에 들어왔던 그 한순간을 내내 사진처럼 간직하고 살았다.

그러니, 그 순간이 선물처럼 다가왔다. 3번째 코로나 봄이다. 다다음 봄엔 아이가 어떤 모습일지 그려보아야겠다. 그리고 복을 지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국제학교 학부모가 체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