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 학부모가 체질

by 호박씨

어김없이 흐린 날이다. 흐리지 않을 날을 찾기가 더 힘든 독일의 겨울이구나 했는데 알고 보니 그 겨울은 유럽 30년 중 해가 열흘 나온 신기록을 새운 해였다. 날은 흐리고 손님은 없다.


Mandy와 나는 Bookstore를 지키고 있다. 교내 북스토어는 초등인 Elementary school과 중고등인 uppper school을 연결하는 통로에 위치한다. 북스토어이지만 주 업무는 책 판매는 아니고, 학용품 판매와 학교 스포츠팀인 Frankfurt Warriors 관련 용품들을 판다. 스포츠 원정 경기 참여 신청서와 셔틀버스 티켓 판매도 빼놓을 수 없는 업무다.

이렇게 손님이 없는 날은 맨디와 수다를 떤다. 맨디의 세 남자, 남편과 두 아들에 대한 불만 릴레이가 펼쳐진다. 딸이 있어서 부럽다는 말로 이야기 포문이 열린다. 우리 딸 언제든지 대여 가능하다는 농담을 그녀에게 건네고 그녀가 웃는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대만인인 맨디가 나보다는 영어에 편안함을 느끼겠지 싶어 부러웠다. 맨디의 아들 W가 국제학교가 다닌 지가 3년 차이니, 이제 1년을 채워가는 우리 아들과는 다르게 제 나라 학교 다니듯 학교 다니는 는 것도 부러웠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부러우면 베끼면 된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복사를 선택해 본다.


작은 아이인 딸은 국제 학교 유치원을 등원하는 아침마다 울었다. 처음엔 교실 앞에서 울었고, 다음엔 교문 앞에서, 그리고 나중엔 집 현관을 나서며 울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보고, 비위도 맞춰보고 협박도 해본다. 끝내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에 있을까 아이를 관찰하고 생각한다. 울고 가는 아이에 대한 여운과 생각 때문에 걸어서 5분 거리에 집으로 발이 떨어지질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은 한 가지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작은 아이는 한국의 어린이 집에서도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자 했다. 리더의 성향이랄까, 욕심이 많다 할까? 국제 학교의 Teacher's pet, 선생님의 칭찬에 기운 받으며 학교 생활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범생이다. 만 3세가 그렇게나 계산을 하고 유치원을 다니냐고 하겠지만, 아이가 둘이다 보니 어떤 성향이 있는지 비교가 되고, 파악도 된다.

그리하여, 결심이란 것을 하게 된다. 호박씨는 국제학교 입학 첫날 크게 한 방을 먹었다. 그렇다고 해서 물러날 곳이 있냐면 그렇진 않다. 아이는 어리고, 아침마다 울며, 나의 영어는 적어도 내가 알기론 부러진 영어는 아니다. 졸긴 했어도 말이다. 그러니 어깨를 펴보는 거다. 눈도 크게 뜨고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탈출구를 찾아보자.


유치원 카페테리아는 대여 다섯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원형 테이블이 10여 정도 있는 식당이다. 아이들의 점심식사 공간이며 아침 부모모임이나 설명회도 가끔 열린다. 아이를 달래 교실에 넣고 카페테리아에 고개를 밀어 넣어보니 한가운데 테이블은 아침마다 같은 멤버들이 채우고 있다. 입양한 아시안 남자아이 둘을 가진 히피 풍 쇼트커트의 영국 엄마, 네덜란드인 치고는 체구가 작아도 한참 작은 의사 엄마, 새카만 머리의 히스패닉계 미국 엄마, 그리고 호리호리한 금발의 미국 대사관 엄마, 그렇게 네 명이였다.

마침 의사 엄마와 영국 엄마의 아이들이 작은 아이와 같은 반이어서 엉덩이를 디밀어 테이블의 한 자리를 차지해본다. 의사 엄마도, 영국 엄마도 눈매가 다정한 이들이지만, 테이블의 합석에 대한 첫날의 후기는 아래와 같다.

" 수능 영어 듣기 평가보다 힘드네."

영국 엄마에게 하소연을 하니 그녀가 시원하게 웃었다.

" 너 재밌는 사람이구나. "

응. 난 재밌는 사람이야. 스피킹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는데, 영어로 재밌게 말하고 싶은데 깔린 자리가 마음에 안 들어.

이렇고 보면 딸의 성격은 호박씨를 닮았나 보다. 영국 엄마의 말에 용기를 얻는다. 나의 바람을 그녀가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각진 어깨에 호탕한 목소리를 가진 그녀도 아시안 아들을 가진 엄마일 뿐이다. 그녀의 두 아이들 둘 다 국제학교에서 지내기 어려워하는 탓에 그녀는 아이들을 내려주고 나면 집으로 향하지 못하고 학교를 맴돌며, 카페테리아에 앉아 수다로 염려를 밀어낸다.


그녀와 사정은 같지만, 방법은 달라야 한다. 입장을 바꿔보자. 유치원 카페테리아에 아이들을 내려주고 앉았다. 늘 테이블을 지키는 멤버 4명이 오늘 아침도 수다를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 한 외국인 엄마가 나타나 서툰 한국어를 구사하며 그 테이블에 낀다. 당신은 외국인 엄마의 한국어 실력을 배려해줄 여유가 있는가?

국제학교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고 난 후의 호박씨 기에 오늘의 그녀에게 먼저 손 내밀 테다. 지금도 집 주변에서 자주 눈에 띄는 어린 아들의 유모차를 미는 인도 주재원 엄마에게 오지랖 부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국제 학교의 서양인들에게 그런 배려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각자도생이야 말로 서구인들 뼛속까지 박힌 정신으로 그들의 발전의 뿌리다. 오지랖 부리지 않음으로써 개인은 강해지고, 때론 낙오하기도 한다. 1년 넘게 맥락을 공유한 5명의 영어 능통자들로 구성되어있는 테이블엔 내 자리는 없다.

큰 아이와 같은 날 쌍둥이를 입학시킨 한국인 엄마 P가 테이블에 보이기 시작한다. P는 미국 유학파 워킹맘이다. P는 원래부터 자신의 자리가 그 테이블이었다는 듯이, 그 속에 녹아들어가 있다.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부러우면 나도 그렇게 되면 된다. 오늘이 아니어도 언젠가 그렇게 되며 그만이다.


테이블에 하루 앉아 보더니 카페테리아로 들어가지 않는 맨디가 나에게 유치원 도서관 봉사를 하자고 했다. 뮌헨 근처 아우크스부르크 국제학교 경험이 3년 있는 맨디는 국제학교는 엄마들의 Volunteer를 통해 학교 참여의 기회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맨디의 뒤를 따라 간 도서관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추고 있다.


첫째, 알파벳밖에 모르는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권해줄 책이 있다. 유치원 도서관이라고 하지만, 4개 학년이나 있는 국제학교 유치원은 도서관 장서량이 상당하다. 신간으로 들어오는 디즈니나 마블 그래픽 노블도 봉사하는 엄마가 먼저 대출이 가능하다.

둘째, 할머니 사서인 Miss. Loni와 수다 떠는 맛이 있다. Library 시간 아이들이 방문하면 카리스마가 넘치다가, 아이들이 사라지면 친정엄마뻘의 수다스러운 덴마크 할머니로 돌아간다. 아이들이 없이 조용한 도서관 일은 로니 선생님에겐 심심하고 편안한 일이라, 그녀도 나에게 말 걸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공짜 스피킹 시간에 감사했다.

게다가 유치원 터줏대감인 미스 로니에게 커피를 들고 방문하는 유치원 교사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선생님들의 인품에 대한 엿보기도 가능했다. 외국어를 사용하는 내 아이 선생님도 소통을 좋아하는 인간일 뿐이라는 시각을 갖게 되니 영어도, 학교도 한결 편안하게 느껴진다.

셋째, 반마다 정해진 도서관 시간에 도서관을 방문한다. 도서관으로의 이동시 예절과 도서관 이용 방법, 그리고 책을 접하는 과정들이 국제학교 유치원 교육의 일부다. 아침에는 울고 갔던 작은 아이가 선생님을 따라 도서관으로 들어온다. 유치원 일과 중 작은 아이는 의젓하다. 못 알아듣는 바를 해결하기 위해 이 눈치 저 눈치 보는 모양새다. 눈치로 따라 하며, 고군분투하는 아이를 보면 아침마다 터지는 울음보에 대한 내 나름의 해석과 이해가 도출된다.

이 외에도 장점이 많았다. 학교에 나를 필요로 하는 공간이 한 군데 있다 보니, 정이 들었다. 오며 가며 도서관에서 학교 사람들이 눈에 익으니, 안정감을 느낀 호박씨의 뇌는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시작한다.


맨디 덕이다. 1주일에 한번 2시간씩 규칙적으로 도서관 일을 빼먹지 않은 호박씨 스스로의 덕이기도 하지만, 일등 공신은 소개해준 맨디 덕이다. 은혜를 갚아야 하는데 생각하던 중에 맨디가 어려운 부탁이라며 입을 띤다.

" Upper school에서 학생이 학교 스포츠 팀에서 뛰려면 엄마가 봉사 시간을 채워야 하거든. 나는 봉사시간을 Bookstore 봉사로 채우고 있어. 그런데 나와 같은 조에 있는 엄마가 주재원 임기가 끝나 본국으로 돌아간다네. 혹시 네가 와서 나랑 한조로 봉사해 줄 수 있겠어? "

맨디의 아들들은 나이 터울이 커서 큰 아들은 중3이였다.

왜 어려운 부탁인가 했더니 봉사 시간이 길었다. 게다가 돈을 다루는 일이었다. 아침 10시 20분에 오프닝 준비하여 10시 30분부터 1시 반까지 북스토어를 운영하고, 30분동안 결산을 한다. 중고등학교에 있는 아이도 없고, 스포츠를 하지도 않으며, 보상도 없는 봉사를 개수를 늘릴 이유가 없다.

이건 맨디 생각이다.


이젠 호박씨 생각이다.

도서관 봉사로는 맨디와 대화는 거의 못 나누었는데, 2인 1조로 북스토어 운영을 한다니 밀접 접촉 기회다. 유학파 대만인인 맨디라면 스피킹 근육을 키워줄 스파링 파트너다.

먼저, 같은 나이의 아들이 우리 둘에게 있으니 공통 주제가 깔려 있다. 전업 주부 호박씨에게 아들이라는 주제는 전공과목이니 대화 거리가 끊이지 않을 예정이다.

둘째, 영어에 능한 맨디가 굳이 나에게 함께 그 시간을 보내자고 권한 데에는 맨디도 정서의 교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바일 것 같다. 맨디는 대만인이라 당시 전교에는 같은 국적의 학부모가 1명도 없었다. 이 정도 조합이면, 2주일에 한 번인 그녀와의 봉사는 무상 노동이 아니라 조건 좋은 기회다.


모르는 언어들에 둘러싸여 본 기억이 나에겐 없었다. 울며 가는 아이가 이해는 됐지만, 겪어 보지 않은 일에 대한 공감도는 떨어질 예정이었다. 그리하여 마음을 먹어 보았다. 아이와 함께 모르는 언어 속에서 하루를, 1년을, 5년을 지내보자. 미국계 국제학교를 임하며 아이들에게 연속적으로 보낸 신호는 '여긴 미국이고, 너희는 영어로 살 것이야'였다. 해보지도 않을 바를 어린 자식들에게 밀어붙였다간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다. 아이들의 신뢰와 배려다.

욕심이 많은 호박씨는 사랑받는 엄마이고 싶었고, 아이들을 미국인이 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호박씨의 뇌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부터 한국어는 없어. 아이들과 같은 상황에 처해보는 거야. 넘어지고 쓰러지고 실패해도, 끝내 일어선다면 그것은 성공이다. 완주점에서 본다면 완벽한 실패는 없다. 완주점에 서있다는 자체로 성공이다. 그렇게 호박씨의 영어 도전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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