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박씨 Feb 13. 2024

가족 붕괴설

한 때는 신사임당과 같은 현모양처가 꿈이었다. 선택엔 자유가 없다고 큰 아이가 요새 매일 부르짖는데,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내게 허락된 꿈을 꾸었을 것만 같다. 가보지 않은 길, 해본 적 없는 직업, 허락되지 않는 일에 대해선 꿈꾸지 않아 왔다. 

 열녀도 아니고, 현모양처도 아니다. 그저 가족이라는 이 오랜 관계에 대한 이상적인 모습에 대해서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게다. 연휴 기간 엄마가 한 솥 가득 끓여 건네준 시래기 찌개를 펄펄 끓여서 보온 도시락에 담아 왔다. 오늘 점심은 아침에 금방 해서 담아 온 밥 그리고 친정 엄마의 시래기가 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뜨끈함이 위로 밀려 들어오면 살고 싶다.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절간 같이 소용한 서른의 젊은이들이 모인 사무실에서 베어나는 서글픔과 서먹함은 시래기의 온도에 백기를 들고도 남는다. 

가족이란 이런 것이다. 피를 나누고 나누지 않고 와 관계없이, 나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대상은 딱 한 명이어도 된다. 전 지구를 통틀어 단 한 명이여도 우린 살아갈 힘이 난다. 


" 네가 내 동생을 우습게 알잖아." 

큰 시누의 뇌졸중 발병은 우리의 독일 생활 3년 차였다. 하루 이틀 안에 깨어나지 못한다면 사망선고가 내려질 예정이라고 했었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소식에 여러 감정이 솟아올랐다. 큰 시누이는 사망선고 하루전날 깨어났고, 7년이 지난 이 명절 내게 소리를 지른다. 그녀의 몸이 떨린다. 한쪽 어깨에 손을 얹고 사과를 했다. 진정했으면 좋겠는데, 쉬이 그럴 거 같지 않아 내 마음을 챙겨 먹었다. 큰 시누이에게 한 소리 들은 작은 아이가 방에서 울고 있을 것만 같다. 느낄 수 있었다. 시누이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작은 아이도 더 흥분할 것이니, 난 힘을 내어야 한다. 큰 시누를 통째 뒤흔드는 분노와 화에 말려들면 아이가 더 괴로울 예정이니 나는 흔들지 말아야 한다. 

" 형님, 죄송해요. 사과드릴게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길길이 더 소리 지르던 그녀가 물을 한 컵 마신다. 때는 이때다. 다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 제가 생각해 볼게요. 진짜 **이 아빠를 무시했는지요. 불편하셨다면 죄송해요."

그녀가 운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큰 시누는 무엇에 화가 난 걸까? 무엇이 그리 억울한 걸까? 

죽다 살아난 이의 삶에 대한 원망을 한참 듣고 나니 서글퍼졌다. 그녀가 차분해지니 얼른 방으로 가서 아이 앞에 앉았다. 

아이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이렇게 명절이 잘 지나가나 했는데, 그럴 리가 없다. 가족들은 모였지만, 빈자리는 컸다. 시누이가 셋이나 되니 사실 그들이 안 오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내겐 가족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날이 의미가 있다. 쌓인 시간과 묵은 감정을 가진 관계들을 대하면 나름 글쓰기로 철든 나를 바라볼 수 있다. 그들의 전부를 나는 받아들이겠다고 먹은 마음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소리를 내뱉던 기실 그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나는 안다. 상처가 되는 말은 그들이 세상을 살며 어디선가 주워온 날카로운 병조각 같은 존재라서, 내게 건네주고 나면 난 부셔서 갈아 마셔버릴 예정이다. 어떤 말을 하든 그건 나 때문이 아니다. 무릇 가족이라 함은 있는 그대로, 그저 받아들여줘야 하며 존재함으로써 서로에게 살아갈 힘이 되어줘야 하는 게다. 나는 그런 가족이 되리라, 그런 인연이 되며 살아갈 거라 마음을 먹었다. 

그러니 명절이야 말로 기다리던 시험대다. 5시간을 밤새워 달려 나가는 운전길은 대화할 시간이 영 부족한 남편이라는 가족과의 독대 시간이다. 늘 각자의 방에 처박힌 아이들이 해운대 시댁의 문간방 손 닿는 곳에 있어서 전 부치다 지치면 가서 비비적거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의사 남편, 의사 남자 친구, 미국 아이비리그 유학 간 딸을 통해서 피로해진 시누이들의 시간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기회다. 사는 게 누구에게나 나름의 짐이 있다 싶어 안도할 수 있다. 


가족은 붕괴되고 있다. 어머니가 남편에게 긴 통화를 하신다. 큰 시누이를 감당하기 힘드니 병원에 입원시켜야 하겠다고 하신다. 30년 넘게 의사 와이프로, 가진 자로 살아온 그녀는 정신병원 입원이란 단어를 짊어질 기운이 없다. 당사자가 원하지 않을 것이 뻔한데 어머니는 큰 시누가 부끄러우신가 보다. 다른 형제들에게, 다른 사위에서, 며느리에게 이상한 소리를 하는 정상 아닌 첫째 딸은 문제이다 싶으시다. 누군가를 헤치는 게 아니라면, 그녀의 화와 분노는 들어줘야 한다. 그녀의 감정에는 원인이 있을 터이다. 누구의 탓도 누구 때문도 아닌, 50의 중반이라는 시간을 달려오는 동안 그녀가 겪은 일들을 우린 들어주어야 한다. 

큰 누나가 안 들어가려고 할 텐데라는 남편의 말에 서늘해진다. 내게 또는 그에게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우린 서로를 어떻게 병원에 보낼지 고민할런지도 모른다. 서로를 견딜 수 있는 기준은 한없이 얕아져 우린 고통을 나눠 가질 담대함을 조금도 지니고 있지 않다. 가족이 사라지고 있다. 둘러앉아 음식을 나눠먹는 관계가 사라져 간다. 이 모든 것을 이겨낼 마법은 뜨끈한 시래기에 있을 것만 같은데. 


사진: UnsplashDat Nguye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