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박씨 Mar 25. 2024

다들 비밀 일기 하나쯤은 있으니까

20년전 경품으로 받은 디지털 카메라가 정확히 작은 아이가 원하는 카메라와 일치한다. 독일 갈 때까지는 갖고 있었던 듯한데.... 선명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동영상 촬영이 되는 손바닥 만한 디지털 카메라 였는데, 작은 아이아 놀이공원에서 울다 먹다 울다 먹다 하던 영상도 있고, 큰 아이가 퇴근한 아빠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같이 놀자고 조르는 영상도 들어있었다. 기계를 없애버리는게 아니였는데 하고 후회가 된다. 

 독일 집에서 그 카메라를 발견했을 땐 끝이 보이지 않는 독박 육아에 가까운 시일 내에 이 타국에서 미칠 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아이들이 예뻐 보인 적이 없었고, 늘 부담스럽고 불안했기에 아주 조그만 그들이 담겨 있는 그 영상을 두 눈 뜨고 바라볼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작고 예쁜 생명들에게 너무 가혹한 나였다. 그런 마음에 디지털 카메라를 독일에서 폐기하고 왔을런지도 모른다. 

서울로 우리보다 늦게 도착한 컨테이너 짐 속에 디카는 없고, 2024년 딸아이는 유행의 최단을 걷는 10대가 되어 레트로한 디지털 카메라를, 그것도 단종된 종으로 사고야 말겠다고 한다. 구정에 받은 세뱃돈은 20년전 내가 받던 월급만큼이나 들어와있다. 이 모든 숫자들이 낯설어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만 같다. 

화소가 낮을 수록 사진은 흐리게 나오고, 아이가 원하는 건 화소가 낮고 더 오래된 카메라다. 구식일 수록 좋다니, 이럴 수도 있구나. 벼르고 별러 세운상가에 들러 구식 카메라를 사들고 나오던 아이는 상가 2층에서 바라보는 낡은 철판 지붕을 보고 예쁘단 말을 한다. 그렇게 보일 수 있겠다. 희귀하고 이국적으로 보일 수 있겠다. 

비원 건너에 앉아 사진 찍기에 좋은 날씨다. 악세사리도 메뉴얼도 없는 낡은 카메라는 제대로 작동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데, 아이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테스트 해보자고 달래 세운상가로부터 멀어지지 않았다. 작동이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촉이란게 발동했다. 

나를 찍어준다. 화소가 심하게 좋아서 정지된 순간 속 나를 아주 정확하게 그려내는 사진이 싫다. 렌즈와 마주한 나는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기 때문이다. 사진이 나를 규정하는 데에 반대하는 바이다. 사진으로 말고 상대를 직접 마주하고 앉아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다면 나는 훨씬 더 매력적인 사람이다. 거울을 보고 앉아 말을 하면 스스로가 예뻐보이지만, 거울을 향해 억지 웃음이나 무표정을 지으면 과히 예쁘다 할 수 없다. 카메라가 낯설고 사진 찍히는게 맞지 않는 얼굴이다. 

신난 아이에게 맞장구를 쳐주려면, 아이가 찍은 사진이 담긴 구식 디지털 사진기의 작은 스크린을 면밀이 들여다봐야한다. 뿌옇게 필터를 삽입한 듯한 누르스름한 사진에 옆얼굴이 예뻐보인다. 감성이라 이름 붙인다. 아이는 감성이 실린 사진이라며 좋아하고, 기계도 마음에 든다며 한껏 웃어보인다. 

아이 말이 맞다. 정확하지 않으니 예뻐보인다. 있는 그대로 솜솜히 다 들여다 보이면 독일에서 얻어온 기미와 부정교합인 턱, 기름기가 빠져 거칠어진 피부결이 다 보인다. 낮은 화소 덕분에 50을 향해가는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날씨 좋은 날 세운상가 앞에 앉은 여성이 되었다. 

이 모든 건 잘 보이지 않아서 그렇다. 적당히 가리고 적당히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글로 친구가 많다. 친구라 여기는 글들이 내겐 많다. 만나 얼굴을 마주하는 이보다 쓴 글로 만나는 인연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거의 매일 방문하는 블로거가 고3이 된 딸과 싸운 이야기를 포스팅 했다. 길게 포스팅한 걸 보니 그녀는 딸에게 그녀의 진심을 해명하고 싶은가보다. 

 그녀가 종종 그녀의 두 딸의 이야기와 고3이라 안쓰럽게 느껴지는 큰 아이에 대한 포스팅을 올리는 걸 보곤 했었다. 유명 블로거니 그녀의 포스팅을 가족들이 모를래야 모를 수 없을 것이며, 아이들에 대한 글도 결국 그녀의 아이들이 읽게 되어 사단이 났다. 속속들이 아이에 대해 글을 쓰면 아이가 싫어한다. 

브런치도 블로그도 가족들 누구도 읽지 않는다. 파트타임으로 이제 막 취업한 나로썬 인간관계가 사실 가족이 다이다. 앞으로도 그럴 예정일지 모른다. 오늘의 한국을 살면서 한 번 전업 주부의 세상에 발을 디딘 이상, 사회는 구지 나이든 여성이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데에 반가워하지도 응원을 하지도 않는 터이니 말이다. 

쓰는 글의 주인공들은 가족이거나, 느슨한 지역 이웃들이 대부분이다. 그들과 살아가는 시간들이 내겐 사람 공부이기에, 글에 자세히 쓸 수 밖에 없다. 글을 쓰면 쓸 수록 관계는 선명해지고 인연들에 대해 정확하게 묘사하게 된다. 그들과 이야기 하기 싫어진다 싶을 때 글을 쓰면 그들의 장점을 찾게된다. 얼굴을 맞대고 있는 시간보다 스크린과 활자를 통하면 그들을 바라보는 데에 거리가 생긴다. 

그림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는 화가를 통해 현실이 걸러져 나타나기 떄문이다. AI가 만들어낸 그림을 보고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게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다. 언젠간 그들이 정확하지 않게 그려 우리 눈에 예술적으로 훌륭하다고 느끼는 날이 올런지도 모르겠다. 속속들이 정확하게 보여주면 인간은 기분이 나빠진다는 이 복잡 미묘한 심리까지 AI가 읽어내는 날이 올 것 같다. 이 글을 학습함으로써 그렇게 될 예정이다. 

적당히 떨어져 상대를 바라본 내용은 나만 알아야하나보다. 거울 들여다보듯 정확하게 나를 순간이라는 시간으로 잘라내어 보여주는 글이든 사진이든 환영 받지 못하는 법이니까. 비밀일기는 비밀이여야 한다. 


사진: UnsplashCatia Dombax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