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총회의 주간동안 나는 계속해서 글을 만난다. 작가란 누가 인정하지 않아도 스스로 글을 쓰고는 못 배긴다 싶으면 작가라 부르면 되는구나 싶다. 고로 나는 작가란 병에 걸린 사람과 다름이 없음을 깨닫는다. 하얀 중에 검은 이는 외롭지만, 자신이 검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알 수 있듯 단일 민족 국가에서 한국말이 통하지 않는 공간이 한 고작도 없는 서울에서 글로 사는 인간이란 정체성이 짙어지기만 한다.
"우리 교장 선생님이 문인협회에 소속되어 계신 작가이십니다. 저희 학교는 교장 선생님 덕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것 같습니다."
미소가 번진다. 교장선생님이 아니라 내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미국이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국가가 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작가에 대한 대접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고 하신다. 큰 아이 학교 교감 선생님은 여럿 앞에서 말을 함에도 듣는 이 모두 기분 좋아질 수 있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말만 하시더라. 교감 선생님을 2번을 학교 설명회에서 보고, 1번은 학교로 전화를 했는데 교장 선생님이 받으셔서 직접 통화를 했었다. 글을 쓰듯 말을 하는 사람이 있네 했는데, 그 사람이 신기하게도 작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나 들으라고 하는 말 같다. 지구가 나를 중심으로 도는구나. 글의 힘을 아는 이, 글의 위대함을 인정하는 집단은 위대해진단다. 나도 위대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건가보다. 교감 선생님이든 누구든 글 쓰는 사람을 집어내어 이야기해 주니 어깨가 으쓱해진다.
큰 아이 총회를 유난히 가기 싫었다. 이유인즉슨 블로그 포스팅 때문이었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특성화고라는 좁고 독특한 콘셉트의 이 학교를 발견해 놓고도 검증할 방법이 없었다. 온라인의 바다에 정보가 하도 없어, 학교가 직접 진행하는 학교 설명회를 1년 내내 참석하고서야 마음을 굳히는 과정에서 살이 떨리고 간을 졸여댔다. 과정을 글로 남긴다면, 누군가는 나보다 덜 고생하겠지 싶었다.
입학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입학식과 1학기 시작 전 학교에서 진행하는 진로 설명회 등 아이의 학교에 대한 모든 것을 풀어 써넣었다. 아이 학교를 준비하는 엄마들과 같이 입학하는 1학년 학부모들의 댓글이 이어지던 중에, 2학년 학부모회에서 경고가 날아왔다. 대학 진학 관련한 정보든 학교에 관한 정보든 일부러 오픈하지 않고 있는 중이니 함부로 포스팅하면 안 된다는 뉘앙스였다.
왜 안된다는 걸까? 올려둔 포스팅 때문에 이제 막 입학학 큰 아이가 손해를 보면 어쩌나 싶은 착각이 들어 그간 올린 글을 비공개로 다 바꾸려다가 멈칫했다. 내가 왜? 내리라고 할 땐 이유가 있어야 한다. 어떤 자료든 출처를 적어뒀고, 개인 신상은 공개하지 않은 글이니 글을 삭제해야 한다면 기준이 있어야 한다 싶어 진로 설명회 글만 비공개로 바꾸고 나머지 글은 삭제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학교가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이 모든 프로그램과 같으므로 다른 특성화고가 따라 할 경우, 밥그릇을 뺏길 수 있고 경쟁에서 이 학교 아이들이 뒤처질 수 있다는 게 학부모들의 목소리다. 글쎼. 공개한다고 해서 따라 할 학교가 얼마나 될 것이며, 따라 한다고 해서 입시 결과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기록으로 남겨진다는 모든 것은 힘이 세다. 나치는 전쟁에서 패하고 부지런히 문서를 폐기하였으며, 조선은 실록을 남겨 세상 어디에도 없는 왕조로 클 수 있었다. 애 둘 키우는 40대 후반 아줌마의 블로그는 조선 왕조 실록이 아니지만, 누가 쓴 글이건 간에 세상을 향한 외침이 글로 남겨지는 순간을 글을 읽는 이들은 두려워한다. 글을 쓸 줄 안다는 건 소통한다는 건 사람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종교개혁은 성서의 출판으로 이루어졌듯 말이다.
"아이들 단톡방을 톡파시키세요."
중, 고등학교엔 이제 담당 경관들이 상주한다. 같은 반 학부모들끼리는 단톡방을 만들지 않길 추천한다. 어느 누군가의 글 같은 죽음이 모두의 뇌리에 기록을 남겼다. 그녀는 떠나고 없지만, 그녀의 일기는 남아 모두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중이다. 그리하여, 기록을 남긴 이는 달라진 세상을 볼 수 없지만 말없이 세상의 부조리함을 관망한 일부는 바뀐 환경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학부모 총회는 부모들에게 학교 폭력에 대해 훈계하는 시간이 되었다. 학부모들이 알고 있지만, 묵도하고 싶지 않은 아이들의 기록에 대해 경관은 줄줄이 읊어댄다. 모든 학교 폭력과 교권 침탈은 카카오 메시지라는 글로부터 나온다. 글은 참으로 힘이 세다. 카카오 메시지는 글이라 부른다면 어떤 글쟁이는 분노할지도 모르겠다. 글이라 함은 한 인간의 머리에서 나와 그가 살아온 시간이라는 체로 걸러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인격이다. 카카오 메시지는 번개 같은 인격이다. 달음박치는 속도로 사는 오늘날 10대들의 인격이다.
글을 힘이 세다. 아이들의 학교를 다녀왔는데, 나는 작가란 직업을 얻고 돌아왔다. 누군가는 글을 무서워하고, 누군가를 글 쓰는 이를 존경하며 누군가는 세상으로부터 알려지지 않기 위해 기록을 숨기려고 한다.
나는? 그 무엇으로부터 얽매이지 않으며 무슨 글이든 쓸 것이며 나를 지나가는 모든 경험을 기록으로 남길 것이다. 무서운 작가가 될 예정이다.
사진: Unsplash의Lucia Mace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