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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Sep 22. 2024

해야 하는지 or 할 수 있는지

 이 작은 회사에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대신하기란 쉽지 않다. 신규 채용 공고를 올려도 찾는 이가 없는 회사, 지난달부로 적자를 면한 인지도 없는 이 회사는 직원들 각자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다닌 지 1년이 넘은 직원들을 한 명 한 명 살펴보면 둔한 데도 있고, 순진한 면이 있다. 그렇게 계속 다니다 보면, 회사가 별로인지 아닌지에 대한 생각보단 맡겨진 바를 다해내는 데에 시간을 보내기 대부분이다. 그렇게 그들은 2~3년을 다니게 되고, 직원 10명이 전부인 이곳이 세상의 전부인양 온 하루를 바쳐 지내게 된다. 

 밖에서 보면 어떨까? 특별한 관계를 맺고 지내는 이 회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사 2개월 차의 인턴 H의 입장에 서보자. 그녀에게 인수인계를 해줘야 하는데 내가 받은 인수인계가 촘촘하진 않아 전달해 줄 내용의 맥락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H에게 노션상의 인수인계 페이지를 전달하고, 주말 지나고 같이 내용을 보자고 하니 엉망진창의 그 페이지를 예습하겠다는 말을 한다. 인턴은 사람이 참 순수하다. 사고가 나면 그녀는 순도 백 퍼센트로 스스로를 탓할 것이다. 어떤 날은 H가 튕겨져 나갈 수도 있을는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탓하고 자신의 실수라 여겨지면 그녀가 출근하지 않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러니 나는 그녀가 오래 이 회사를 다니게 하고자 틈만 나면 그녀에게 말한다. 

"무슨 일이든 시스템 탓이고 남 탓입니다. 오케이?"

크고 맑은 인턴의 눈동자가 일렁인다. 

그녀는 내가 송신하는 전파의 주파수를 읽었을까 궁금하다. 사실하고 싶은 말은 "당신이 그만두면 내가 피곤해지고, 당신이 나오지 않으면 내 마음이 섭섭합다."이다. H가 좋아하는 고양이 볼펜을 그녀 자리에 가져다 두는 이유도 꽤나 이기적이다. 



 인턴 2가 들어왔다. 먼저 들어온 인턴과 비슷하겠거니 생각하고 며칠 그녀를 들여다보니 완판 다르다. 신은 내게 자비로워 똑같은 케이스를 던져주는 법이 없다. 새로운 시작, 완전히 새로운 경우라 다시 바닥부터 두 번째 인턴 S를 관찰해야 만한다. 그림책 작가를 얼마 전까지도 꿈꿨다는 S의 말에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와닿기 시작한다. 예쁜 거 좋아하는구나. 무해한 걸 좋아하는 S는 아이처럼 명랑하고 밝다. 

"식비 지원 없어요? 이전 회사는 법카로 밥 먹었는데요."

 S는 스스럼없이 불평을 내게 꺼내놓는다. 사무실이 너무 조용하다, 주변 점심값이 너무 비싸다 등등을 경영관리 매니저인 내게 거름 없이 이야기한다. 그림책 작가를 하기엔 그녀는 참으로 겹이 없다. 그림 속에 한 겹, 두 겹 내용을 첩첩 담아야 유명 그림작가가 될터이다. 언젠가 그녀가 그림책 작가가 되기 위해서 지금 이곳은 거쳐야만 하는 과정일 텐데, 그녀는 인턴기간이 끝나도 여기 계속 있을지 모르겠다며 인턴만 삼일차에 내게 명쾌하게 말한다. 눈치가 없는 걸까? 

 눈치 없는 그녀도 내겐, 그리고 회사에겐 소중하기 이를 데 없다. 어떻게 뽑은 서비스 기획자인데, 그녀가 나가지 않고 부디 자리를 지켜줘야만 한다. 그러니 그녀 또한 달래 본다. 

"2년이나 경력단절 기간이 있었으니, 노동시장이 얼마나 딱딱한지 아시겠네요?"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내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수신하고 있는 듯해 보인다. 인턴 6개월이 끝나고 또 어딘가를 찾아가기엔 이미 그녀는 일을 하지 않았던 기간이 길다. 화장품 관련회사는 코로나로 도산하였고 그녀는 2년 넘게 일을 그만했다. 서른이 된 그녀가 취업상태를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일하기 시작한 그녀 또한 오랜 시간 앉아 있기 힘들겠지. 여초의 이전 회사에선 직원들끼리 모여서 떠들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많았던 듯해 보인다. 8시간 적막강산인 앱 회사의 고요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겠다. 그럼에도 부디 튕겨져 나가지 않길 비는 마음에 S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건넨다. 부디 1년만 이곳에서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인 게다. 

단순 업무가 지겨운 그녀에겐 어떤 직무를 주면 좋을까 고민도 해본다. 



 사수의 임신 소식을 대표는 내게 제일 먼저 고했다. 투자도 사무실 이전도 털어놓는다. 나는 이곳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고 싶은 역할이든 하고 싶지 않은 일이든 내 의사나 감정하곤 상관없이 기대가 쏟아진다.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인 셈이다. 지금 오늘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한다. 해야 한다는 마음이 아니라 있다는 마음으로 출근길에 오른다. 못해도 괜찮다는 마음먹음을 장착하고 일과 회사를 대한다. 나는 무슨 복이 이리도 많아서 능력자의 오늘을 맞이하는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없다는 서른의 대표에게 너 정도 착하게 살면 후에 내 나이에 이르면 꽤 괜찮은 삶이 펼쳐질 테니 걱정 말라는 미소를 보내준다. 경력이 단절되었던 S에게도, 스스로를 칭찬할 줄 모르는 H에게도 응원의 레이저를 발사한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그들 또한 걸어갈 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도, 변호사도, 유명 스타트업 기술자도 아닌 그들의 오늘은  나의 과거였다. 

 로또라 이름 붙어진 아파트 당첨이라 버겁다 싶은 지난 주였다. 내겐 신기하게도 마르지 않는 힘이 자꾸 생기는데, 그건 아마도 살고 싶고 시간을 보내고 있고, 하고 싶단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이 작은 회사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살다 보니 살아진다더라 하는 게 '업'을 이르는 것이었다. 하루씩 하루씩 하루살이처럼 작디작은 이 회사에서, 이제 막 적자를 면한 작은 일터에서 내가 빛나는 순간을 찾았다.


사진: Unsplashwooof wo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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