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잽싸게 독서 모임을 찾았다. 우리동네책사랑방이라고 이름을 짓던 2022년 코로나의 끝물이 떠올랐다. 외롭고 춥고 어디 하나 기댈 데가 없던 상황의 구세주는 사랑방이라는 단어 하나였다. 어떤 누가 사립문을 열고 들어와도 따뜻하게 반겨주는 아랫목. 한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설화 같은 공간을 꿈꾸었다. 딴엔 어마어마한 혁명이라 여겼다. 도서관에서 성인 독서모임을 지원해준다는 공고를 물어온 독서모임 멤버는 나보다 10살은 많은 언니. 전라도 어딘가에서 흙도 파먹고, 집도 나가보면서 살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이가 그걸 들고 왔을 때는 사랑방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은 없다고 자부했다. 스스로가 대견하고 뿌듯했다. 어쩜 작명도 이렇게 잘하는거지, 나란 사람은!
경력 이음을 하고도 여러번 독서모임에 나갔었다. 나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저녁 모임으로 모임시간을 바꿔달라고 요구할 만큼 사랑방을 사랑했다. 그랬다. 그렇게 진심이였지만, 누구에게나 진심의 모양은 다른 법인지라 일을 핑계로 모임 단톡방에서 뛰쳐나오고, 떠남의 원인이 된 멤버에겐 평소와 다름없이 다정하게 대해주었었었다.
모임의 대표를 물려준 이가 여전히도 사랑방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현 대표도 나만큼이나 사랑방에 기대어 지냈었더랬으니까. 반갑고 아련하고 궁금했다. 사랑방이 지난 2년간 그에게 아랫목이 되어주었었을까? 책과 눈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을 나누는 이들은 몇이나 될까? 그 때의 우리들처럼, 코로나를 속소무책으로 맞이했던 강남의 부모들이 (내가 제일 경제상황이 격하게 쳐진다.) 지금은 어디로 부지런하고 가열차게 모범생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을런지 설렜다. 늘 껄끄러운 이야기를 한보따리 모아다가 모임에 가서 실컷 떠들어대던 나를 기억했다. 테이프를 돌려 기억을 살리고, 몸을 덥히고, 대화의 전투력을 끌어모았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속 두 사람은 남자 둘 일 것이라 짐작했다. 3주 전 작가가 도서관에 초청되어왔을 떄도 용감하다고만 여겼다. 동성애 코드가 장악한 이 독서 시장에 물린다, 물려. 철저한 편견으로 외면했던 이 책이 이번 달 모임의 책이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른 성별을 가진 지극히 보통의 젊은이들이였다. '기립하시오'를 외치고, '기립하시오'를 무한 루프로 틀어내는 그들을 바라보며 눈물지었다. 반복해서 읽음으로써 책 속으로 기어들어가 그들을 안아주었다. 그들이 젊고 어리고 예뻐서 미안했다.
큰 아이는 책 속 주인공처럼 특성화고를 다니고 있고, 그 선택은 온전히 나로부터 비롯되었다. 아이를 바라보는 수없이 많은 시선들 중에 가장 편견 어린 시선은 엄마인 나다. 일반고등학교도 아닌 학교를 다니면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냐고 매일 매순간 집에서 함께 숨쉬는 시간 내내 아이를 걱정하고 위태롭게 바라보고 질책한다. 집 밖에 나가보라고, 한 걸음만 디뎌 나가면 넌 그저 비정규직의 파트타이머일 뿐이라고. 세상이 내게 그렇게 말했듯 너에게도 말할 것이라고. 이게 다 너를 위한 일이라고. 엄마가 먼저 아파봤는데 아마 넌 절대 견딜 수 없을테니 제발 엄마 말 듣고 죽었다 생각하고 입시 준비만 하라고 했다.
엄마로써의 호박씨는 이렇게 매일 아이를 겁박하면서 산다.
김기태 작가는 본인의 학력도, 직업도, 나이도 쓰지 않는다. 오로지 작가라는 페르소나로 존재하는 기록만을 써두었다. 이런 글을 쓰려면 이 정도는 되야하는거다. 엄마라는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이정도는 되야하는 거다. 과거에 존재하던 호박씨, 아주 최근까지도 일터에 나가 절절 메던 호박씨, 친정 부모님의 딸로, 못난 며느리로 살던 나를 활활 태워버려야하 비로소 엄마인 것을 말이다.
독서 모임이 끝나고도 다시 책을 펼친다. 이 짧은 소설 속 심연을 다시 꼭꼭 씹어 먹는다. 나의 독서모임으로부터의 떠남에 기여했던 멤버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밝고 귀여운 소설이라고, 희망을 맛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자기 할 말을 하고 맡겨지지도 않은 진행을 하고, 대표의 말을 끊으며 본인의 후기를 거듭 강조하는 그녀를 떠올렸다. 그래. 저렇게 살 수는 없는 거다. 1년이 지나도, 1시간이 지나도, 1초가 지나도 돌처럼 굳어버려 시간 속에 단단한 화석이 되어버린 그녀가 엄마 노릇에 실패하는 이유를 똑같이 밟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꺼이 지나간 시간 속, 세상 속 나를 불질러 버려야겠다.
아이 앞에게 '기립하시오'를 외치던 소녀의 세상 같은 엄마가 될 수 는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살아야하나.
어떻게 아이 앞에 서야하나.
다시 고민 시작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더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