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은 신문에서 자주 회자되는 강남의 대장주 아파트 단지다. 대단지를 가로지르는 길이 지하철 역으로 가는 지름길인 데다, 단지 안 조경관리가 잘 되어있어 나무로 계절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걷기 편안하라고 우레탄 재질로 보이는 탄력성 있는 붉은 길은 아파트 내 노인분들의 주 이용코스인데 오전 9시와 오후 4시는 노인분들이 많지 않아 깔아놓은 길을 걷기에 부담이 없다. 흙길이라 오늘처럼 갑작스레 비가 오는 날 물이 고인다고나, 아스팔트라 차갑고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는 적당함이 산책길에 묻어난다.
우레탄의 붉음은 명함도 못 내밀 타오르는 붉은색들이 요새 아침 산책길의 주인이다. 그들은 늦은 추위 덕분에 전년보다 오래 나무에 매달려 있었던지라 그 고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인간은 차마 구현해 낼 수 없는 색은 태양이 그들에게 준 선물이다. 벌레 먹은 흔적 하나 없는 말끔한 낙엽에 핸드폰을 들이대려다 멈췄다. 예쁜 것은 이 길에 흔하다. 워킹맘이 아니여서 단지 내 초등학교임에도 아이 손을 잡고 데려다주는 젊은 엄마들의 차림새가 고급지고, 아침 시간 친구를 만날 여유가 있는 할머니들의 옷매무시가 곱다. 빨간 벚꽃나무 단풍보다 더 이쁜 게 이 단지를 가로지르며 내 앞에 펼쳐진다. 그리하여 카메라의 각도를 돌려본다. 바라봄의 방향을 전환해 본다.
가장 누추한 낙엽으로 골라보는 거다. 벌레가 파먹은 상처가 많아 누덕누덕함에도 불구하고 빨간 낙엽을 찾아본다. 골고루 빨갛지 않고 누렇게 얼룩지어 곱다고는 할 수 없는 녀석들 중에서도 최고로 고생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낙엽. 그래, 바로 이거다. 사진으로 남긴다. 오늘의 승리는 바로 이 잎새다.
퇴근 시간의 방배동은 돈 있어 보이는 노인분들이 많지만, 오늘처럼 아닌 분도 마주칠 수 있다. 연세가 지긋하지만 여전히도 노동 현장에 몸 담고 있어 새벽같이 출근했다 이 시간에 지친 어깨를 보이며 퇴근하는 이들을 느낄 수 있다.
할머니는 어딜 다녀오신 길이실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시지 굳이 계단으로 내려온 그녀는 허벅지에 손을 대고 몸을 구부려 간신히 서있다. 다리에 올려진 그녀의 손이 떨린다. 몸을 일으켰다가 다시 구부린다. 오늘따라 7호선은 왜 이리 더디게 오는지 이 시간답지 않게 기다리는 사람이 늘어만 가 승강장이 북적인다. 몸을 세운 그녀가 휘청거리니 곁에 젊은이가 눈살을 찌푸린다. 인스타**을 보던 그녀가 할머니를 쳐다보더니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옮긴다. 지하철 제대로 탈 수 있으시려나? 한참을 기다려 열차가 들어왔을 때, 할머니 뒤에 바짝 붙어본다. 승차하다 사고 나면 어쩌나 싶다.
한참 만에 온 열차 안은 또한 북적거린다. 노약자 석도 만석이다. 이 할머니의 상태를 알아보는 멀쩡한 할머니가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며 이리 앉으라 권해주고 자리를 내어주고 간다. 할머니 앞에서 서 할머니가 잠시 눈을 붙이는 걸 보고 나니 반포역이다. 겨우 2 정거장이니 할머니와는 여기서 이별이다.
지하철 타는 게 무서운 시간이 있었다. 학교에서 오는 전화가 무서운 날도 있었다. 건강검진 결과지를 열어보기 두려워 차마 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보면 나, 나의 가족, 그리고 생각하면 마음이 찌릿해오는 인연들을 떠올린다. 그리하여, 남을 지긋이 쳐다보는 일이 생기곤 한다. 벌레 먹은 낙엽, 누덕누덕한 낙엽을 새빨가니 요염하여 완벽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낙엽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 요새 난 이런다. 완벽한 빨강의 그 잎은 이번 생은 축복으로 지나가니 나의 바라봄은 필요하지 않다.
도움이 필요한 그 누군가를 어떤 방법으로도 위해주며 눈시울이 뜨끈해짐을 느낀다. 부디 사랑하는 누군가의 어려움에 어느 타인이 도와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눈물에 실어본다. 내가 없더라도, 내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곁에 있지 않더라도 지금 오늘 베푼 나의 바라봄을 쏟아줄 누군가가 네 옆을 지키고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너에게 닥칠 고통의 순간에 생면부지의 남이 기꺼이 손 내밀어주길 바란다. 바람은 욕심이지만, 구멍 난 낙엽을 카메라에 담는 오늘의 내가 바라는 바는 욕심이 아니라 당부다. 간절히 당부하는 마음이다. 신도 욕심으로 여기지 않길 빈다.
세상과 마주하는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 도움을 쏟아부을 터이니, 사랑하는 이들의 고통이 너무 깊지는 않게 도와줄 누군가를 보내주세요. 마음을 담아 사진을 찍는다. 구멍 난 하나도 예쁘지 않은 낙엽과 시간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