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귤이지 귤이 아니다. 살아있는 맛이 아니란 뜻이다. 자고로 귤이라 하면 손바닥이 노랗게 될 때까지 멈출 수 없을 만큼 새콤해야 한다. 그래서 줄줄 흐르는 침을 막고도 남을 만큼 귤 본연의 신 맛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시어서도 안된다. 입 안에서 한 알을 입 안에 넣고 다물었을 때 찾아오는 새큼함을 따라 달콤함이 자리를 차지해 줘야 오물오물 그다음 씹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몸 서리 쳐지는 신 맛을 이겨낸 자에게는 달콤함이라는 보상이 0.1초 사이에 주어져야 하는 법이니 말이다.
추석의 해운대는 서울의 싸늘함은 1도 맛볼 수가 없는 포근함이다. 큰 아이를 임신하고 배불러 갔던 부산 시댁은 마냥 더웠다. 새색시라고 나름 한복을 입고 있었던 명절 당일 종일 땀도 마르지 않고, 한복은 불편하고 날은 한더위 같아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니 귤이 새콤함과 달콤함을 겸비하길 바라긴 무리다. 어머니도 남편도 제사상에 올릴 귤을 제외하곤 귤 살 생각이 전혀 없다. 서울의 백화점 추석 선물 코너나 해운대 마트의 과일 매대에 얌전히 놓인 때깔 좋은 귤은 그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한다.
안양 구시가지에서 교회를 꾸려나가시던 이모부는 재개발로 교인들과 함께 제주도로 일터도, 가정도 옮기셨다. 이제 엄마는 제주도 하면 이모라는 답이 나왔다. 교회 목사 부인인 이모는 마당발일 수밖에 없다. 현관에 놓인 귤은 제주도에서 온 게 분명하고, 엄마가 진짜 귤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는 사위를 생각해서 주문한 것 또한 분명하다. 주변 귤 농장에서 귤 수확을 하자마자 이모에게 알려달라고 했겠지.
10킬로짜리 귤 상자를 들지 못해 집으로 끌고 들어와서는 쳐다보기만 한다. 남편이 뜯지 않은 귤 박스를 만나게 하고 싶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에서 도착하자마자 그는 박스 테이프를 뜯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 귤 10개를 해치운다. 침이 고인다. 그가 내미는 귤을 입에 넣을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장모님이 챙겨 보낸 귤을 완전히 그가 즐겼으면 해서이다. 친정엄마가 좋아할 게다. 딸이 아니라 사위가 날이 추울 때까지 진짜 귤을 먹기 위해서 기다리고 기다린 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에겐 이 택배가 엄마의 나름 서프라이즈 선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앱으로 장 보면 되지!"
엄마에게 여러 번 앱으로 장 보는 법을 알려주려 시도했다. 알려줘도 하지 않고 필요한 게 있으면 내게 부탁하기만 했다. 엄마는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것, 가족들 입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엄마가 충분히 알고 있는 방법만을 선택한다.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고, 집 앞 야채 가게 주인에게 배달해 달라고 부탁하고,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귤이 나오길 직접 말하는 아날로그의 세상 속에 엄마는 살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걸, 엄마는 쿠*도 그 어떤 앱 쇼핑도 하지 않으리라.
무겁게 들고 나니는 게 안쓰러워 엄마에게 편하게 살라고 힘주어 말했었다. 남편의 까 둔 귤껍질이 수북해지 지자 이제야 귤 하나를 집어 들고 엄마를 생각한다. 조금 불편하고, 훨씬 느리더라도 진짜 귤을 만날 수만 있다면 그녀의 방법이 옳다. 핸드폰을 켜 "당도 선별 하우스 감귤"을 눌러본다. 플라스틱 박스 속엔 깔끔하고 단정한 감귤들이 들어있다. 감귤에 대한 카피라이트는 일정함이다. 하우스에서 자란 이 귤들은 하나 같이 똑같이 생겼다. 앱이 자랑하는 감귤의 특징은 거친 비바람과 기후에 노출되지 않았으며 하우스의 일정한 환경에서 재배되어 당도가 높다는 점이다.
그건 진짜가 아니다. 매끈한 화면 속 하우스 귤들은 남편이 방금 까먹은 귤과 모양만 같을 뿐 모형에 가깝다. 귤은 침이 고일만큼 시어야 하고, 그 새콤함을 단숨에 박살 낼 달콤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제주도에서 이모가 보내온 귤들은 같은 형태와 사이즈가 단 한 개도 없으며 얇은 껍질들은 울퉁불통하며 검은 점들이 수없이 박혀 있다. 질서 정연하지 않은 그 껍질을 보고 이 귤을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해선 안된다. 당신이 알고 있는 매끄럽고 흠 없는 노란 껍질이 오히려 가짜다. 이미지가 보정되었으며, 하우스가 그들을 키워냈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상을 사느라, 앱 운영 회사에 다니느라 앱으로 시작해서 앱으로 끝나는 하루를 산다.
"쿠* 안 하세요?"
앱 방문을 늘리기 위한 방안에 대한 회의를 하다 동료들이 묻는다. 동그래진 그들의 눈을 보며 말한다.
"가짜가 오더라고요."
그렇다. 내겐 진짜가 필요하다. 앱 쇼핑의 세상에서, 손가락만 까닥하면 모든 것이 문 앞에 놓이는 세상에서 고독하게 진짜를 부르짖는 중이다. 당신이 진짜 귤을 맛본 것은 언제인가? 그대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