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교육감 선거 전달부터 남편의 핸드폰이 울려댔다. 말 잘 듣는 아들인 남편은 서울시 교육감조차도 해운대의 시부모님 지령에 따라서 결정했다. 착하다고 이야기하기엔 생각 없어 보였던 게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거짓말을 하는 쪽을 택했다. 투표하러 다녀왔다고 하고 넘어갔다. 금천구에 살던 당시의 남편과 나는 순한 양처럼 부모가 시키는 대로 살던 존재들이었다. 어린 나이에 고생하는 건 일부러라도 한다는 아버님의 의도 덕분에 경사 90도의 서울 서쪽 끝자락에 살고 있었고, 언제 가는 너희 집은 생길 거라는 말씀도 고지 곧대로 듣고 있었으며 자식을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아버님의 말씀을 듣고도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관악산 아래 살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반포는 천국인 셈이다. 꿈이 이루어진 거라고 보기엔 구축임에도 불구하고 분명 당시의 내가 꿈꾸던 강남은 맞는 셈이다. 금천구나 신림동에서의 흉흉한 사건들이 연일 계속되면 가슴을 부여잡고 안심한다. 여전히 금천구에 살고 있는 지인이나 시흥동 아파트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때의 신림동 주변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있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나만 강남 살아서 안전하고 좋다 싶은 마음이 솟아오르는 건 분명하다.
부모 말 잘 듣어서 신림동이든 독산동이든, 금천구든 관악구든 어디서든 기백 넘치게 씩씩하고, 뭐든 아끼며 그들이 성공한 바처럼 살아갔었더라면 우리 부부는 어떡했을까? 삶에 자신감 넘치던 아버님은 암 앞에 무릎 꿇으셨고, 아버님이 가시고 나자 어머니도 의사 사위를 둔 딸들에게 의지해서 잘 지내고 계신다.
독일로 주재를 나갈 때만 해도, 두 분이 창창하셨으니 서울 부동산을 장만하고자 하는 나의 목소리는 묻히고도 남았다. 남편에겐 부모님의 허락 없이 집 사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돈에 밝고 살림 똑 부러진다고 여기셨던 둘째 딸, 남편의 둘째 누나가 단돈 2억으로 전세를 살았던 잠실이 어머니에겐 정답이었다. 본인이 모르는 곳은 불안하고, 아는 곳은 없으며 전 생을 서울 여자로 산 며느리, 나는 그들에게 허술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그리하여, 내일모레면 50이며, 서울살이가 30년을 채워가는 남편과 그와 사는 내겐 여전히 전세살이 중이다. 서울에 집이 없다. 거주했던 금천구와 관악구의 강력범죄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 정도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게 집이 있다면, 평당 2억을 넘어갈 예정이라는 연일 신문을 도배하는 강남, 서초, 압구정에 집이 한 칸 있었더라면 그 어떤 뉴스에도 불안하지 않을 것인가?
두 눈 멀쩡히 뜨고도 삶은 여기서 끊길 수 있다. 헬멧을 착용하지 않고, 새벽 시간 킥보드를 타고 반포 학원가를 누비던 여학생들은 신호를 위반하고 30억짜리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나다 택시에 치여 즉사했다. 매일 나서는 산책길을 따라 5분만 걸어가면 나오는 무지개 아파트 단지 내 초등학교에선 어린 초등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딸 셋을 서울대 보내고도 만족할 수는 없어서 남은 막내딸도 가둬두고 키우는 이웃이 있다. 딸의 절친한 친구인 그 막내는 카카오톡도 작동하지 않는 공신폰을 사용하고,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향해야 했으며 외출은 학원 가기 외에는 허락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이에게서 작년 여름, 딸에게 전화가 왔다. 돈 많이 벌어오는 아빠가 출근길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딸을 데리고 장례식장으로 가 만난 아이의 엄마는 작고 여린 중년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죽음이란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찾아오며, 태어난 이상 삶은 죽음을 향해 내달음치고 있다는 사실은 반포에 살아도 변치 않는다. 집이 없어 불안하고,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아 불안하고, 남편이 회사에서 잘릴까 봐 불안하다. 남들은 해외여행 갈 때, 우리 가족은 제주도도 못 가봤을까 봐 불안하다. 이 불안은 죽음과는 상대도 할 수 없는 하찮은 것들이지만, 나의 매일은 죽음과 함께가 아닌 불안과 함께다.
알지 못하는 것은 삶이든 죽음이든 마찬가지다. 살아봤지만, 매일이 다르니 내일이 어떠할지 막 바로 다음의 1초에 대해 우린 알지 못한다. 죽어보지 않았기에 또한 죽음은 어떤 모습일지 전혀 알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삶에 대해서만 고민한다.
남편은 서울 살이를 매끄럽게 하고 싶어 서울 여자를 택했다. 그의 불안감 없는 삶을 위해서 나를 택했다고 믿는다. 남편의 식구들 누구도 서울 부동산을 매입하지 못했다. 안정적인 수익이며,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ㄷ그들은 서울 부동산 앞에 졸아, 아니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삶 속의 불안을 끌어안고 산다. 50억짜리 또는 한국 최고가의 아파트에 살면 죽음과 고통은 없는 삶을 살게 될 거라 믿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하니 말이다.
비밀스러운 진실을 알게 된 이상, 더는 그리 살지 않으리라. 세상 어디에 존재하든 태어난 이상 불안한다. 50억짜리 아파트든 5억짜리 아파트든 어떤 내 집을 갖게 되더라도, 내겐 삶이 끝나는 고통이 닥칠 예정이며, 죽는 게 낫겠다 싶은 아픔의 순간도 왔다 갈 것이다. 그러니, 나의 부모 또는 시부모님의 불안함을 옮아오지 말자. 남편의 걱정도 함께 하지 않으리라. 매일 읽어대는 신문의 부동산 면과 사회 면을 읽으며 눈도 깜짝하지 않을 것을 글로 약속한다. 그러기엔 제대로 살기도 바쁜 것이 삶이기에 말이다.
사진: Unsplash의Kateryna Hliznitso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