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영 아니올시다.

재외국민 선거권과 메르켈 총리

by 호박씨

선거의 계절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지난 서울 시장 선거가 인생 첫 선거였던 그야말로 정치는 누군가의 직업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산 사람이다. 나만 잘 살면 됨, 조금 봐주자면 내 가족만 잘 산면 됨의 끝판왕으로 40 넘게 살아왔다.


독일 살아도 투표는 가능하다. 가능한 것이 아니라 공직 선거법으로 보장되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국에 있었어도 대통령 선거는 커녕 국회의원 선거도 안 했던 나였으니 국외 부재자 선거권자에 해당됨에도 불구하고 선거는 1도 안 하고 지냈다.


투표는 안 해도 정치 성향은 조금 있는 편이다. 부모님도 시부모님도 골수 보수이신데, 부모님의 정치 성향에 내 줏대 하나 없이 그냥 스펀지 물 빨아들이듯 잘 듣고 있는 착한 딸이었고, 결혼하니 지방에 계신 시부모님이 전화로 알려주시는 서울 시장 후보 번호까지도 잘 따르는 며느리였다.( 물론, 시장 뽑으러 안 갔다.)


2017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오버오젤 독일 집 내 부엌에서 한국 기사를 검색한다. 네이트로 사회면을 꼼꼼히 보곤 했는데, 보고 있으면 사실 한국은 어찌 돌아가는지 알게 됐다는 안도감보다는 공포감 조성하는 기사에 늘 돌아가서의 일을 걱정하며 쫄아있곤 했다.

2017년 서울신문에 올라온 메르켈 총리의 패션에 대한 트윗이다. 같은 날 찍은 같은 장면의 사진이 아니고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여름 찍은 다섯 장의 다른 사진이다.


독일은 정말 패션은 꽝이다. 휴고보스가 현시대 독일의 최고 브랜드라는 것 하나만 봐도 딱 필이 온다. 실용적인 디자인이다. 남성 정장이란 경제활동을 이롭 게하는 데에 보탬이 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는 그야말로 작업복이 아니겠는가. 나 돈 많아, 나 능력 있어 또는 일 잘하게 생겼지? 가 휴고보스의 이상향일 거다.

여성용 독일 브랜드는 떠오르는 것이 딱히 없을 것이다. 샤넬 수석 디자이너의 칼 라거펠트, MCM 정도지만 명품 브랜드라 부르진 않는다. 현대 건축 디자인의 탄생지인 바우하우스의 독일이 패션은 무덤이다. Vogue 기자라면 프랑크푸르트에서 괜찮은 스트리트 컷은 한 장도 아마 건지기 힘들어 곤혹을 치를 테다.


총리님 사진도 다를 게 하나 없다. 2015년 가을 폭스바겐 스캔들이 전 세계를 흔들기 전인 2013년과 2014 년은 독일 경제의 전성기 중 전성기인데, 사진 속 메르켈 총리는 뚱한 표정의 소위 말해 독일 동네의 아무나 아줌마이시다. 저 사진이 파파라치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면 저 다 낡은 신발은 어서 저리 낡은 걸 구하신 게야 싶지 않은가?


2013년 2월, 나는 친정아버지가 약국서 알바 중이다. 엄마는 인생이 집밥이신 분이다. 집밥 안 먹으면 죽는 줄 아는 우리 엄마. 약국에 부르스타를 갖다 놓고 보글보글 각종 찌개를 한 냄비 끓여 오늘 아침에 한 밑반찬들에 최소 3종의 김치를 꺼내신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이들을 둘 다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약국 알바를 빙자한 몸보신을 하는 중으로, 엄마의 그 집밥의 최대 소비자이다.

점심은 늘 TV조선과 함께다. 빨간색의 JTXX 같은 매체는 아버지의 근무지에서는 금지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날을 시작으로 박 대통령에 대한 패션 찬사가 줄을 이었다. 호미가로부터 시작해서 한복에, 정장까지 친정 엄마도 얼굴을 밝히며 박 대통령의 센스를 칭찬했다. 나는 우역우역 엄마 밥을 먹으며, 내가 보기엔 그저 그랬지만, 나 답게 밥만 먹고 맞장구를 잘 쳐드렸다. 내 할 일만 했다.

그리고 2016년 친정엄마는 독일 시간으로 아침 일찍, 한국 시간으로는 한밤중에 보이스톡을 한다.

" 단체로 화병 날 것 같다."

아이돌의 배신으로 친정엄마는 몸져누울 지경이라고 했다. 그 센스와 역량은 반비례 그래프를 였던 사실을 받아들이기엔 시간이 너무나 짧다. 겨우 4년 남짓이라니.. 팬덤이 안티로 변화하는 순간이었다.


그들도 여성이니 패션에 대한 평가는 영부인 마냥 쏟아질 수 있다. 정치인의, 지도자의 패션 평가를 성 이슈로 끌고 갈 생각은 없다. 요샌 이게 제일 무서운 이슈니까 입조심해본다. 다만, 교포분들이 보기엔 코웃음 칠 기간이나, 5년의 길다면 긴 시간 속에서 뭐든 배움이 빠른 나는 나라밖 타인의 시선으로 내 나라를 바라볼 수 있을 만큼 기억력이 좋다. 메르켈 총리의 취임식에서 그녀가 뭘 입듯 무엇을 신었든, 그에 대한 평가가 있었든 없었든, 독일의 정치인 메르켈은 Mutti 독일의 엄마를 16년이나 했고 박수 칠 때 떠나는 지도자가 되었다. 매 여름휴가마다 같은 곳을 같은 기간 동안 지내며 같은 옷차림을 하고 사진 찍히는 그녀는 말 그대로 독일이다. 멋대가리라고는 하나도 없지만 자기 일 하나는 탁월하게 하는 무띠 메르켈.

굳게 닫힌 입과 딱딱한 표정만큼이나 쌀쌀한 날씨 같은 그들이지만, 그저 꾸밈없음으로써 모든 일을 단순하게 하던 그 독일이 오늘은 그립다. 살만 하면 떠난단 말 틀린 것 하나 없다. 주재 첫날부터, 아니 주재 가기 전부터 딱지 않게 듣던 그 말, 돌아오니 그립다는 그 말은 진짜였구나. 그나저나 누구 찍나? 첫 대통령 선거인데 찍을 사람이 없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