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촌국민학교

강산이 7번 변한 세월(3)

by 황상기

3학년까지 보자기에 책을 싸서 어깨에 메고 다녔다.

여자 아이들은 책보자기를 허리에 묶고 다녔다.

멀리서 책보를 멘 모습만 보아도 남자아인지 여자 아인지 알 수 있었다. 보릿고개 넘기 어려웠던 그 시절 점심도시락을 못싸오는 친구들도 열댓 명 정도 있었다.

나는 같은 책상에서 공부하는 짜쿵과 자주 도시락을 같이 먹었다. 보리밥에 김치 아니면 고추장이 늘 도시락 반찬이었다. 친구들 반찬도 거의 다 그랬다.

그런 도시락도 못 싸 오는 친구들은 슬그머니 나가서 우물물 한 바가지로 배를 채우는 친구들도 있었다.

공부 끝내고 집으로 갈 때면, 걸을 때마다 양은 도시락 속에서 숟가락이 달그락 소리를 냈다.

8살 꼬맹이가 책보자기 메고 산골길 5 기로미터를 뜨거운 한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도 매일 혼자 걸어 다녔다.

도시락을 못 싸 오는 학생들에게는 1주일에 한 번씩 미국에서 원조해 주는 옥수수 가루와 옥수수 빵을 나눠 주었다. 옥수수 빵과 도시락을 바꿔 먹기도 했다.

처음 먹어보는 고소하고 달달한 옥수수빵 맛이 지금도 기억난다. 휴전되고 군인들이 지어준 허름한 학교 교실은 겨울엔 창문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60여 명이 공부하는 커다란 교실 한가운데에 장작을 피우는 난로 하나가 있었다. 난로에 넣는 장작은 겨울 오기 전, 아버지들이 지게로 한 짐씩 저다가 창고에 쌓아두었다.

창고에서 나눠주는 장작을 당번이가져와 난롯불을 피우면 교실 안에 연기가 자욱했다. 아무리 추운 날도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장작은 오전만 피우면 오후엔 넣을 게 없었다.

점심시간 한 시간 전에 양은 도시락을 난로 위에 올려놓으면 당번이 아래위로 뒤집어 놓았다.

1963년. 우리 반 57명이 졸업했다.

전교생은 600명이 넘었다. 교실은 6칸, 교무실 한 칸이었다. 1학년부터 5학년 까지는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서 공부를 했다.


졸업하고 3년 후.

학교건물을 새로 지었다. 교실 수를 더 늘리고 2층으로 튼튼하게 잘 지었다.


며칠 전 지촌초등학교에 가 보았다.

60여 년 전에 이렇게 많았던 학생들이 지금은, 전교생은 15명 올봄에 입학생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우리 마을만 이런 게 아니고 , 전국 농촌 학교가 이런 거 같다.

해마다 3월이면 뉴스에 자주 나온다.

전국의 초등학교 몇 개가 폐교를 하고, 입학생이 하나도 없는 학교가 몇 개라고.

농촌에 젊은 사람이 없다. 그러니 아이들이 없다.

몇 년 전부터 지촌초등학교를 폐교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처럼 학생들이 많아 질 수는 없겠지만 지촌초등학교가

문을 닫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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