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는 아버지한테 맞았고, 학교가니까 선생한테 맞았고, 군대가니까 선임한테 맞았다.
그런데 요즘은 선생이 학생한테 손만 올려도 훈쭐이 난다고 하더라. 선생이 학생한테.
그런데 요즘은 쉬는 이등병 이름만 불러도 영창을 간다더라. 병장이.
아버지 나를 왜 때리셨습니까?
나도 그렇게 살았어. 선생한테, 선임한테, 네 할아버지한테 뒤지게 맞았다.
그리고 나도 선임이었고, 아버지이다. 선생은 해본적이 없어서, 그건 잘 모르겠다.
이게 무슨일이지?
나는 이유없이 혼나고 두들겨 맞는게 정말로 싫었는데, 내가 그 입장이 되니까, 이해가 되면서 이해할 수 없어.
나를 때리던 아버지와 선생과 선임은 이해가 되는데, 그거 좀 혼나고 맞았다고 어디 선생과 아버지와 선임에게 곤란한 상황을 선사하는 놈들이 이해가 안가.
어떤 병장은 이등병때 쓰던 압존법이 없어지면서 대대에서 본인도 사라져버렸다. 폭력을 선사하려던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떤 선생은 선도라는 명목으로 상담을 30분 정도 진행했는데, 학부모에게 2시간동안 무릎꿇고 사과를 했다. 본인이 선도당해 버렸다. 어떤 미국의 아버지는 아들과 분리조치를 당했다. 아동학대 정황이 포착되었기 때문이었다. 70년대의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m0jWj35L4U
https://www.youtube.com/watch?v=ogYPOH6USZM
https://www.youtube.com/watch?v=DP8Jdvnv3KU
주먹의 연대기.
낭만과 야생의 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90년대생을 선도했고, 이제 30이 되어가는 90년대 생들은 아무런 선도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요즘은 학생이 선생을 때린다면서요?
나는 하키채로, 당구채로, 주먹으로, 발로 당했는데."
국회에서 "학대아동 분리법"이 통과되었다. 그렇지만 시설이 부족했고, 시설 확충을 위한 재원 마련은 다음 국회의 숙제로 남겨지게 되었다. 그렇게 부모에게 정서적으로 학대를 당하던 불안정한 아이들은 사회로부터도 유기되었다. 낡은 보호시설안에 불안정한 아이들이 과밀수용되었다. 수용되었다가 부모에게 돌아간 아이들은 부모의 폭력에도 보호시설에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서 점차 침묵하게 되었다. 다음 국회에서 재원을 마련하고 좋은 시설을 마련했을 때에는, 이미 늦었고 어떤 청소년이나 어린이도, 보호시설에 가고싶어하지 않았다. 결국 살인사건이 속속 발생했다. 부모를 죽이고 틱톡에 올리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버렸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카메라를 보고 웃으며 재판장에 들어갔다. 촉법소년. 나는 촉법소년이라네.
낭만과 야생의 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90년대생을 선도했고, 이제 30이 되어가는 90년대 생들은 아무런 선도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요즘은 학생이 선생을 때린다면서요?
나는 하키채로, 당구채로, 주먹으로, 발로 선생놈들한테 당했는데."
시계를 풀고 책상 위에 무릎꿇고 있는 학생에게 다가와 빰을 갈기는 선생과, 아무런 저항없이 당하는 학생. 그 학생은 커서 극성맞은 부모가 되었고, 자신의 자식에게 손대는 인간은 뼈도 못추리게 해주겠다고 다짐했다. 학생을 때렸던 선생은 은퇴하였고, 은퇴연금을 받으면서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다. 현직 선생들은 거새당하였고, 아무런 소리도 행동도 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하고 있다. 그들을 때렸던 그들의 선생과는 다르게. 몇년 뒤, 학생 인권 조례가 약간 수정되었고, 규정상의 채벌이 생기면서, 학교 앞에는 테이저건을 든 경비원이 생겼으며, 문제학생들은 계속 전학과 정학을 반복하게 되었다. 어떤 부모들은 전기충격을 당하는 아이를 눈물을 흘리며 지켜보았다. 곧 단체 소송으로 테이저건은 없는 일이 되었다. 대신 주짓수 기술을 40초간 당하는 형벌로 바뀌었다. 문제아들의 얼굴이 퍼래질때까지 조르기를 하는 것이 합법이 되었다. 그러다 누군가 죽었다. 지나친 흡연으로 인해서 이미 폐활량이 나빠진 녀석이었다.
갑자기 군대에 "폭력 근절"이라는 명목하에, 대대적인 설문이 시작되고, 몇일 뒤, 7명의 병장, 상병이 사라졌다. 그들이 이등병일때 신나게 때리고 굴렸던 상 병장놈들은 이미 전역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아무일 없던 것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전출을 당한 후 폭력성을 거새당하고 식물처럼 아무말 없이 살다가 전역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폭력의 연대기를 숨기고, 억울한 전출을 당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다닌다. 몇년 뒤, 폭력의 역사는 고개를 다시 들었고, 누군가는 또 전출을 당하고, 누군가는 전역빵을 당하고 식물인간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는 그들만의 은밀한 비밀이 되었고, 계속 가해자 없는 피해자만 사회로 방출되었다. 피해자는 곧 가해자였기에, 모두 조용히 지냈다. 물론 줄곧 피해자였던 사람도 있었다. 계속 가해자였던 사람은 없었다.
곧 전쟁이 터졌고, 예비역들 사이에서 자신을 죽도록 때리던 그들의 선임의 머리에 주어진 K-2와 5.56mm나토탄으로 구멍을 내버리는 것이 유행처럼 퍼졌다. 장교나 부사관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베트남 전쟁때도 있던 일로, 이미 예견되어 있던 사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다행히 이 현상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항상 예견되어있던 사태인데, 그 누구도 예견한 적이 없다.
내 이럴줄 알았지. 라는 말도 유행이었다. 뭘 이럴줄 알았어. 그런 거지 뭐.
어렸을때는 아버지한테 맞았고, 학교가니까 선생한테 맞았고, 군대가니까 선임한테 맞았다.
이런 씨발 근데 내가 때릴차례가 되니까, 폭력 근절이라면서 영창보내려고 하더라.
이런 억울해라. 억울해.
난 이런게 싫어서 이등병때 그렇게 당하고도 상 병장때 네놈들한테 손도 안올려봤는데, 후임을 때려서 영창을 간다니, 도데체 넌 무슨 생각인거니? 아니 난 무슨 생각이었을까? 저런 괴물놈을 만들었다네.
A. 저는 사실 저를 때린 아버지에게 감사합니다. 만약에 아버지가 저를 때리시지 않으셨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Q. 만약 자식이 생기신다면 어떻게 교육하실 생각이십니까?
A. 저의 아버지가 저에게 했던 것처럼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매를 적극적으로 들 것입니다.
Q. 혹시 누군가를 때린 적이 있으십니까?
A. ......... 아직 그런적은 없습니다. 아 그런데, 군대에서도 많이 혼나긴 했습니다.. 선임들이 워낙 엄해서요...
Q. 혹시 누군가를 때린 적이 있으십니까?
A. 그렇지만 저는 후임들에게 손을 대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제 후임들은 저를 천사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망상이었다. 아무것도 변한것이 없었다. 축구협회장은 그대로였고,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감독은 홍명보다. 죽은 채상병과, 훈련병은 돌아오지 않았고, 누군가의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난 이럴줄 알았어, 이 사단이 날 줄 알았다고.
그러면 그때 뭐하셨는데, 이 사단이 나게 둔겁니까?
진짜로 그럴줄은 몰랐지.
뭐야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