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전역하지 못하는 사람들
우리에겐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간다면, 온 세상이 나의 것이 될 것이라는 뭐 그런. 자유로운 삶과 생활, 친절한 사람들, 나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헹가래를 해주면서 나와 같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동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던 것들은 우리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병장이 막 되었을 무렵 전역한 사수에게서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나와 약 10개월 차이 나던 그 선임은 집으로 돌아간 지 오래되었었다. 막 복학을 하였고,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불이 꺼진 생활관 안에서 우리들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당시의 허병장은 정말 이 생활에 질려버려 있었다. 집으로 빨리 돌아가서 이 거지 같은 곳을 잊어버리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때의 나는 막 일병이었고, 집으로 돌아가려면 1년 넘는 생활을 더 했어야 했다. 이 진절머리 나는 생활을 막 받아들이고 열심히 하던 시기였다. 이 생활이 거지 같다고 생각한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뽑자면
1. 20살 넘은 다 큰 성인이 밤에 허락을 맡고 TV를 봐야 함.
2. 이 좁은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10명의 장정들이 집에도 못 가고 같이 생활해야 함.
3. 밥을 안 먹고 싶으면 안 먹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근데 안 먹으면 혼남.
4. 자꾸만 말도 안 되는 헛지거리를 시켜서 사람 바보 만듦.
5. 군인이라고 끌고 와서 훈련보다 이상한 일들을 더 많이 함.
등등이 있었다. 허병장이 전역하던 날이 생각나는데, 그때 엄청 부러우면서 무서웠다. 사수가 없는 나의 생활은 두꺼운 솜이불 없이 시베리아 벌판에 버려진 것과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한동안 정말 많이 혼나고, 혼나고, 혼나면서 이 생활에 적응하고 일종의 인정마저 받은 상태였다. 그러던 와중에 전화가 온 것이었다. 처음에는 시시콜콜한 말들을 나누었다. 뭐 사회의 생활과 부러움 그리고 나의 일과까지. 그러다가 뜻밖의 말을 들었다.
"요즘 너무 힘들어. 한 2주만 거기 가서 있다가 사회로 돌아가고 싶어. 대신에 병장으로 짬 대우받으면서 말이야."
이 말을 나는 그의 기만이라고 받아들이고 욕을 했다. 이런 미친 인간이 미친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가고 싶어 했으면서, 나가서는 돌아오고 싶다니. 이런 개 같은 놈을 봤나. 요즘에는 난 그를 이해한다. 밖과 안은 생각한 것만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에서 정말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었다. 음주운전을 해서 영내로 들어왔던 중대장과, 대대장의 헛소리에 진땀흘리던 급양담당관, 자신의 임무를 짬이 낮은 탄약반장에게 억지로 넘기던 군수담당관까지. 일개 중대의 병기탄약화생방군수병이던 나는 친한 하사와 항상 그런 말을 했었다.
"그런가 보다"
이 마법 같은 말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모두 넘길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해가 안 되는 수학공식을 모두 그냥 외워버리라던 학원 선생과, 이상하게 이해가 가지 않던 영문법을 이상한 말을 만들어서 머리에 쑤셔 넣던 학교 선생과 학원선생 그리고, 배드민턴 치는 방법을 시험문제로 나왔는데 암기해서 정답을 맞혔던 뭐 그런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정말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전역하고 나서는 가끔 친한 후임들의 전화가 왔었다.
"여단장이 지금 쓰는 창고가 무너질 거 같다고 창고를 옮기라던데, 어디로 옮길지는 안 알려주더라. 공간도 없는데."
"그런가 보다"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단지 그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되서였다. 난 나왔지요.
밖으로 나와서도 난 여전히 창고와 비슷한 곳에서 일을 한다. 군수품을 관리하는 대신에, 상품을 관리하고, 장구류를 불출하는 대신에, 상품을 담고 포장해서 라이더에게 건넨다. 가끔 버거운 주문량과 그에 비해 어처구니없는 인력상황 때문에 힘들지만, 난 일단 해내고 있다. 대신 군대에서 했던 말은 하지 않는다. 대신에 너무 힘들면 눈을 감고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파도다. 어떤 충격이 와도 흡수해 내고, 밤에는 별빛을 반사하고 낮에는 태양을 반사하는 나는 대양의 파도다."
가끔은 위에서 관리자가 내려온다. 또 지령이 내려온다. 임무도 같이 내려온다. 관리자들은 그것을 짬이 높은 크루들과 같이 해결을 한다. 그러나 이게 말도 안 되는 주문량과 어처구니없는 인력상황이 합쳐진 경우가 많기에, 그들은 집에 아주 늦게 간다. 그러면 욕도 같이 내려온다. 이건 하늘에서 내려온 성스러운 언행이다.
야이 씨발아 -라고 말하지 않지만 아주 정중하고 예의 바른말을 감싸서 아주 젠틀하게 분노하는 편이다. 그런 권역장의 성스러운 말을 본 지역점의 관리자들은 아주 잘 알아듣고 이렇게 받아들인다. - 이런 씨발 아니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1. 다 큰 성인이 밤에 TV도 볼 시간이 없음 자야 함.
2. 집에도 못 가고 일함.
3. 밥을 먹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잘 못 먹음. 아니 제시간에 못 먹음
4. 자꾸만 말도 안 되는 헛지거리를 시켜서 사람 바보 만듦.
5. 관리자라고 와서 물류관리보다 이상한 일들을 더 많이 함.
지점에서 아르바이트도, 지역의 관리자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선터장부터 시작해서 이번엔 권역장으로 와서 패악질을 부린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사단 본부의 요직만 하다가, 진급을 위해서 야전으로 나왔다던 그 누군가가 떠올랐다. 아무런 일도 잘하지 못하지만, 다 알고 있는 척을 해야 무시를 받지 않는다던 생각을 하던 그놈 때문에, 우리는 이상한 짓들을 그 여름에 땀을 흘리며 했었다. 다행인 것은 나오니까, 그래도 유급으로 한다. 그때는 최저시급도 아니었는데.
분명 모든 일을 할 때, "왜"라는 질문을 하면서 해야지 좋다고 배웠는데, 그게 너무 고통스럽게 되었다. 그러니까, 사람은 본능적으로 힘들고 지치는 것들을 피하게 되는데, 그래서 모두들 "왜"라는 질문을 지우게 되었다. 이것도 사실 탁상공론이었던 것이다. 아니 책상 앞에 앉은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서 만든 고문도구였다. 그들은 우리를 상대로 아직도 유료강의를 다닌다. 아무튼.
이번 군대에서는 언제 전역할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전역이라고 한다면,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인데, 나처럼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도 알 방도가 없다.
돈 주는데 까라면 까야지. 어딜
나 사단장인데, 어디 일병 따위가, 까라면 까야지
라고 요즘은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밖으로 나오는 행동에서 그들의 숨기려고 시도했지만 삐죽 튀어나온 은말한 천박함이 드러난다. 바보도 자기를 놀리는 것을 귀신같이 아는데, 우리가 바보도 아니고 그 정도의 당신들의 천박함을 알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근데 또, 돈 주는데 까라면 까긴 해야 한다. 안 까면 돈 안 주니까.
난 내일도 출근한다. 일을 할 때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네?" "네!" "네?!?!?!" 등의 말만 하려고 한다. 돈이 있어야 반항도 하지. 요즘은 반항도 유료다. 그렇지만 반항을 하려고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그거 말고 더 가치 있는 곳에 돈을 쓰려고 한다. 여기에 오래 있다간 나도 아마
"오늘 오출고가 12건이 나왔는데 관리자들은 오늘 뭐 한 건가요? 다른 지점에 비해서 현저히 높은데,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수준입니다. 앞으로 오출고 나올 때마다, 직원들 경위서 쓰게 만들까요? 관리자들은 앞으로 같이 나가서 작업하세요. 그리고 앞으로 책임지고 오출고를 줄이는 데에 신경 쓰세요. 아니면 진짜로 다 같이 시말서 쓸 수도 있습니다. 내일 해당지점으로 출근하겠습니다."
라는 말을 하루 종일 일하느라 바빴던 지점 관리자들에게 할 것만 같다.
근데 어디로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