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

by 고라니


사실대로 말하겠노라 하고 결심한 이후로 사람들이 나를 너무 많이 떠나갔다.




거짓말을 잘 못한다. 나는 그렇다. 거짓말을 잘 하면 인생이 편해질 것 같아서 연기와 연극을 배워보고 했지만, 무대 위에서의 연기와 생활에서의 연기는 아무래도 별로 큰 상관이 없었다. 아니 상관은 있긴 했는데, 난 언제나 들켰다. 난 아무래도 거짓말을 잘 못한다.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버렸을 뿐이지, 사실 그럴 생각은 별로 없었다.




거짓말하지 않기와 말하지 않기 전략이 있다. 난 말하지 않기 전략을 즐겨 사용하는 편이다. 말을 먹어버린다. 머릿속의 자기검열을 통해서 말을 먹어서 치워버린다. 슬프게도 어떤 사람들은 내가 말을 치우는 것을 목격하고 치우던 말이 무엇인지 보자기를 들추어 보곤 한다. 난 어쩔 수 없이 보여준다.




그러니까, 화 절대로 안 낼게. 진짜로 듣고 아무 반응도 안 할게 너무 궁금해서 그래.


라고 말하는 사람 치고, 듣고 표정이 변하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자기 검열. 나는 나를 검열하는 편이다. 말을 골라서 하면 때로는 할 말이 없지만, 나의 짧은 삶의 경험에 의하면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편이 대부분 마음도 편하고 분란을 일으키지 않아서 좋다. 나는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는 쪽으로 점차 변해갔다. 그러자 불편한 상황이 많이 줄었지만, 따라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권태가 일어났다. 그런 권태 때문에 가끔 검열을 완화하는 날이면, 사고가 났다. 말을 생각하면서 하기 시작하면 정말 할 말이 없다.




의미 없는 대화를 잘 하지 못하는 편이라 스몰토크를 정말 잘 못한다. 당신을 궁금해하는 것만으로도 왜인지 당신이 나를 불편해할 것 같다. 난 당신들이 별로 궁금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당신들이 날 궁금해한다면 난 성심성의껏 답해 줄 준비가 되어있다. 난 언제나 열려있다.




난 점점 말이 없어졌다.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도 점점 없어졌다. 아무도 말이 없어졌다. 서로에 대한 호기심이 없어졌다.




요즘 자꾸 유튜브 알고리즘에 "35세 여성이 가지는 결혼에 대한 망상"에 대한 영상이 자꾸만 올라온다. 난 궁금하지 않은데, 보니까 궁금해졌다. 당연히 열자마자 사이버 콜로세움 안에서 모두들 전투를 벌이고 있지는 않았고, 남자들만 가득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사람들은 자꾸 무언가에 분노하지 않으면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분노 유발자들은 구타 유발자들을 자꾸 노출시켜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나의 할머니는 정말 말을 직설적으로 하신다. 나의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시골에서의 사회는 도시에서의 사회와 달라서 각자의 사회화가 차이가 있기 때문에, 도시인들이 보기에 직설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말을 평생 참아오다가, 요 최근 20년 정도에서야 말을 하기 시작했고, 10년 전 증조할머니가 떠나면서 거의 평생의 시집 살이가 끝나오고 나서부터는 말을 잘 하게 되셨다. 가끔 충격적이고 며느리들에게 상처를 주긴 하지만, 모두들 할머니의 사정을 이해하기에, 귀로 들은 말을 목구멍으로 삼킨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자기검열을 조금 풀기로 결심했다. 그렇지만 말과 글은 비슷한 점이 있는데, 말이 나가기 전에는, 글이 읽히기 전에는 결과를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점이 그렇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 쓸 만한 글이 없다. 그 누가 태평양 한가운데의 나비의 날갯짓이 그런 큰 사고를 일으킬 줄 누가 알았을까? 그건 나비의 잘못이 아니다. 나비는 그냥 날갯짓을 할 뿐이다.




조삼모사.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가 좋을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저 병신 어차피 비슷한데라고 말하는 병신들에게 취향과 소신도 없냐고 물어보고 싶다. 난 아침에 많이 먹는 게 좋은데. 아빠는 아침을 부실하게 먹으면 하루 종일 힘이 없다고 한다고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나도 그 말을 자주 듣다 보니, 그런 사람이 되었다.




이등병 시절 자대에 배치되고 나서 1달 정도 생활관에서 같이 지냈던 타 대대 아저씨가 있었다. 그 사람은 휴가 나가서 놀았던 어떤 여자에게 고소당해서 법적 절차를 밟고 있었다. 나중에 상병이 되고 나서 코로나 백신을 맞으러 갔는데 만나서 너무 반가웠다. 진급 누락을 너무 많이 당해서 여전히 상병이었다. 나와 6달 정도 차이 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가 소송에서 이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게 벌써 3년 전이다.





왈룰라 행성인들은 의식이 연결되어 있어서 거짓말이란 게 의미가 없다. 그들은 음성으로 소통하지 않는다. 진정한 몸의 연결로서 대화를 한다. 그들의 평균 소통 시간은 0.01초를 넘지 않는다. 그 이상 연결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결국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평생 소통을 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소통에 필요한 정보만 머릿속에 떠올리고, 신경관을 들고 소통 의지를 보인 후에 가볍게 zik. ziiiiiiiiiiiiiiiiiiik을 하게 되면 이제 이 둘의 의식은 하나가 되어서 새로운 생명체가 세포분열을 한 것 같은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한동안 같은 행동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며, 과거의 고통도 나누어 지기에,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어머니를 아주 어릴 적에 잃어버린 어떤 왈룰라인은 자신의 고통을 자꾸 다른 이들에게 공유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어떤 마을을 심연의 우울에 빠지게 하였다. 그렇지만 지금 감옥에 있는 그는 처음의 범죄를 기획한 그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그 마을 자체가 되었다.




시골에서 하루 종일 말뚝을 박은 날이 있었다. 고라니와 멧돼지가 자꾸 내려와서 농산물을 먹어치워서 화가 난 할아버지의 결심이었다. 말뚝을 박고 거기에 망을 설치해서 밭을 보호하겠다는 심산이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해머를 쥐여주면서 말뚝을 박으라고 임무를 주셨다. 할아버지가 운전하는 트랙터 삽에 타고 돌아다니면서 하나씩 말뚝을 막았다. 물론 망치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해머 망치는 너무 나에게 무거웠고, 곧 힘이 빠지면서 잘못 휘두르면 망치가 앞으로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짧게 잡고 최선을 다해서 박았다. 정말 힘들었다.




정말 힘들었던 것은 서투른 나의 망치질을 보면서 이따금 트랙터 문을 열고


길게 잡고 팡 팡 쳐야지 그렇게 치면 말뚝이 들어가니!!! 어휴 .... 팡팡 치라고 팡팡!!


이렇게 소리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였다.




그렇게 말뚝박기가 끝나고 할아버지께서는 트랙터에서 내리셨다.


말뚝을 몇 번 흔들어 보시더니




둘째 오면은 다시 박으라고 해야겄다


한마디 하시고 저녁을 드시러 집으로 들어가셨다. 나만 밭에 남겨졌고 이 말뚝을 다 뽑아버리고 싶었다. 그래도 참을만했던 것은 그 다음 달에 군대를 가면 이 말보다 심한 말은 듣기 힘들겠다는 나름의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입대하고 자대에서 오래 있다가 상병 말이었던 어느 날, 내가 비슷하게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할아버지의 모습이 나에게 보였다. 고약한 충청도 노인네의 꼬장이 나에게도 있었다. 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고 하면 충청도 고약한 노인네가 되는구나.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한다. 평생 혼자 살 거 아니면.





왜 35가 될 때까지 혼인을 못하셨습니까 김민채 양




그냥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기도 했고 그냥 그동안 똥차만 만나서요




확신을 못했군요.




네 그런 셈이죠




제가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김민채 양은 연애를 7회 하셨는데요. 그동안 한 명도 확신이 없던 겁니까?




네 그런 셈이죠




혹시 35세가 넘으면 노산이 되어서 기영아가 나올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전 근데 결혼 생각이 없습니다.




한국 남자들은 싫어하시면서 왜 결혼은 한국 남자랑 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그거야 서양 남자들은 서양 여자들이랑 결혼하겠죠 뭐. 근데 전 결혼 생각이 없다니까요.




그렇다면 여성 징병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니 난 그런 시사에 관심이 없다니까. 필요하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거 그만 물어보세요.




노산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찍 결혼해서 애 낳는 게 좋긴 하겠습니다만, 전 생각 안 해봤다고요




그 순간 김민채 양의 신경관이 나와서 사회자의 뇌에 연결되었고 이 둘은 행복하게 잘 살게 되었다. 아이는 혼혈이었고, 심장이 선천적으로 약하게 태어났다. 김민채 양은 출산 이후에 토크쇼를 맞게 되어서 큰 인기를 끄는 사회자가 되었다. 남자는 출산 후유증으로 인해서 사망하게 되었다. 김민채 양의 출산의 고통은 그녀의 것 만이 아니었다.




남편의 사망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어....... 음...... 그러니까....... 그게........ 할 말이 없습니다.






극심한 환상통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했다. 그게 다였다.





어머니 이번주 추석에는 당일에 가야할 것 같아요. 제가 수업이 있어서요.




그려. (언제는 꼬박꼬박 잘 왔다구, 핑계나 대는 거지. 얘는 애가 맹 해가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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