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는 사탕 주는 아저씨를 조심하라고 했는데
아저씨가 되어버린 요즘, 사탕을 주는 게 더 무섭다.
사탕을 순순히 받는 어린아이를 조심하자
나는 왜 커서도 어렸을 때도 평생 약자일까.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그때는 낯선 사람들에 대한 안전교육이 잘 이루어져서, 낯선 사람들의 호의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나의 친구들 사이에서 많이 퍼져있었다. 유괴는 실제 일어나는 사건이었기에, 조심하는 편이 무조건 안전하긴 했다. 그렇지만 노약자나 여성이라면 조금 달랐다. 그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주는 것이 신사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이랄까, 뭐 그런 분위기였다. 당시에만 해도 남자는 여자를 지켜줘야 하고, 노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분위기가 만연했었기에, 당시의 시대상이었다. 아무튼
집에서 피아노 학원을 가고 있었는데, 어떤 할머니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무거운 짐을 들고 가고 있었다. 나는 너무 힘들어 보이시길래, 도움을 주어야 하는가 생각을 하면서 바라보았는데, 그 사람은 신경질이 났는지,
"학생 뭘 봐요?"
라는 식으로 나왔다. 나는 당황해서
"도와드려야 하나 생각이 들어서요."
라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의 눈이 착해졌고, 나는 그 짐을 집까지 옮겨드리기로 했다.
당시에 나는 초등학생이었기에, 근력이 별로 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를 돕는다는 자부심 하나로 열심히 도왔다. 그 여름 강한 햇살 아래, 땀을 보도블록에 쏟으며 아주 오래된 그 할머니의 아파트로 향했다. 푸른 나무들이 가득했고, 매미들은 구애의 비명을 열렬히 외쳤으며, 그 누구도 할머니와 나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어쩌면 난 그 할머니의 손자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뭐 이런 느낌의 아파트
뭐 그런 냄새 있잖아. 뭐 노인들에게 나는 냄새. 잘은 생각나지 않지만,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고 했나, 아프다고 했나 그랬고, 거의 할머니 혼자 사는 그런 집이었던 것 같다. 뭔가 미묘하게 기분이 나쁘게 따뜻하고 습한 격리되었던 것 같은 공기가 현관문 밖으로 방출되고, 집은 시원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방출된 공기와 함께 나의 귀 옆으로 지나갔다. 나는 뭘 기대했나. 계속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없는 살림에서 물티슈를 꺼내서 주며
아무래도 학생은 하나님이 나에게 내려준 선물인 것 같아, 이번 주 일요일에 예배가 있는데 꼭 나와줬으면 좋겠어. 꼭 와 줄 거지?
할머니 저는 교회가 싫습니다.
이게 마지막이었다. 뭔가 나의 호의가 하나님의 은혜에 가려지는 느낌이 싫었다. 나의 자유의지를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달까. 험한 꼴까지는 아니었지만은, 그래도 기분이 별로였다. 그 할머니를 도와주었다는 징표로 물티슈는 가지고 나왔다. 뭐 나름 뿌듯함 정도는 남았다.
다음 날 학교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어떤 할머니를 도와드렸더니, 뒤에서 검은색 스타렉스가 나타나서 어깨 형님들이 할머니 도와준 어린이를 납치해갔다. 납치당한 어린이는 나중에 시체만 뒷산에서 발견했는데, 안에 장기가 없더라.
하는 식의 소문이었다. 난 정말 운이 좋았구나. 그 할머니가 운이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되면서 이런 형식의 소문을 인물만 바뀐 식으로 입과 인터넷으로 많이 접했다.
술 취한 여자를 도와주었더니 나중에 성추행 신고를 하더라
지갑을 찾아주었더니, 몇만 원이 없다고 나를 의심하더라
아기가 이뻐서 말을 걸었는데, 아기 엄마가 모르는 사람이랑 말하는 거 아니라고 애를 혼내고 나를 째려보더라
여행가서 거지에게 돈을 주었더니, 다음날 아침에 그 거지의 친구의 이웃의 사촌까지 돈을 달라고 나에게 오더라
확실히 모르는 타인과 말을 하는 일이 장벽이 너무 높아졌다. 바로 옆에 사는 가족들과도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인구 밀도가 높은 땅에서 인증되지 않은 누군가가 대부분인데, 서로가 서로를 애써 무시하고 경계하는 일 자체가 피곤하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밖으로부터 숨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남자가 어린이와 할머니, 여자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그 오래된 시대적 생각은, 이제는 망상이 되었다. 모두들 스스로 지켜야 한다. 이게 전에 비해서 안전한 사회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부터도 아마 누가 큰 사고를 당하면 엮이지 않으려고 자리를 피할 것 같다.
왜인지 도움을 주는 게 받는 것보다 더 무섭고 신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