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뿔났다. 잘난 할망구 미워 미워 미워
텃밭에서 기른 가지와 고추를 주려고 언니 집 현관에 들어섰다. 엄마는 이제 막 일어났고 집안이 조용하다. 겨우 눈을 뜬 언니 말이 엄마가 요 며칠 이상하다 폭언을 퍼붓고 온몸이 경직되어 있다는 거다.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라 한다. 언니의 갈라진 목소리와 부은 얼굴에서 며칠째 엄마에게 시달린 티가 난다.
치매가 진행된 지 14년 차인 엄마는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는 폭언을 하거나 막무가내로 소리를 질러대서 주위사람을 곤란하게 했는데 언니와 함께 살면서 한 달에 한 번 꼴로 터지는 편이다.
그럴 때마다 서로 연락해서 함께 대응하자 했다. 문제가 생길 때 엄마를 혼자 감당하기는 힘겨운데 형제들이 함께하면 억지 부리는 엄마의 모습을 웃으며 바라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렇게 한 번씩 발작처럼 당신의 내면을 과하게 표현하고 자식들에게 과하게 수용받는 경험을 해야 안전하다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맥락 없이 부리던 억지가 아닌듯하다는 거다.
엄마에게 조심히 물었다.
“엄마 센터에서 무슨 일 있어? 요즘 미운 사람 있어? 다 말해봐. 엄마 자식들이 힘이 쎄 다 해결해 줄게” 했더니 입이 삐죽삐죽 대더니 있다는 거다. 조동아리를 치고 싶은 할망구가 있다고 나불나불하는 그 입을 한 대 갈기고 싶다고.
“아하 그렇구나. 그래서 때려줬어?”했더니 안 때렸단다. 센터에서 쫓겨날까 봐 조용히 참고 있는데 하는 짓이 다 밉단다.
세상에나 마음먹은 대로 행하는 마음행일치인 엄마가 주먹을 참았다는 말에 너무도 감사했다. 치매도 이렇게 좋아질 수 있는 건가. 아님 들쭉날쭉하는 과정인가. 예전 같으면 벌써 한판 붙고 볼 일인데 보고만 있었다니 믿어지질 않았다. 왜 그랬는지 조금 더 물어봤다.
“우리 엄마 잘 참았네. 때렸으면 징역 갈 뻔했는데, 잘 참으셨어. 오늘도 그 할머니 봐야 하는데 어쩌지? 웬만하면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게 좋겠는데”했더니 안된다고 한다. 그 할머니가 엄마를 계속 주시하고 있어서, 그리고 엄마가 누구랑 노는 꼴도 못 본다는 거다. 계속 엄마를 감시하고 있다고.
어쩌나 엄마가 그 어르신을 계속 주시했다. 그 어르신이 누구랑 노는 꼴도 볼 보고. 얘기하는 내내 몸서리를 치며 그 할망구가 싫다고 말씀하신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 어르신은 이 센터에 3일 전에 입소했고 그 시대에 드물게 대학도 나오고 대기업에 다녔던 이력이 있는 사람이다. 게다가 엄마와 한 동에 사신다. 센터차를 함께 타고 내려야 하는 사이.
언변이 좋아 어르신 주위에 사람이 모이는 것 같다. 엄마는 그 잘난 꼴이 보기 싫은 거고. 비교심에서 나온 거겠지만 유별나게 지는 걸 못 견디는 엄마에게 강적이 나타났다.
비교하는 마음은 죽을 때까지 범부를 놔주지 않으려나보다. 많은 것을 놓아버린 치매 환자에게도 예외 없이 가혹하다.
빠른 대응이 필요할 듯해서 엄마에게 물었다. 센터를 바꿀까? 했더니 아니 여기에 정들었는데 하곤 한참 그 할머니 욕을 하다가 그러자 한다. 그래서 오늘부터 센터 가지 말까 엄마? 아니면 내일부터 다른 센터 나가고 오늘만 여기 갈까? 했더니 오늘은 그대로 이 센터에 가겠다 한다. 엄마도 새로운 환경이 그리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눈을 껌벅이며 마지못해 차에 오르는 엄마가 투정 부리는 아이 같아 우습기도 하고, 꼬부장한 눈으로 한사람만을 따를 엄마의 시선이 애처롭기도 했다.
엄마를 보내고 부랴부랴 언니와 함께 인근에 다른 노인주간보호센터를 방문해서 알아보고 엄마의 상태를 솔직하게 전달하고 내일부터 가겠노라고 결정하고 돌아오는데 이게 잘하는 건지 어딜 가나 각자의 눈에 미운 사람은 있을 텐데 이렇게 쉽게 옮겨도 되나 치매에 새로운 환경은 좋지 않다고 했는데 이래도 되나를 고민고민 하는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저녁 6시 엄마가 센터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추어 언니집으로 향했다. 엄마의 하루를 근심하면서.
차에서 내리는 엄마의 표정이 의외로 밝다. 씻고 옷 입는 거 도와드리면서 물었다. 오늘 재미있었나, 미운 사람 없었나, 속상한 일 없었나, 밥은 잘 드셨나를 천천히 하나씩 물었고 엄마의 표정을 살피며 대답을 들었다.
오늘 엄마에겐 별일이 없다. 센터 실장님과 통화해 본 언니의 말과도 같다. 센터를 시끄럽게 할 만한 행동도 없었고 엄마의 마음에도 별일 없어 보인다.
내일 다른 센터에 갈까? 했더니 왜 가야 하냐고 하신다.
며칠을 괴롭히던 일이 오늘은 별일 아닌 게 되는 게 치매 증상인가. 아니면 자식들이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고 편들어 줘서 응어리가 풀린 건지 알 수 없다.
당분간 주의 깊게 살펴야 할 일이지만 잠시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삼일째 되는 날 두 어르신은 아이 러브 유. 유 러브 미하는 사이가 되었다.
상황이 달라진건 하나도 없는데.
*사진출처 Stick man vector created by freepik - ko.freepik.co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