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왜 거기서 나와'
지난 주말에 결혼식에 갔습니다. 선글라스와 짬짬이 사용하는 도수 있는 안경, 손수건과 카드만 간단하게 챙겨 넣고 가볍게 길을 나섰지요.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분홍색 원피스 치맛자락이 제법 낭만적이었습니다.
광명역에 내려 안경 끼고 지도를 보며 길을 따라가다 햇볕을 만나니 안경을 벗어 손에 들고 선글라스로 교체했습니다. 워낙 길치라 옆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잘 가고 있는지 확인도 받고 초행길인데 헤매지 않고 잘 찾아갔습니다
예식장 건물에 들어섰으니 화장실부터 찾아서 일보고 손도 씻고 이제 2층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데 아뿔싸 손에 들고 있던 안경이 안 보입니다. 실내로 들어오면서 선글라스는 케이스에 담아놓고 도수 있는 안경을 써야 하는데 손에 들려있던 안경이 없습니다.
물건을 흘리고 다니는 버릇이 있는지라 별로 놀랄 일도 아닙니다. 분명 화장실 세면대나 휴지걸이 위에 놓았겠죠. 그런데 없습니다. 감쪽같이.
내가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손에 들고 있던 걸 그냥 떨어뜨렸을 리 없고 그랬다 해도 떨어질 때 소리가 났을 텐데 이거 묘합니다.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마침 예식에 참석하러 막 들어서는 문우를 만나 사정을 말하니 가방을 뒤져보라 합니다. 가방이 손바닥만 한지라 다시 봐도 없습니다. 함께 전철역까지 되짚어가며 이리저리 둘러봐도 없습니다.
안경 찾기를 포기하고 예식장으로 향하며 안경이 5년간 저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늘어놓고 소중했던 인연에 이별을 고하며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감쪽같이 사라진 안경을 이해할 수 없지만 말이죠. 그래도 기꺼이 안경 찾기에 동참해 준, 안경과의 이별식을 들어준 문우가 있어 감사한 순간이었고 그만큼 담담할 수 있었을 겁니다
다행히 예식 10분 전 식장에 도착해서 혼주에게 축하 인사를 건넨 후 차분히 앉아 식을 지켜보며 눈시울이 불어져 손수건을 꺼내다 무심코 안경집을 열었는데 맙소사 선글라스와 도수 안경이 겹쳐져있습니다.
아니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나의 의식은 손 끝에 걸려있는 안경까지고. 그다음 안경집에 넣은 건 습관으로 길들여진 무의식적인 행동일 테지요.
반복해서 실행한 것이 곧 우리 자신이 된다. 그렇다면 탁월함은 행동이 아닌 습관인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아하. 지금까지 책으로 접한 습관의 힘을 몸으로 깨닫는 순간입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행하게 되는 그것.
설령 치매에 걸릴지라도 행하게 될 그것.
죽음이 더 가까워진 생의 전환기에 일할 때와는 다른 습관이 필요할 듯합니다.
그래서 좋은 습관을 하나씩 만들려 합니다.
우선은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나도 남도’.
그런데 이게 잘 안됩니다. 말은 긍정적인데 마음 한구석에 꼬부장한 마음이 살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띄엄띄엄하던 기도와 명상을 숙제 삼아할밖에.
제1호 습관이라 명명하니 기도와 명상이 좀 더 분명하게 다가옵니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만큼 마음이 편안해 짐을 느끼고 그만큼 여유 있게 상대를 바라보게 됩니다. 또, 부정적인 마음이 들려할 때 내가 지금 이런 마음이 올라오는구나를 알아차리는 순간도 경험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