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하나 버리겠습니다.
강의 전에 이것만은...
은연중에 목에 힘이 들어가는 습관이 있습니다. 음이탈이 빈번하니 목근육에 힘을 주어 소리가 날아가지 않도록 잡는 습관이 30대 초반에 시작됐지요. ‘소리가 작다’ ‘발음이 명확하지 않다’는 말에 20년이 지난 지금도 목주변이 움츠러드는 걸 보면 어지간히 질긴 인연입니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이 습관을 이제는 버리려 합니다.
수업량을 본격적으로 늘린 서른에 갑상선 제거 수술을 받았습니다. 급하게 무너진 면역력 때문이었을까요. 오른쪽 목에 생긴 종양이 날로 커지니, 암은 아니지만 제거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소견으로 수술을 결정했는데 수술후유증이 오래갔습니다.
목 주변에 수술자국이 선명하게 남았고, 몇 주 후면 돌아오리라는 목소리는 의사의 말이 무색하게 바람만 새어 나오기를 몇 달, 조금씩 말이 되어 나오긴 했지만 야속하게도 한 번에 알아듣는 이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목소리 클리닉을 위해 여러 병원을 다니며 알게 된 사실은 수술과정에서 왼쪽 성대가 마비되었다는 겁니다. 그것도 벌어진 상태로. 양쪽 성대가 맞닿으면서 소리가 만들어지는데 말이죠.
시간이 흘러 벌어진 왼쪽 성대만큼 오른쪽 성대가 더 움직여서 얼추 소리가 만들어지고 있으니 의료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합니다. 그땐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해 답답한 마음만 가득했지요.
수술 후 몇 개월, 집에 있는 하루하루가 무료하던 차에 마침 학원 복귀요청이 있어 강의를 시작하고야 말았습니다. 나를 좀 더 돌보면 좋았을걸 목소리에 힘도 없고 타이어 바람 빠지는 소리가 절반이었을 때인데 어쩌자고, 돌아보면 후회스러운 대목입니다..
소규모 수업이라 선뜻 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수업을 시작하고부터 예상치 못했던 트라우마가 생겼습니다. 목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목 근육을 강하게 붙잡고 있었고 강의 내용을 잘 전달해야 한다는 강박에 목은 수업 내내 긴장했습니다. 어쨌든 목에 힘을 주면 저음이지만 나름 소통은 가능했으니까요.
그 긴장에 ‘안 들려요’라는 학생의 말이 덧붙여지면 참담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일을 쉬겠다는 생각은 없었지요. 목 움츠러드는 것보다 일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이 힘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쓸모를 강의에서 찾아서 일까요. 아니 불안한 마음이 컸을 겁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불안을 마치 불타는 수레바퀴에 매달려 끊임없이 돌아가는 익시온과 같다 했는데 딱 그랬습니다. 늘 쫓기듯 무언가를 성취해야 할 때였지요.
이젠 더 이상 강의를 하지 않으니 그 습관을 온전히 버려도 되는데 여럿이 모인 자리 또는 책을 읽어야 하는 순간 여지없이 목을 쥐어짜는 긴장을 경험합니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이 불편함, 보내고 싶은 습관 1호입니다.
돌이켜보면 이런 목소리여서 조기 은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소리로 전달이 힘드니 자료를 만드는데 보다 정성을 들였고, 학생들의 이해도를 확인하는데 시간을 들였고, 개개인을 좀 더 관찰하여 맞춤 강의를 하려 했습니다. 이런 수업이 학생들에게 어필이 되었는지 10년 일찍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니까요.
오랜 시간 저를 붙들고 있던 불편함을, 지금까지 잘해왔다 안아주고 그동안 목의 애씀에 감사하며 이젠 보내주려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니 당당함도 생깁니다.
어떠신가요.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결핍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 인생에 디딤돌이 되어 준 것 말입니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과 작별하기 - K People Focus (케이피플포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