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가? 모든 개인은 각자의 본성에 의해 고통의 양이 결정돼 있다.’-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중에서
햇빛 쨍한 오후, 걸음이 힘겨운 노모를 모시고 산책길에 나섰다가 점심으로 팥죽을 먹기로 했습니다. 보행 보조기에 의지해서 걷다 앉았다를 반복하니 성인 걸음으로 3분이면 갈 거리를 30분 걸려 식당에 도착했지요. 팥죽과 녹두죽을 주문해서 먹었는데 반 그릇 정도 남았습니다.
버리기는 아깝고 포장해 달라니 일 하나를 보태는 미안함이 있어 남은 음식을 주방에 가져다주며 요청하고 돌아와 잠시 앉아있었지요. 당연히 제 테이블로 가져다줄 거라 기대했는데 일회용 용기에 담은 음식을 주방에 놓으며 퉁명스럽게 가져가라 합니다.
식당 직원의 불쾌한 시선과 눈이 마주치니 뭉쳐놓았던 화가 올라옵니다. 노모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설 때부터 굼뜬 노모를 마뜩잖은 표정으로 훑어보더니 나가는 순간까지 저 모양이구나. 속으로 괘씸했지요.
그러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면 그 시선은 그의 것이지 제 것이 아님을 알아갑니다. 쇼펜하우어의 ‘행복하고 싶은가 그러면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라’를 몸으로 이해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사실은 제 요청에, 직원은 그 자리에 놓은 것으로 응답했고 불쾌한 시선은 저만의 생각일 수 있으며 만약에 저에 대한 감정으로 지은 표정일지라도 그건 저와 무관하게 그의 고통에 해당하는 것일 테지요.
그러니 저는 화가 올라올 게 아니라 오히려 고통받고 있는 그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다 깍듯이 인사해야 옳지 싶습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제 편을 들어주면 좋으련만 ‘직원이 그럴 수 있지’라며 대뜸 둘이 가서 한 그릇 주문했어?라고 묻습니다. 제 편은커녕 직원이 그럴수 있는 이유를 제게서 찾고 있는 남편입니다. 아니, 한 그릇을 둘이 먹고 또 남아서 포장해달라고 할 만큼 내가 소식은 아니라 답하고 말투가 거칠어질까 봐 대화를 멈췄습니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부드럽게 말했지요. 대화의 기술을 간결하게 알려드리겠노라고.
‘아내가 잘못했을 거라’ 대전제를 세우지 말아 달라고 웃으며 말하니 웃으며 답합니다. 명심하겠노라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차분함이 아닐는지요.
둘이 가서 한 그릇 주문할 정도로 상식 없는 사람으로 아는 건가 그동안 나를 어찌 보고 등의 의미부여 없이, 남편이 무심코 내뱉은 말을 그대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제 요구를 웃으며 할 수 있었을 테지요.
그동안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제멋대로 의미부여하며 저도 모르게 저를 괴롭혔던 시간들을 돌아보니 아는 만큼 행복해지나 봅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법륜스님의 행복하기 행복 전하기 중에서
은퇴 후 길들이는 습관 하나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그리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기’가 습관 둘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 길들이고 있는 것’들에 깨어있는 시간이기를 응원합니다.
왜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가? - K People Focus (케이피플포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