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루 Oct 24. 2023

드디어 운동회가 열렸다

라떼와는 다른 운동회

  만국기가 펄럭이는 학교 운동장.

  코로나 때문에 4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학부모가 함께할 수 있는 운동회가 열렸다.

  어릴 적, 부모님이 운동장 가장자리에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과 과일 등을 꺼내놓으면 내가 왔다 갔다 하며 먹고 경기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의 학교는 돗자리를 가져오지 말라고 공지를 했고 점심도 학교 급식으로 제공이 되었다. 그래서 학부형인 우리는 학교에서 미리 준비해 놓은 천막 아래에 서서 아이들의 운동회를 보아야 했다.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달라진 건 운동회의 '외주화'였다. 문화센터에서 '트니트니'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 같은 전문 요원들이 각종 기구를 준비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아, 운동회 날은 짜장면인데"

  남편이 추억을 소환하는 듯했다. 운동회 때 점심은 엄마가 싸주던 김밥이 정석 아니던가? 나는 남편의 이야기에 어리둥절했지만, 구태여 물어보진 않았다. 집마다 문화는 다를 수 있으니까!

아이들은 경기가 끝나면 바로 각 팀 지정석에 앉았기 때문에 부모님이 오셨는지 안 오셨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학부형들이 운동장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각자의 아이들을 찾아야 했다. 

  겨우 둘째 아들을 찾고,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둘째의 친구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 OO이 엄마 맞아요?"

  "응, OO이 엄마야"

  "와, 저 OO이랑 엄청 친해요, 완전!"

  "저도 친해요!"

  "저랑 제일 친해요!"

  나의 예상과 달리 나에게 우리 둘째와 친하다고 하는 아이들이 모두 여자 아이들이었다. 역시, 여자 아이들이 싹싹하다. 남자아이들은 그저 날 보고 빙긋이 웃다가 다시 친구들과 장난칠 뿐이다. 둘째는 항상 남자아이들하고 노는 얘기만 하고, 여자 아이들하고는 놀지 않는다더니... 다행히 여자인 친구들이 있었구나! 걱정이 한순간 사라진다.

  운동회 때문에 학교를 찾은 다른 지인들과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다가, 경기 나가는 아이들에게 가서 응원하고 하다 보니 학부형들끼리 모였다가 흩어졌다가, 모였다가 흩어졌다가를 내내 반복했다. 내가 아이들을 찾아 사진을 찍는 사이, 남편은 자주 어울리는 지인 가족들에게 같이 점심을 먹을 것을 제안했다.

운동회의 영향인지 식당에는 대기가 있었다. 식당 밖 벤치에 앉아 있으니, 이번에는 다른 지인이 짜장면 이야기를 꺼낸다.

운동회 때는 짜장면인데..."
  그렇죠, 운동회는 짜장면이죠!"

  이건 또 무슨 나만 모르는 대화인가?


아니, 운동회 때 다들 엄마가 김밥 싸서 안 왔어요?
 학교에 짜장면을 배달시켜서 먹었어요?"

  나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트린다.


운동회 끝나면 중국집 가서 짜장면 안 먹었어요? 국룰인데"


  내가 아무 말 없이 어버버거리자, 남편과 지인들이 알았다는 듯이 호탕하게 웃는다.

  "아, 어릴 때 시골에 살아서 중국집이 동네에 없었지?"

  "그래서 운동회 끝나고 짜장면 먹으러 가는 걸 몰랐구나, 원래 운동회 끝나면 다들 중국집 가서 짜장면 먹는데..."

  운동회에서 느낀 격세지감은 저리 가라다. 같은 세대 안에서도 내가 모르는 문화가 있었다니!

  하아, 왜 하필 우리 초등학교 근처에는 중국집이 없었던 것이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