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직원이 나를 보고 웃으며 얘기한다. 아, 내가 오늘 한 번도 웃지 않았던가? 사내 바자회에서 센터장님이 사 오신 찐빵을 먹으려고 든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찐빵을 그리 좋아하는 편도 아닌데 찐빵에 웃을 정도로 일에 치이고 있었던 걸까? 갑자기 숙연해진다.
나의 첫 번째 직장은 힘들다는 말로는 차마 다 담아내기 어려울 만큼 힘든 곳이었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두둑한 월급도 무시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직장은 일은 수월했다. 다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었다.누군가가 나를 자신과 자신의 라인의 사람들에게 가야 할 자리를 빼앗을 위협적인 존재라고 여기는 듯했다. 일은 최대한 안 하려 하고, 자리에만 욕심 많은 사람이 사내정치를 하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게 되는지 너무 잘 알게 해준 곳이었다.
세 번째 직장인 이곳은 일도 수월하고, 사람들도 매우 좋다. 첫 번째 회사의 장점과 두 번째 회사의 장점을 합친 듯하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이직을 할수록 연봉이 오른다는데 나는 옮길수록 연봉이 줄어든다. 확실히 돈을 많이 주는 회사는 그만큼 사람을 더 혹사시키기 때문이리라!
오늘도 R&R(role & responsbility)로 타 팀과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새로 온 신입 직원의 업무 미숙으로 인해 회의 시간에 그나마 덜 날카로운 표현들로 포장된 질타를 받고, 휘몰아치는 업무를 한 타임 처리하고 한숨 돌리고 나니, 거울에 비친 나는 아침에 빗은 가르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몇 번이나 헝클어트린 머리카락을 대충 수습한 모습이었다. 이 모습으로 찐빵을 받아 들고 처음 웃었다니, 또다시 헛웃음이 나온다.
'일이 안 힘든데도 지금 이 꼴이란 말이야? 대체 얼마나 더 힘들어야 힘들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건가..'
이럴 땐 너무 힘들었던 첫 회사가 참 고맙다. 이 와중에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해 주니까 말이다.
"팀장님, 오늘 얼굴이 완전..."
"아, 오늘 너무 힘드네요. 근데 OO님도 지금 얼굴이... 그런데 원래 금요일 퇴근 시간엔 이렇게 다들 흘러내리는 게 맞죠? 이게 정상인 거죠?"
"네, 정상이에요. 금요일 퇴근시간에 보면 다들 흘러내리고 있어요"
퇴근길의 잠깐의 수다인데도 대화 내용과는 상반되게 생기가 돈다. 일은 힘들었지만, 그대로 이틀의 휴일을 얻었기 때문이리라!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다더니..."
이 회사에서는 또 얼마나 머무를지 모르겠다. 집에서 너무 멀어 출퇴근에 진을 다 빼는 데다 장거리를 감수할 만큼의 돈을 받진 않다 보니, 사람들도 좋고 일도 크게 힘들지 않은데도 이따금 고민에 빠진다. 게다가 회사 내 이슈로 인해, 직원들을 정리하게 되면 입사3개월이 지나지 않은 나도 그 대상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사에서는 나보고 잘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자리도 불안하기는 매 한 가지일 듯 하다. 회사는 붕 떠 있고, 담당자들은 자꾸만 퇴사를 해서 연락이 안 되고, 그러니 답변이 늦어지고.. 이대로 쭉 흘러가다가 어딘가에는 정착을 하겠지, 하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