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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북페어 참가 소감

오래된 낡은 기왓장 아래 피어난 인연들.

by 볕뉘

부여에서 열린 제1회 북페어에 참가했다.

낡은 기왓장 아래, 빗소리와 고요한 바람이 돌담을 스치고, 느리게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의 발자취가 한 장의 시처럼 남았던 잊지 못할 마음의 풍경들.

그 속에서 책 한 권, 또 한 권이 사람의 손을 타고 건너가던 풍경은 잊을 수가 없다.

책을 만든다는 건 결국 마음을 나누는 일이고, 누군가의 하루 속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가는 일이라는 걸, 그날 비로소 더 깊이 깨달았다.


수줍은 표정의 학생이 건네는 말 한마디.

“문장이 참 좋네요.”

이 한마디에 마음이 덜컥 울컥했고, 엄마가 딸에게 책을 선물하던 순간엔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광주에서 일부러 찾아와 주신 지인분들. “한 바퀴 돌고 다시 올게요”라며 약속을 지키고 돌아온 앳된 청춘의 독자, 연예인급 미모의 연인들, 이름도 얼굴만큼 어찌나 곱고 이쁘던지.

핸드메이드 북커버가 너무 이쁘다면서 본인도 글을 쓰고 있다며 수줍은 미소와 함께 커버를 무려 세 개나 사가신 작가님. 대전에서 곧 그림책 책방을 하실 거라며 책을 사가신 예비 책방 지기님, 부여에 여행 왔다면서 서로 선물을 주고받던 어르신들의 다정함, 반려돌이 너무 예쁘다면서 가족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면 사가신 독자님. 그리고 나의 애정 책방 '바베트의 만찬' 지기님들, 그리고 책방 지인 소영 님 가족까지. 그리고 앞으로 출판사와 인연이 될 담은 작가님, 페어 준비로 어수선한 마음을 다잡아 주신 하정작가님, 도서전 내내 든든한 믿음과 격려로 힘이 되었던 수정언니. 마지막으로 마음 서재 부스를 일부러 찾아와 주시고, 발걸음 해주신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반짝이는 나의 계절>이라는 제목이 참 좋아서, 볕뉘라는 작가명이 좋아서 다시 왔어요”하며 웃어 주신 어르신.

어르신은 잠시 책을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나도 한때는 반짝이는 나의 계절이 있었지.” 그 말이 계속 오랫동안 마음을 간지럽혔다.


페어 이후로 책을 건네고 받았던 미소들이 자꾸 떠올랐다.

책은 그렇게 사람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났다. 누군가의 마음을 스쳐 지나며, 다시 새로운 인연이 되어 가는 풍경 안에서 마음이 뜨겁다 못해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날만큼은 정말로 책이 ‘날개를 단다’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열네 번에 싸인, 수많은 미소, 수많은 대화.

그 짧은 순간들 속에서 책은 종이가 아닌 ‘사람의 마음’으로 존재했다.


이런 뜻깊은 행사에는 보이지 않는 다정한 손길들이 북페어를 완성해 가고 있었다.

이른 새벽부터 부스를 닦고, 무거운 상자를 나르고, 방문객들을 환하게 맞이해 주신 스태프분들. 다채로운 행사의 기획을 도맡아하시면서 도서전 내내 뛰어다니면서도 미소를 머금고 계셨던 서이사님의 따뜻한 미소.

같은 길을 걷는 다른 출판사 대표님들, 각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꺼내며 서로의 노고를 다독여 주던 눈빛.

그 모든 장면이 참 따뜻했다.

누군가는 말없이 종이컵에 커피를 담아 건네고, 누군가는 내 책을 조심스레 펼쳐 보며 응원을 전했다.


이날의 부여는 그 어떤 도시보다 다정했다.

행사장을 천천히 둘러보다 보면, 햇살이 책 위에 내려앉고 바람이 페이지를 살짝 넘겼다.

마치 오래된 책갈피 속에 남은 향기처럼, 그 순간의 공기는 포근했다.

책을 사 가신 독자님들의 얼굴 하나하나, 손끝의 온기 하나하나가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책을 건네는 그 짧은 찰나에 전해지던 따뜻한 체온이 아직도 내 마음 한편을 데워준다.

기왓장 아래에서 들리던 잔잔한 바람 소리, 책을 안고 가던 독자님의 뒷모습, 그리고 “오늘 이 책을 만나서 다행이에요”라는 말 한마디. 이 모든 순간이 나를 다시 쓰게 만든다.


부여 북페어는 내게 단순한 행사 그 이상이었다.

그곳은 ‘관계의 온도’를 다시 배운 자리였고, ‘책이라는 다리’를 건너며 사람을 만난 시간이었다.

책이 사람을 만나고, 사람이 문장을 품고, 그 문장이 다시 누군가의 삶으로 이어지는, 그 순환의 아름다움을 전신으로 느낀 날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믿는다.

책은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잇는 가장 따뜻한 매개체라는 것을.

부여의 가을이 내게 가르쳐 준 건 바로 이것이었다.

책을 통해 이어진 모든 인연이, 내 삶의 문장으로 오래 남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그날, 서로의 눈빛이 이렇게 말하길—

“그때, 당신의 책을 읽고 참 따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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