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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나

작은 육각형의 딸을 소개합니다.

by 갱쥬

어렸을 땐 무서운 게 없었다.

30년 조금 넘게 산 지금, 내 리즈시절은 초등학생 때인데 특히 4학년 때는 맨날 반에서 상을 받았다. 시를 쓰면 칭찬받고 발표하면 다 정답이고. 그때는 발표 공포증도 없었고 새로운 걸 해내는 게 어렵지도 않았다. 세상이 내 발아래에 있는 것 같았다. 자신감으로 빵빵하던 초등학생 시절을 지나 중학생 땐 일진들의 기세에 눌려 기를 못 펴고 고등학생 땐 똑똑하지 않은 머리로 공부에 매진하느라 진을 다 뺐다. 대학생 되면 놀기만 할 줄 알았는데 웬걸, 마지막에 취업 때문에 혹시 몰라 넣었던 간호학과에 입학해서 4년 내리 공부만 했다.

그 흔한 아르바이트나 미팅도 안 해봤고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라 엉덩이로 공부에 승부를 봤기 때문에 고등학생 때보다 더 징하게 공부만 했었다.


초등학생 때 넘치던 자신감과 관종미는 더 이상 나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4년이 흘러 졸업 후 간호학과답게 취업은 쉬웠다. 하지만 공부를 제외한 대외적인 경험이 하나도 없었던 샌님답게 직장생활 적응은 쉽지 않았다. 동기들의 도움과 술의 도움을 받아가며 1년 반을 버틴 첫 직장. 한 단계 위로 레벨업 해야 하는 순간에 버거워서 그만둔 두 번째 직장. 이때쯤 스스로를 '향기 없는 꽃'이라고 생각했다.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특별하게 없는 매력 없는 사람. 요새는 다 잘하는 사람을 보고 육각형 인간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냥 아주 작은 육각형을 그린 사람이었다.

세 번째 직장은 간호사들 사이트에서 별로라고 정평이 나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똥인지 된장인지 내가 판단하겠다고 입사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똥으로 결론을 내리고 그만뒀다.


세 번째 직장을 그만두며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자고 마음먹었다. 사실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두며 고민했는데 그때는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잣대를 내가 아닌 타인의 시선에 뒀다. 남들이 생각했을 때 좋아 보이는 걸 하려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매일이 두렵기만 했다. 스트레스가 절정에 이른 어느 날은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 척하고 때리면서 엉엉 울었다. 가족들이 아는 게 싫어서. 새로운 걸 시작하려다 내가 죽겠길래 도망치듯 세 번째 직장에 입사했었다.

그렇게 입사한 직장이 똥이었기에 그만둔 후 이번에야 말로 '내가' 좋아하는 걸 찾고자 했다. 가장 행복했던 시기인 초등학생 때가 떠올랐고 그때 내 꿈이 시인이었던 것도 기억이 났다.


다시 창작이 하고 싶어졌다.

작은 육각형 인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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