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진다는 증거

12화. 안정형 vs 도파민형 인간 구분법

by 담윤



사람을 만나고 난 뒤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아주 단순한 기준 하나를 갖게 되었다.


이 사람 곁에 있으면

내 전압은 유지되는가, 아니면 튀는가.


그 질문 끝에

관계는 두 갈래로 나뉘기 시작했다.


안정형, 그리고 도파민형.



안정형 인간은

함께 있을 때 전력이 일정하게 흐른다.


대화가 많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고,

침묵이 생겨도 채워야 한다는 압박이 없다.


이 사람 앞에서는

설명 모드가 자동으로 꺼진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굳이 논리로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오늘은 좀 그렇다”라고 말하면

그 말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안정형 관계에서

나는 기능이 아니라 존재로 남는다.



반대로 도파민형 인간은

곁에 있으면 전압이 확 올라간다.


대화는 재밌고,

속도는 빠르고,

반응은 즉각적이다.


처음엔 생기가 도는 느낌이 든다.

머리가 또렷해지고

말이 잘 나오고

웃음도 많아진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


어깨가 다시 올라가고

숨이 짧아지고

말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진다.


도파민형 관계에서는

나는 늘 잘 반응해야 하는 사람이 된다.



문제는

도파민형 인간이 나쁘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도파민형 관계는

단거리 전력에는 강하지만

장거리 유지에는 취약하다.


자극을 계속 공급해야 하고

침묵이 길어지면

불안이 올라온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는 스스로를 점검하게 된다.


지금 이 반응,

내가 원해서 하고 있나

아니면 끊기지 않으려고 하고 있나.



회복 이전의 나는

이 구분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도파민형 관계에

더 끌렸다.


감정이 먼저 뛰고

전압이 불안정할수록

자극은 일종의 임시 전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사람 곁에 있으면

잠깐은 살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돌아오면

항상 방전이었다.


그걸 관계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내 체력 문제라고 착각했다.



안정형 인간은

처음엔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자극이 적고

속도가 느리고

반응이 과하지 않다.


그래서 회복 전의 나는

그들을 “심심한 사람”으로 분류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오해였다.


그들은 심심한 게 아니라

에너지를 덜 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전압이 낮은 시기에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사실 이 안정형 관계 덕분이었다.



중요한 건

사람을 한 타입으로 고정하지 않는 일이다.


같은 사람도

상황에 따라 안정형이 되기도 하고

도파민형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나 역시

상태에 따라 다르다.


전압이 충분할 땐

도파민형 관계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전압이 낮을 땐

그 관계는 바로 소모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제 나는

사람을 보기 전에

내 상태를 먼저 본다.



이 구분을 하고 나서

관계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기대치였다.


도파민형 인간에게

안정감을 기대하지 않고,

안정형 인간에게

흥분을 요구하지 않는다.


각자의 전력 특성에 맞게

역할을 부여하니

관계는 훨씬 덜 삐걱거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덜 미워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관계를 이렇게 정의한다.


안정형은

내 회로를 보호해주는 사람이고,


도파민형은

내 회로를 흔들어 깨우는 사람이다.


둘 다 필요하지만

같은 비율로 필요하지는 않다.


회복 이후의 나는

이 비율을

처음으로 스스로 조절하기 시작했다.


그게

관계에서 되찾은

가장 큰 자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