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게으른 게 아니라 무서웠어
사랑하는 아들.
먼 훗날, 네가 어른이 되어 이 글을 읽게 될 때쯤이면 엄마는 조금 더 주름진 얼굴로 네 곁에 있겠지. 그때의 너는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생각이 많고, 남들보다 조금 더 신중하고 사려 깊은 어른으로 자라 있을까.
엄마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있어.
네가 일곱 살이던 어느 아침, 현관 앞에서 신발을 신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던 그날 말이야.
"얼른 신어야지. 늦었어."
엄마의 재촉에도 너는 운동화 끈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지. 엄마는 그 순간 마음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어. 답답함이었을까, 화였을까. 결국 나는 "왜 이렇게 굼떠!" 하며 네 작고 하얀 등을 아프게 밀어붙였던 것 같아.
아가, 사실 이 글은 그때 너의 그 작은 등을 위한, 아주 긴 사과문이야.
엄마는 그때 몰랐어. 네가 신발을 신기 싫어서 꾀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는 걸.
너는 운동화 끈이 엉켜 있는 모습, 현관의 냄새, 엄마의 날 선 목소리, 오늘 학교에서 마주할 낯선 상황들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머릿속이 하얗게 얼어붙어 버렸다는 걸 말이야.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너무 잘하고 싶은 아이가 겪는 '거대한 공포'였다는 걸, 엄마는 너무 늦게 알았어.
사실 엄마도 그랬거든.
30년 전의 엄마도 교실 창가에 앉아 너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어. 선생님은 나를 "참 얌전하고 순한 아이"라고 칭찬했지만,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어.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 멈춰버린 나 자신을, 나는 '바보 같다'고, '의지박약'이라고 미워하며 컸단다.
그래서 너를 보며 화를 냈나 봐.
네가 멈춰 서 있는 그 모습에서, 내가 평생 감추고 싶었던 그 겁쟁이 여자아이를 봤으니까. 너만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너만은 좀 빠릿빠릿하게 세상에 적응하기를 바라는 욕심이, 너를 찌르는 칼이 되는 줄도 모르고 말이야.
아들아.
엄마는 이제야 알게 됐어. 우리는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한 안테나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걸.
세상의 모든 자극을 온몸으로 받아내느라, 남들보다 에너지가 빨리 닳고, 그래서 자주 멈춰 서서 숨을 골라야 한다는 걸.
그건 틀린 게 아니었어.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신중한 엔진을 달았을 뿐이야.
이 책은 엄마가 너를 키우며, 그리고 나 자신을 다시 키우며 써 내려간 '생존 기록'이자 '화해의 일기'란다.
세상 사람들이 너에게 "왜 그렇게 느리냐"고, "왜 멍하니 있냐"고 다그칠 때, 엄마만은 너의 그 침묵이 '생각을 고르는 시간'임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쓴 글이야.
그러니 내 사랑하는 아들.
혹시라도 살다가 네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거든, 이 글을 읽어주렴.
너는 게으른 게 아니야. 너는 겁이 많은 게 아니야.
너는 그저, 안전하고 정확하게 가고 싶어서 잠시 멈춰 서 있는, 아주 신중하고 근사한 사람이란다.
너를 보며 자꾸 내가 보여서 울었던 밤들을 지나,
이제는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위해.
너의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