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구석에 얌전히 앉아, 머릿속으로만 전쟁을 치르던 아이의 비명
나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늘 비슷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성품이 온순하고 착하며,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습니다."
"다소 조용하나, 규칙을 잘 지키고 차분합니다."
엄마는 그 성적표를 보며 안도했다.
딸인 나는 말썽을 피우지 않고
얌전하게 커 주는 것이 엄마에게는
큰 위안이었을 것이다.
친척들도 나를 보면 늘 말했다.
"어쩜 애가 이렇게 순해? 있는 줄도 모르겠네."
나는 그 칭찬이 좋으면서도, 동시에 죽도록 싫었다.
그 '순하다'는 말은,
사실 내 무기력의 다른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ADHD라고 하면 교실 뒤를 뛰어다니거나,
수업 도중 소리를 지르는 아이를 떠올린다.
하지만 나의 ADHD는 그런 소란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
나의 전쟁은 언제나 머릿속에서만 일어났다.
그리고 그 전쟁은 너무나 조용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가장 공포스러웠던 시간은 '자유 시간'이었다.
미술 시간에 선생님이 도화지를 나눠주며
"자, 오늘은 그리고 싶은 걸 마음껏 그려보세요"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옆 짝꿍은 벌써 크레파스를 꺼내 나무를 그리고,
앞자리 아이는 로봇을 그리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손은 거침이 없다.
그런데 내 손은 도화지 위에서 꼼짝도 하지 못한다.
'무엇을 그리지? 나무? 아니야, 너무 뻔해.
로봇? 난 로봇을 잘 못 그리잖아.
그럼 우리 집 강아지?
털 색깔을 무슨 색으로 칠해야 하지?
망치면 어떡하지?'
수십, 수백 가지의 선택지가
머릿속을 윙윙거리며 날아다녔다.
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나는 게을러서 안 그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너무 잘하고 싶은데,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뇌가 입력 과부하에 걸려 시동이 꺼져버린 것이었다.
그걸 의학적으로는 '동결(Freezing)' 반응이라고
부른다는 걸,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하지만 선생님의 눈에는 그저 '얌전히 앉아 고민하는 신중한 아이'로 보였을 것이다.
혹은 '그림 그리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 아이' 정도였겠지.
선생님이 내 곁을 지나가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우리 00이는 오늘도 참 얌전하네."
그 말이 내 목을 졸랐다.
선생님, 저 지금 얌전한 게 아니에요.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거예요.
머릿속이 하얗게 타버릴 것 같아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어요.
제발 누가 나한테 "그냥 사과를 그려"라고
정해줬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착한 아이'여야 했으니까.
소란 피우지 않고, 선생님을 귀찮게 하지 않는,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어야 했으니까.
그렇게 나는 가면을 쓰는 법을 배웠다.
속으로는 패닉에 빠져 허우적대면서도,
겉으로는 평온한 표정을 짓는 법.
수업 내용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듣고 있는 척,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는 법.
사실은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 대가는 가혹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나는 녹초가 되어 쓰러졌다.
몸을 쓴 것도 아닌데 늘 피곤했다.
하루 종일 긴장 상태로 '정상인 연기'를 하느라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린 탓이었다.
엄마는 "학교만 다녀오면 애가 왜 이렇게 쳐지니?"
라고 걱정했지만,
나는 그저 "그냥 졸려서요"라고 둘러댔다.
'순하다'는 칭찬은 나를 병들게 했다.
만약 내가 그때 교실을 뛰쳐나가거나 책상을 엎었다면,
차라리 일찍 진단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얘가 좀 이상해요"라며 병원에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완벽하게 숨었다.
어린시절 '모범생'이라는 껍데기 속에,
불안에 떨고 있는 겁쟁이를 감췄다.
그래서 3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내 아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유치원 선생님이 웃으며 건네는 말 한마디 때문에.
"어머님, 아이가 참 순해요.
수업 시간에도 딴짓 안 하고 가만히 잘 앉아 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내 아들의 그 '가만히'가,
평온함인지 아니면 공포인지.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가, 너도 지금...
그 작은 머릿속에서 혼자 전쟁을 치르고 있는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