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감정 과부하 vs 사고 단절 — 두 극단을 오가던 뇌의 전압
그 시절의 나는 하나였다.
하지만 뇌의 상태는 두 개였다.
하나는 지나치게 뜨겁고,
하나는 너무나 냉랭했다.
어떤 날은 사소한 말에도 감정이 폭발했고,
어떤 날은 큰일이 벌어져도 무감했다.
마치 온도 조절기의 눈금이
중간을 잃어버린 것처럼.
나는 한 사이클 안에서
두 개의 극단을 오갔다.
과열 단절 과열 단절.
그건 성격이 아니라
전압의 문제였다.
⸻
감정 과부하 — 전류가 한 번에 몰렸을 때
감정이 과부하된 날들은
마치 전력선이 과열된 것처럼 빠르게 불탔다.
대화 중 상대가 잠시 눈을 내리깔면
“내가 불편한가?
내 말을 싫어했나?”
이런 해석이 회전을 시작했다.
해석은 곧 확신처럼 느껴졌고
확신은 반응을 만들어냈다.
말보다 감정이 먼저 뛴 4화의 상태가
더 짙어진 버전이었다.
그날은 반응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빨랐다.
• 작은 목소리 떨림 상처로 인식
• 무심한 툭 던진 말 공격으로 해석
• 잠깐의 침묵 거절로 받아들임
뇌는 사소한 자극에도
위기 상황처럼 전압을 몰아줬다.
그 과도한 볼트는 결국
울컥함, 과한 방어, 날 선 말투로 튀어나왔다.
감정 회로는 살아 있었지만
조절 장치가 없었다.
⸻
사고 단절 — 전원이 떨어질 때
그 반대편에는
아예 신호가 먹통이 되는 날도 있었다.
감정은 멀어지고,
생각은 잠기고,
몸은 일상을 수행하는데
나는 없었다.
마치 회로 전체가 정전된 것처럼.
불이 전부 꺼진 방에 혼자 있는 느낌.
누군가 웃는 이야기를 해도
귀만 듣고 반응은 없었다.
울 일이 생겨도
눈물 대신 무표정이 나왔다.
슬픈 것도 아닌데,
기쁜 것도 아닌데,
그저 텅.
이 단절 상태는
고통보다 더 공포스럽다.
느낌 없이 살아 있다는 건
살아 있다는 체험을 잃는 일이니까.
⸻
극단의 리듬 — 전압이 튀던 메커니즘
나는 왜 두 상태를 반복했을까.
그 답은 단순하면서 명확하다.
감정 과부하는 에너지 과출,
사고 단절은 시스템 셧다운.
과부하가 오래 지속되면
뇌는 회로를 보호하기 위해
스위치를 내린다.
그게 단절이었다.
• 감정 과부하 = 불꽃
• 사고 단절 = 정전
즉, 둘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루프였다.
과부하 에너지 소모 단절 다시 과부하
(이 사이에서 나는 계속 소진됨)
감정이 많은 게 문제가 아니라
뇌가 그 감정을 처리할 배터리가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
장면 하나 — 불꽃처럼 튀던 날
집에서 첫째가 숙제를 미루고 있을 때
내 목소리는 이유보다 먼저 올라갔다.
“왜 지금 안 해?”
“얼마나 말했어?”
그 순간 나는 내가 화냈다는 자각이 없었다.
그저 빠른 감정이 나를 앞질렀을 뿐.
그리고 10분 뒤
불이 꺼진 듯 멍해졌다.
미안함도 늦게 찾아왔다.
죄책감이 뒤늦게 밀려왔고
그 감정마저 제대로 표현할 말이 없었다.
불꽃처럼 튀고,
그을음만 남겼다.
⸻
장면 둘 — 정전처럼 꺼진 날
다른 날은 정반대였다.
셋째가 울어도
손은 자연스럽게 쓰다듬었지만
내 감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얼굴은 웃는데
속은 텅.
상실 이후 찾아온 냉각기였고
설명 없는 단절의 시간이었다.
나는 애정을 잃은 게 아니라
전류를 잃은 상태였다.
그 진실을 몰랐기 때문에
그 시절의 나는 스스로를 의심했다.
“나는 왜 이렇게 무감하지?”
“내가 사람이 맞나?”
그러나 지금은 안다.
그건 무감각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
이 두 가지는 병이 아니라 신호였다
이제 깨닫는다.
감정 과부하도, 사고 단절도
둘 다 나를 살리려는 방식이었다.
• 감정 과부하 = 도움이 필요하다는 호출
• 사고 단절 = 더 버티기 위해 임시 차단한 회로
즉 둘 다 몸의 SOS였다.
나는 고장 난 게 아니라
살기 위해 구조된 상태였다.
그걸 몰랐던 시절엔
나를 비난했다.
지금은 그 시절의 나를
그저 안아주고 싶다.
“너는 무너진 게 아니라
버티고 있던 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