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진 걸음표에 피어난 노란 수선화

by 김근상

요즘 나의 하루는 예전보다 꽤나 게을러졌다. 몸이 무거워진 탓도, 마음이 시들해진 탓도 아니다. 불쑥 찾아와 나를 괴롭히는 오른쪽 엉덩치뼈의 통증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걷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 하루 평균 8천 보에서 1만 보 정도는 우습게 넘기며 활기차게 거리를 누볐다. 걷는 일은 내게 가장 쉬운 운동이자, 하루를 정리하는 즐거운 의식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신발 끈을 고쳐 매고 현관문을 나서는 일조차 ‘큰맘’을 먹어야만 가능한 일과가 되어버렸다. 몸 한구석의 통증이 삶의 반경을 이토록 조심스럽게 만들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이 야속한 엉덩치뼈 통증은 나의 오랜 꿈이었던 히말라야 트레킹마저 시험에 들게 했다. 장엄한 설산의 품에 안기겠다는 열망 하나로 준비했던 여정이었지만, 출발 전부터 찾아온 통증에 덜컥 겁이 났다. 결국 정형외과에 들러 15일 치의 약을 처방받아 배낭 깊숙이 챙겨 넣고서야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진통제에 기대어 한 걸음 한 걸음 무던히도 내디뎠던 히말라야의 오르막길은, 대자연의 경이로움과 내 몸의 한계를 동시에 절감하게 한 시간이었다. 겨우 무사히 다녀오긴 했지만, 그때부터 나는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어제는 통증을 핑계로 하루를 온전히 쉬어버렸다. 채우지 못한 걸음 수가 마음에 걸려, 오늘은 기필코 걸으리라 다짐하며 집을 나섰다. 발길이 향한 곳은 언제나처럼 나를 묵묵히 반겨주는 광교호수공원이었다. 호수 위로 부서지는 봄 햇살을 맞으며 걷다 보니 문득 내 걸음걸이가 느껴졌다. 전에는 보폭도 크고 속도도 빨라 바람을 가르며 걷는 기분이었는데, 지금 내 발걸음은 내가 생각해도 답답할 만큼 느려져 있었다. 좁아진 보폭만큼이나 줄어든 나의 물리적 에너지를 마주하는 일은 조금은 서글프고 씁쓸했다.


하지만 느려진 걸음이 내게 상실감만을 안겨준 것은 아니었다. 발걸음이 느려지니, 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길가에 웅크리고 있던 수선화가 어느새 톡, 하고 노란 꽃망울을 터뜨린 것이다. 그 선명하고 맑은 노란빛이 어찌나 곱고 예쁘던지,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따스한 봄볕 아래 수줍은 듯 당당하게 피어난 노란 수선화는 좁아진 보폭으로 걷는 내게 자연이 건네는 다정한 위로 같았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어 그 어여쁜 자태를 조심스레 사진에 담았다.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통증의 무게도 조금은 가벼워지는 듯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희망이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건강한 몸으로 삶의 아름다움을 오래도록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꿈이다. 그리고 그 꿈은 거창한 기적이나 대단한 묘약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반복 속에 답이 있음을 나는 안다.

비록 예전처럼 빠르고 시원스럽게 걷지는 못하더라도, 평상시에 틈나는 대로 부지런히 걷고 내 몸의 상태를 살피며 건강관리를 해나가는 것이 첫걸음일 것이다. 거기에 더해 매일의 식탁에서 좋은 음식을 잘 먹고, 밤에는 걱정을 내려놓고 단잠을 청하며,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멀리하는 일.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소통을 잘하고 살아간다면, 건강하게 장수하겠다는 나의 꿈은 결코 헛된 바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오늘 광교호수공원에서 만난 노란 수선화처럼, 나의 남은 삶도 서두르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아름답게 피어나길 바라본다. 조금 느려진 걸음표 위에서도 삶의 선율은 여전히 경쾌하게 흐르고 있다.


(2026. 03. 20)

작가의 이전글히말라야 마르디히말을 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