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찾기 어려운
여행을 좋아했다. 특히, 해외여행은 모든 게 새로워서 좋았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그 설렘. 언어도 외모도 삶의 형태도 조금씩은 다른, 그런 삶을 마주하는 게 좋았다.
여행자는 속박하던 현실의 무게를 벗어던진 채, 여행지를 경험하기에 한없이 좋다.
날이 맑으면 맑아서 좋고, 비가 오면 운치가 있어 좋고, 맛있는 한끼, 향긋한 커피 한 잔에 행복해진다.
우연히 마주한 정겨운 사람들의 모습, 고양이, 번쩍번쩍 빛나는 전광판, 대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등 나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아직도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감회가 새롭고 그 자체로 설레긴 한다.
얼마 전, 일본을 다녀왔는데 광주에서 가느라 밤 12시에 인천공항행 리무진버스를 탔는데 내내 후회가 됐다. 여행가는 그 한 주동안 업무가 몰려 내내 야근을 했는데 밤버스를 타고 아침 비행기를 탄 채 여행을 시작하는게 과연 정말 맞는건가, 나는 내 체력을 대체 얼마나 대단하게 생각했던 건가 등 별별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버스에 타자마자 그 밤에 왁자지껄 이야기하는 무리가 있어 한숨도 못잔 채 도착할까 걱정되었으나 이내 조용해졌다.
그동안은 서울에 살았어서 공항버스를 타면 한시간 반 정도의 시간에 도착했었는데 이번에 광주에서 밤버스를 타고 가니, 십여년 전 방콕에서 치앙마이를 가며 8시간 남짓 탔던 버스가 떠올랐다.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한달동안 태국을 여행했다. 고생이라면 사서 하는 고생인데 무작정 즐거웠다. 다음 여행지에선 어떤 일들이 생길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모든 게 첫경험이었다. 이후에도 필리핀, 홍콩, 유럽 일주, 미국, 대만, 일본 등 계속해서 여행했다. 그런데 더이상은 여행의 계획을 세울 때 이전만큼 설레지가 않는다.
여행을 좋아하기에, 친구들이 가자고 하면 무조건 yes다. 가서 나쁠 건 없으니까라고 생각하며 일단 약속을 잡는데 사실 이전처럼 가고싶어서 궁금해서 같은 마음은 많이 줄었다. 아이유 노래 팔레트의 가사 '요즘엔 그냥 쉬운 게 좋아'처럼 요즘엔 정말로 편한 게 좋다. 막상 여행을 가면 여기까지 왔는데, 더 많이 보고싶은 마음에 열심히 돌아다니고는 여행 후에 돌아와서 지쳐버리고는 한다.
오히려 국내 여행에 빠지고 있다. 그것도 사람이 덜한. 핫플레이스는 아닌 곳들로 말이다. 휴가를 길게 내지 않아도 갈 수 있고, 휴가를 며칠쓰면 여유롭게 그곳을 즐기다 올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다. 지난달에는 동해와 정선을 다녀왔는데, 온전히 바다와 산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그 소소한 시간을 공유하며, 편안한 시간을 가지는 게 좋았다.
여전히 여행을 좋아한다. 내가 아직 마주하지 못한 세계가 궁금하지만, 열아홉의 나처럼 더 많은 것을 눈에 담고 싶어서 열정적으로 돌아다니면서 즐겁지 않다. 여행지에 가서 그 동네의 정취를 느끼고, 그곳의 삶을 구경하고, 그곳의 시간을 입은 식당과 찻집이 내 마음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만든다. 나는 여전히 조금은 정적으로, 눅진하게 여행지를 느끼고 싶다. 사람들의 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게 좋다. 혹은 그냥 멍하니 앉아 그들의 하루를 구경하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