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의 미학
2019년 결혼 서류 준비한 것을 뒤집어엎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게 되었다.
여러 나라의 다양한 가게에서 바텐더로 일해온 경험 덕에 멜버른에 도착하자마자 어렵지 않게 관련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실력을 인정받아 슈퍼바이저로 승진을 하게 되었고 높은 샐러리에다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아닌 정식 워킹 비자까지 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터져버린 세계적인 판데믹.
covid19!
호주는 엄격한 초기 대응으로 국가 락다운을 바로 선포했고 슈퍼에 장 보러 갈 수 있는 시간만이 주어져 일은 물론, 집 앞 공원도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소득도 없이 한 달에 80만 원이 넘는 집 월세를 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집 안에만 갇혀있자니 여러모로 곤욕이었다.
그때 당시 한국은 그리 많지 않은 확진자 수와 큰 규제가 없었기에 이럴 바에는 한국으로 돌아가 내 가게를 차리자 마음먹었다.
항공편 문제로 정말 어렵사리 한국에 돌아와 쉴틈도 없이 2주의 자가격리 동안 차리게 될 가게 콘셉트, 메뉴 구상 등을 하고 격리에서 나오자마자 혼자서 역세권 조사며, 부동산 계약이며 인테리어 공사, 도매상 컨택, 홍보 등 엄청난 양의 준비를 일사천리로 마쳤다.
그러나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것들이 무색하게끔 가게 오픈 바로 직전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이 몰려왔고 전부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어버렸다.
언제나 내 옆에서 신적인 존재로 있어준 하나뿐인 언니에게 눈물을 머금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언니 나 너무 무서워- 난 진짜 지금 이게 내 인생의 전부인데 망하면 어쩌지? 난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그냥 지금이라도 그만둬버릴까?"
"그게 왜 너의 전부라고 생각해? 넌 그것 말고도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잖아! 망하면 또다시 다른 거 하면 되지 무슨 걱정이야."
언니의 이 말이 없었다면 지금의 '소셜해이븐(내 가게 이름)'과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언니가 해주었던 '망하면 다른 거 하면 되지'라는 말은 '아무렴 뭐 어때'라는 무책임함이 아닌 오히려 '난 뭐든 잘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자신감을 가지게 해주었고 나 스스로 만들어낸 두려움과 괴로움들을 내려놓을 수 있게해주었다.
이 일을 꼭 성공시켜야만 한다는 나의 집착과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불필요한 감정들을 내려놓자 오직 기대되고, 신나고, 자신감 넘치는 긍정적인 마음들로만 가득한 채 가게 오픈을 할 수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시작한 나의 가게는 '내려놓음'이라는 힘의 비결 덕분에 이 어려운 코로나 시기도 거뜬히 견뎌내며 걸출한 성과를 내는 가게로 거듭날 수 있었다.
무언가를 손안에 꼭 쥐고 놓치려 하지 않을수록 내 손만 더 아파질 뿐이다.
그저 손에 힘을 빼고 있는 그대로 열어두어 모든 것이 흘러가도록 놓아두어야 비로소 나 자신이 만들어낸 집착과 두려움이라는 허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활짝 열린 그곳에는 오직 따뜻하고 긍정적인 마음만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조금 내려놓으면 작은 평화를 얻을 것이고, 많이 내려놓으면 큰 평화를 얻을 것입니다. 완전히 내려놓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당신의 가슴은 자유로울 것입니다."
(드디어 오늘 정말 오랜만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제한시간 규제가 풀리고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늦게까지 일을 하다 들어와서 감사한 마음에 적어보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