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복제품이 있다는 사실.

나의 복제품 DNA

by 거북이

1. 복제본의 시공간.


나의 복제품은 어느 한순간에 태어나지 않았다. 쇼핑몰 회원가입, 통신사 약정, 공공기관 서류 제출 등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편리함'과 맞바꾼 수많은 데이터 조각들이 인터넷 어딘가에 쌓여 나의 복제품의 DNA가 생겼다. 우리는 무심코 동의 버튼을 누르며 나의 복제품의 팔다리를 스스로 만들어줌 셈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주민등록번호는 만능열쇠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복제품은 국경 없는 디지털 세상을 떠돌며 활동하고 있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명의가 되며, 내가 가보지 않은 사이트의 회원이 되고 있다. 현실에 치어 내 몸 하나를 건사하기도 힘든데, 나의 복제품들은 수십, 수백 개로 증식하여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앞으로 나의 복제품은 더욱 진화할 것이다. 유출된 얼굴 정보는 AI기술과 결합해 나와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나의 아바타가 될 수도 있다. 나의 패턴을 학습한 AI 복제품은 나보다 더 나 같은 결정을 내리며 금융 사기, 여론 조작 등에 악용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나의 복제품은 디지털 유령이 되어 영원히 인터넷 세상에서 살아갈 수도 있다.


시간이 갈수록 내 복제품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내 스마트폰으로 걸려 오는 스팸 전화, 내 메일함에 쌓이는 메일들. 내 삶의 경계를 침범하고 있다.

나라는 존재의 안전지대가 소멸하고 있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이는 사회적 신뢰 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제 온라인에서 만나는 타인을 의심해야 하고, 기업은 진짜 고객과 가짜 고객을 구별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쓴다. 어쩔 수 없지만 불신이라는 단어가 살아가는 데 있어 기본세팅이 돼버렸다.


나의 복제품은 대한민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해외에도 쉽게 이동하고 있다. 이는 개인정보가 한 국가의 통제권을 벗어난 새로운 단어인 글로벌 난민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2. 다른 각도.



'내 정보가 유출되어 위험하다'라는 원래의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어떨까?


나의 복제품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당연한 증상이지 않을까?

우리는 왜 변치 않는 주민등록번호, 한 번 등록하면 영원히 가는 지문 같은 고정된 정보로 나를 확인하고 증명하고 있다. 나의 복제품이 시공간에 제한받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이런 고정된 정보로 우리를 확인하고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요즘 AI, 디지털 시대의 변화에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복제품이 문제가 아니라 복제품으로 나로 착각하게 만드는 낡은 시스템이다.


SNS에서 우리는 잘 편집된 데이터의 나를 보여주고 있다. 기업은 구매 기록이라는 데이터 상의 나를 보고 상품을 추천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수많은 데이터 복제품을 스스로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범죄에 악용되는 복제품은 이 현상의 가장 어두운 단면일 뿐, 우리는 이미 진짜 나와 데이터상의 나 사이에서 분열된 삶을 살고 있다.


진정한 문제는 누가 나의 정보를 이용해 범죄나 악한 의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정체성을 정의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이다.

국가는 국민들을 정의하기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고, 기업은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으로 정의한다. 이제 해커들은 온갖 정보들을 조합해 나라는 사람을 정의한다. 나의 정보는 나에게 통제권이 있다. 하지만 점점 통제권을 잃어가고 있다. 보안 문제가 아닌 디지털 시대의 인권과 주권의 문제라고 생각을 한다.




그동안 문제라고만 생각했던 것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생각해보고 싶었다.

내 개인정보가 보안의 문제가 있다고만 생각했다.

물론 보안이 잘 되면 개인정보유출로 인해 피해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새로운 다른 시선은 우리가 완벽한 보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보안을 원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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