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선약수
‘꼭 왔으면 좋겠어. 좋은 점심도 하고, 영화도 보고, 스파도 하고,
오랜만에 노래방도 즐기자꾸나. 그래 그래 올라와라.’
여기저기서 카톡이 들어왔다. 친구들과 그룹 채팅이 시작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 저녁을 끝내고 쉴 즈음이면 어김없이 직장을 갖고 있는 친구나 살림을 하는 친구나 의기가 투합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삶에 도움 되는 정보와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잠언들이며 좋은 사진도 보내온다. 스마트 폰 덕을 톡톡히 보는 것이다.
한참을 친구들과 연락을 하지 못하고 살았던 터라 처음엔 마음 열기가 조금 어려 웠다. 하지만 채팅하는 횟수가 잦아지자 그동안 살아온 길이 서로 달랐어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편하게 대화를 이어가게 되었다. 꿈 많던 갈래머리 소녀들은 사라지고 이제 우리의 자녀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光陰如流(광음여류)라고 했던가? 정말 세월은 물과 같이 빠르다.
지방에 사는 까닭에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이는 모임은 물론 좋은 미술관 체험이나 음악회, 친구끼리 훌쩍 떠나는 오붓한 일상의 탈출도 나는 함께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물오른 산수유 노랑 꽃봉오리가 내 마음에 불을 붙였다.
10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에 나는 6시 서울행 차를 예매하곤 새벽 댓바람에 집을 나섰다. 창밖으로 달이라도 벗이 되려나 살펴보았지만 달도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대부분 잠자리를 지키고 있을 까만 새벽이었다.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가벼운 책과 선물로 마련한 보따리를 들고 차에 올랐다.
남편에게 분명 앞자리 3번을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건만 원치 않은 자리에 몸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작은 자리 하나에도 불편해지는 나의 좋지 못한 성품을 반성하곤 차가 출발하자 곧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는지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어깨가 시려 눈을 떴다. 벗었던 코트를 다시 걸치고 차 안을 돌아보니 10명 남짓해 보이는 승객들은 모두 눈을 감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마도 나처럼 서두르며 나오느라 잠이 부족한 것이리라. 새삼스레 어둠을 헤치며 북으로 북으로 행진하는 기사님이 고마웠다.
어느새 조금씩 밝아지는 하늘을 보며 흔들리는 차에 몸을 맡기고 있자니 잠시 후 휴게실이라는 방송이 나온다. 잠든 듯 보이던 사람들이 말없이 하나둘씩 내린다.
나는 전화를 들어 중간보고를 한다. 어디냐고 묻는 그에게 지금 휴게실이라고 답하고 나 또한 남편에게 아침 운동을 했는지, 준비해 놓은 아침을 들었느냐고 묻는다. 아까 자리 때문에 불편했던 감정은 다 잊었다. 우린 늘 이렇다. 분을 하루를 넘기도록 품지 말라고 했던가?
어느새 경기도가 보이고 차가 밀리기 시작하는 도로를 보며 앞으로도 뒤로도 보이지 않는 차에 즐거워하며 옆집 마실 다니듯 경상도와 전라도를 넘나드는 남쪽의 여유와 느림을 문득 생각한다. 그리고 곧 만나게 될 섬진강 벚꽃과 청 매실 농원과 화계장터를 떠올린다.
봄이 왔다. 추운 겨울 높고 긴 문턱을 넘어와 곁에서 바람을 보내는 이 계절이 고맙기만 하다.
버스 전용차로 덕분에 정확히 예정시간에 도착한 터미널은 혼잡스러움은 간 곳 없고 손님 맞을 준비로 부산한 상점들이 눈에 띈다. 두 번의 지하철을 갈아타고 친구들과 약속한 장소를 찾아 오르는 계단은 무거운 짐 때문에 힘이 들 법도 한데 만남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숨차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미리 도착해 기다리던 친구들을 만나 반가움의 인사를 나눈 뒤 따뜻한 차와 과자가 놓인 편한 의자에 다리를 뻗고 2시간이 넘는 영화를 보았다. 전에 이미 보았던 것이지만 다시 보는 패왕별희는 새로운 감동을 주었다. 영화가 생각보다 길어지자 화장실을 찾는 친구들을 보고 우리의 지나간 시간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 고운 모습이어도 보이지 않는 세월이 숨어 있는 것을 어쩌리오.
금강산도 식후경인가. 점심을 와인에 곁들여 맛나게 먹고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 우린 준비해 온 수영복을 입고 스파를 하기로 했다. 여기저기서 적당한 온도로 나오는 물의 압력과 부력에 몸을 맡기곤 이른 시간 서둘러 나오고, 많은 계단을 오르느라 피곤한 몸에게 휴식을 주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날씬한 친구들은 어지럽다며 서둘러 나가는 것이 보였다. 평소에 복부에 인격을 키워온 보람이 있어 난 누구보다 오래 즐길 수 있었음이 또 얼마나 다행이던가?
마지막으로 예정된 같은 층에 있는 노래방에서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먼저 마이크를 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맙소사 이제 나는 앞서가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멀리서 왔으니 한 순간도 허비할 수가 없었다. 한 주 걸러 한양 나들이라고 놀려대던 주변 사람들에게도 절대로 나의 상한 자존심을 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떠나기 전 컴퓨터로 연습도 두어 번 해 보았던 터라 번호를 눌렀지만 여전히 희망은 희망일 뿐 난 음치 박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노래가 안되니 이번엔 이리저리 흔들며 춤까지 추어댔다. 모두들 돌발 상황에 놀라는 듯했으나 나의 노력 덕분인지 굳어있던 사모님들이세상만사 모두 내려놓고 즐겁게 합창도 하고 어울려 춤도 추며 즐거운 시간을 갖었다.
다음 달에도 오라는 러브 콜을 받으며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하니 어느새 내가 떠나올 때처럼 사방은 깜깜해 있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남은 우리의 삶이 가장 아름답고 보람되어 후회가 없을 것인가 생각해 본다. 하루가 지나면 또 하루가 오는 세월을 어떻게 아름답게 수놓을 것인가? 언제까지라도 우리가 곁에서 갖고 싶은 것은 역설적으로 사라져 가는 것들이라고 한다. 上善若水라고 했던가. 노자는 살아가는 최상의 방법은 물처럼 사는 것이라고 했다. 무서운 힘을 갖고 있으면서 겸손하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흐르는 물. 또한 유연성이 있어 네모진 곳에 부으면 네모가 되고 세모진 곳에 부으면 세모진 모양이 되는 것, 본질은 변치 않으면서 순응하는 삶 얼마나 멋진 삶인가? 때와 장소에 맞추어 살려고 노력하는 내 삶의 태도는 물의 성질에 조금 다가가는 시도는 아닐까? 난 집으로 내려오는 차속에서 노자를 생각했다. 그리고 상선약수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