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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영 Apr 03. 2023

카르페디엠


   카르페 디엠


비가 하루 종일 내리는 월요일이다.  석양을 볼 기회를 놓치고 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며칠째 왼쪽 어금니로 음식 씹기가 불편하여 후물거리기도 하고 오른쪽으로 음식을 먹는 날이 많아졌다.

한참을 벼르다가 치과를 찾았다. 누군들 병원 가기를 즐기겠는가? 더구나 치과는 신경 치료를 해본 분이라면 열에 아홉은  의사 선생님이 환자의 인격과 상황은 고려치 않고 마구마구 갈아내고 깊이 들어가 신경을 건드릴 때 다 젖히고 일어나 벗어나고 싶은 순간을 경험했으리라 생각한다.

평소 치아 관리를 나름 한다고 했지만 지난주 3번의 엑스레이를 찍고 난 결과는 모든 것이 나의 불찰로 판명되었다. 20년 넘게 봐 주시던 치과 의사 선생님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우선 집에서 가까운 곳이 편리하다고 하는 지인들의 충고에 따라 근처에 있는 치과를 찾았다. 반지며 목걸이 귀걸이까지 다 빼어놓고 앞니로 조그만 조각을 물으라며 간호사는 방을 비운다. 잠시 후 눈을 감으라고 지시가 내린 후 기계는 제 일을 수행하고 난 짐을 챙겨 엑스레이 실을 나왔다. 하얀 가운의 의사 선생님은 엑스레이를 판독하신 후 충치를 발견하곤 우선 충치치료를 위해 예약을 당장하고 이를 뽑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임플란트가 필요하다고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신다. 난 다음 날이 어머니의 기일인 것을 상기시키며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양해를 구하고 병원을 나왔다.

왠지 너무 서두르시는 듯싶어 다른 곳에서 2차 상담을 해보기로 했다.


첫 번 병원보다 훨씬 환자가 많이 보인다. 기다리며 둘러본 대기실에는 원장인 듯한 선생님이 소개된 신문 기사도 벽에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내게 소개해 주신 분의 말씀처럼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 같아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잠시 후 내게 오신 선생님은 엑스레이 결과가 좋지 않다며 그동안 치아 관리를 잘 못 해왔다고 난감해하신다. 지금 내가 아파서 음식을 잘 씹지 못하는 것은 어금니가 아니고 사랑니 때문인데 너무 잇몸이 낮아진 상태라고 하신다. 또한 사랑니가 제 자리를 못 잡고 기울어진 탓에 사랑니 바로 위의 치아가 아래로 내려오는 기이한 현상을 나타낸다고 했다. 치료 전 까진 뼈의 상태도 알 수 없다며 전에 했던 신경치료도 끝까지 마무리가 안 된 상태라고 하신다. 결국 위아래 치료를 다 해야 하는데 시간과 비용뿐만 아니라 결과에 대해서도 확신이 안 선다는 기막힌 말씀을 하신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잇몸이 낮아진 것은 그간 뵈어오던 선생님이 발치하는 것보다 본인의 이를 가능한 오래 쓰는 것이 좋다며 이를 간 것이 기억이 났다. 이걸 어쩌나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 걸. 나는 임플란트도 힘들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오며 난감했다. 소개로 왔다며 진료비도 안 받으시는 선생님이 고맙기도 했지만 실망이 더 큰 터라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돌아와 대학병원의 홈 페이지를 찾고 유명하다는 치과들을 찾아보고 임플란트에 대해서 알아보기도 하며 주말을 보냈다.


난 한 곳을 더 다녀오기로 했다.  거리가 조금 멀어도 감수하기로 했다.  지하철을 내린 후에 쉽게 찾지 못하여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조금만 더 참고 아래로 갔으면 될 것을 난 어두운 날에 어두운 마음으로 어두운 거리를 헤매고 20여분을 다녔던 거다. 거리엔 비정규직의 어려움을 말하며 지지를 얻고자 하는 군중의 모임이 있었고 수 십 대의 버스들은 매연을 뿜으며 줄기차게 서고 그리곤 또 떠났다. 수많은 빌딩의 숲에서 쏟아져 나올 직장인들을 위해 준비된 음식점들과 커피숖으로 종로 거리는 이른 오전에도 넘치고 또 흘렀다.

난 수술 시간이 겹쳐 원장님을 쉽게 뵐 수 없다는 친절한 직원의 말에 한 시간 후에 오겠다고 예약을 하고 근처 책방에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병원을 찾았다. 비슷한 절차를 밟고 만난 선생님은 내 말을 듣고 또 엑스레이도 보시곤 말씀하신다. 힘든 것도 사실이고 더 쓸 수 있으면 좋은 치아라 빼기는 아까우나 그래도 충치 치료 후 임플란트를 하는 것이 앞으로 오래 편하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예전에는 내가 받았던 방식으로 치료들을 하셨다고 말씀하신다.

첫 번 그리고 두 번째 만난 의사 선생님들과 중간 연배이신 세 번째 선생님은 치료에 임하는 방식은 내게 안정과 신뢰감을 주셨다. 그분은 다른 이의 작업을 인정하셨고 무엇보다 환자의 입장과 마음을 배려하시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난 이제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고 맡기겠다는 생각을 하며 병원을 나섰다.


생각해 보면 어디 이번 치과일 뿐이랴? 세상사 우리가 열심히 계획하며 살아도 못 이루는 일이 한 둘이겠는가? 또한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벌어진 사건들로 우린 또 얼마나 당황하며 허둥대었던가? 이런 불확실성의 연속인 우리네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믿는 마음과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인정이 아닌가 싶다.


나는 조용히 내게 말한다. 카르페 디엠. 임플란트에 드는 시간과 노력과 비용과 불편함  그 모든 것을 즐기리라고. 내일은 해가 밝게 뜰 것이라고 기상청도 예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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