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놀자

by 김인영

놀자 놀자.


봄이다. 하늘이 보내는 바람에 모두가 술렁거린다. 바람이 볼을 간질이니 마음도 방향을 잡지 못해 모두들 뛰쳐나간다. 근처 공원에는 어린아이들을 대동한 젊은 아빠와 엄마가 다정한 모습으로 잔디 위를 거닐고 거리엔 자전거에 몸을 살은 무리들이 각양각색의 헬멧을 뽐내고 질주한다. 봄방학이 이때쯤 있으면 학업에 힘든 학생들이 초록을 닮아 조금 더 밝아지지 않을까? 책상에 놓인 나의 달력을 보니 더 이상 공휴일이 아닌 식목일을 포함하여 여러 곳에 붉은 동그라미가 보인다. 모두 나의 휴일 표시다.
인간 뇌의 구조를 살펴본 학자들에 의하면 사람마다 뇌의 인지하는 바가 다 다르단다. 누군가는 인생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부위에 많이 할당이 되어있고. 누군가는 예술에 어떤 이는 일에 헌데 그중에 놀자 놀자 파가 있단다. 친구는 그것을 보는 순간 내가 생각이 났단다. 그리고 웃음이 팡 나오더란다. 친구의 말을 듣던 나도 함께 웃었다. 내 달력이 이렇게 빨간 동그라미가 많음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녀에 의하면 나는 놀자 파이니까. 모두가 열심히 일하는 때에 놀자 파라니 기왕이면 학구파라던가 예술파. 봉사파. 종교파. 뭐 좀 인생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사는 쪽에 서있으면 모양새도 좋으련만 염치가 없기도 하다. 아무튼 더없이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기다리던 님이다.
눈이 닿는 곳마다 꽃 잔치다. 한잔 술이 없어도 쉽게 취하는 난 놀자 파에 아주 적격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놀자 파는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쉬운 모임은 아니다. 건강이 따라 주어야 한다. 여기저기 아침마다 쑤신다는 분들이 주변에 많으나 다행히 아직은 아니다. 놀자 파에 얼마나 오래 속할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는 그렇다는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놀자 파는 여유가 함께 따라 주어야 한다. 과하지 않은 경제적 여유도 조금은 작용하지 않을까?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유연성과 더불어 틈새가 필요하다. 가끔 산이나 들로 나가 자연 속에 나를 맡기고 싶을 때 벗과 함께 식사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고, 도심에서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을 때도 영화 한 편정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멀리서 원정 오는 이들의 연주도 듣고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삶에서 잠깐 눈을 돌려 보는 여유가 가장 중요하다.
나는 브런치를 좋아한다. 언젠가 친구를 접대한다는 명목 하에 호텔에서 사흘을 입에 맞은 아침을 즐기고 담소하니 난 오전에 하루의 행복을 이미 다 맛본 것 같았다. 맛있는 것 먹으며 담소하며 오감을 즐기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 의지를 참으로 멋지게 사용할 수 있는 경우다. 입에 맞는 음식과 더불어 자연에 더욱 가까이 가고 신이 내려주신 모든 것에 감사의 순간을 좀 더 음미하는 때 이기도하다. 노는 것도 절제가 있어야 한다. 나의 놀 자도 나름 규칙이 있다. 되도록 가족과 함께 할 일이다. 해 넘어간 후 시간에는 외출을 가급적 삼갈 것. 그리고 책은 늘 손에 들고 노는 것이다. 그리고 적는다. 또한 나는 음악을 들으며 노는 것을 좋아한다. 이제는 트롯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경지에 이르렀다. 세월이 이룬 업적이다. 인생은 미완성. 유심초의 사랑이여 등은 여전히 내겐 명곡이다.
나는 울면서 논다. 걸으면서도 괜히 뭉클하다. 바람 때문이다.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셔 걸음을 멈추면 감사의 눈물이 흐른다. 새 날이 허락된 때문이다.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며 피아노를 칠 때 수화로 찬양을 부를 때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다. 보기 싫게 뒤틀어진 발로 세계 정상을 오른 발레리나의 모습을 보고도 난 눈물을 흘리고 눈보라에 굴하지 않고 산봉우리를 정복하려 한 사람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성공과 실패에 가슴을 쥐며 울기도 한다. 그땐 소리 없는 울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아주 작은 응원과 감사와 그리고 경이와 흠모를 보낼 뿐이다.
내가 놀며 살며 부러운 것이 있다. 선천적으로 손재주가 없이 울며 태어난 탓에 옷 한번 내 손으로 만들며 놀지 못한 것이 늘 아쉽다. 이번에 친구가 의상 디자이너를 며느리를 맞이하자 나는 앞으로 그녀에게 더 살갑게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진짜 창조적으로 노는 젊은이를 새 식구로 맞은 친구가 부러웠기 때문이다.
근래에 놀면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나만의 선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지은 수놓은 정갈한 이불보로 그들의 영혼을 덮어주고 싶다. 너무 정갈해서 그리고 따스해서 탁한 세상에 오염된 영혼을 맑고 가볍게 할 수 있는 이불. 그리고 이불 모퉁이 한 구석엔 그들의 좌우명을 함께 수놓으리라. 잠에서 깨어나면 밤 사이 내 안의 나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나를 발견하는 마법의 이불. 그렇게 함께 교감을 나누고 싶다. 사랑의 나눔을 갖고 싶다.

봄이다. 밖엔 벚꽃이 천지를 뒤덮어 비처럼 하늘에서 꽃비가 내린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축복처럼 내리고 있다. 어느 누가 이런 아름다운 날에 집에만 있겠는가? 모두 모두 나가서 하늘의 선물을 받을 일이다.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날은 혼자도 놀고. 그리고 벗하고도 논다. 그대가 나의 벗이 되어주지 않겠는가? 나는 앞으로도 여전히 놀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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