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갑자기 길을 잃으신 아버지는 숨가쁘게 움직이셨다.
한번은 PC방에 아버지와 함께 간 적이 있었다.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던 나는 마냥 좋았다. 아버지는 PC방 사장으로 보이는 아저씨와 대화를 한참을 나눴다. 대화가 계속 길어지기만을 바랐다. 그때 했던 게임이 나는 아직도 기억나는데 병원을 지어서 운영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다. 이제 막 병실을 만들고 환자가 병원에 방문하기 시작할 무렵, 아버지가 어때? 재밌어?라며 물어보셨다.
나에게 아버지는 PC방하고는 전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직도 왜 마이라고 표현했는지 알지 못하지만, 엄마는 정장 자켓을 마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어렸을 적에 마이안에 가디건을 입은 아버지가 참 멋있어 보였었나보다.
정장을 입고 출근하던 아버지는, 나와 오락실 한번 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 PC방이라니? 그 당시 내게는 갑작스럽고 놀라운 일이었다.
그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살 길을 찾아 PC방 창업을 알아보셨던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 가족은 어느 일식집에 갔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다다미 방 같이 되어 있었다. 고급 일식집은 태어나 처음이라 어색했다. 여동생과 나는 촌스럽게도 그렇게 두리번 거렸다. 수 많은 일식 반찬들과 회가 우리가족을 마중 나왔다. 참 기묘한 것은 그 때 횟집에 나왔던 생선 회의 대가리가 살아 있었는데 아직도 그 생선의 눈알이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얼마후 우리집은 꽤나 시끄러웠다.
은행원으로 20년 가까이 근무했던 아버지는 꽤나 많은 퇴직금을 받았다. 은행 본사의 자금부에서 기획파트에서 일하셨던 아버지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소규모 VC(벤쳐캐피탈)을 창업하고 그 퇴직금을 모아서 동업을 했다. 당시 IMF로 대출 받기가 상당히 어려웠고 이자 또한 천정부지였다. 은행을 퇴직한 은행원들은 치킨집 창업도 많이 했지만 아버지와 같이 VC나 보험으로 빠져 대출해주는 업도 많이 했었다.
그리고 섬뜩했던 생선 눈알을 내왔던 일식집 여사장님은 아버지를 상대로 사기를 쳤고 아버지의 퇴직금은 그렇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