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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게 Apr 06. 2022

울음과 울림 사이

'달과 6펜스' 감상포함  -윌리엄 서머셋 모옴-


감동적으로 읽은 책들 중에는 “달과 6펜스”가 있다. 책을 덮고서 울먹였던 기억이 있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책이 아닌데 하필이면 그때가 막다른 골목에서 주저앉았던 20대의 어느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다. 패션 디자이너가 되었다. 30여 년 전 그 당시의 의류회사 사정은 참으로 열악했었다. 초보 디자이너에게 주어진 업무란 시장에 가서 단추나 실 등의 부자재를 구입하고 회사의 온갖 잡일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전공자라고는 해도 6개월 복장학원에서 수강한 사람보다 실무에는 더 어둡고 대학 교육과정에 디자이너를 길러 낼 만한 커리큘럼도 없던 시절이라 견습기간이 꼭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매일 늦은 퇴근을 하고 시장조사나 매장지원을 하면서 주말을 보냈다. 그러나 그것이 유별난 열정 때문은  아니었다. 그 당시 패션업계의 분위기가 그랬다.  한 달 치 월급을 다 털어도 살 수 없는 값비싼 옷에 공헌한 것이 고작 단추 하나뿐 일지언정 언젠가 매장에 내 옷이 걸릴 거라는 희망고문에 시간과 노동이 헐값으로 매도당했다. 그럼에도 삶을 송두리째 내놓는 것에 암묵적인 동의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열정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의심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패션디자인은 상업성이 극대화된 예술의 한 분야이다. 디자이너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들의 삶은 평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약물 중독과 우울증, 알코올 중독, 등 방탕한 삶을 살았던 이브 생 로랑, 숱한 남성 편력이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후원을 위한 것이었는지 의심받으며 평생 불안정한 삶을 살았던 샤넬, 그들의 기행적인 삶이 창작의 고통과 무관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순탄하고 평범한 것은  예술적인 영감이나 창조적인 자극을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의 비난을 받고 조롱거리가 되면서까지 그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 과연 ‘달’이었을까? 그때는 그것을 달이라고 생각했다. 코코샤넬이라는 브랜드가 거대한 달임을 시대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예술이라고 치켜세워도 당장 매출로 증명해야 하는 현실은 디자이너를 잔인하게 괴롭힌다. 내가 디자이너를 시작할 즈음은 디자이너 브랜드가 주류를 이룰 때였다. 자신의 이름을  건 만큼  특출 난 감각으로 어필해야 했으니 그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압박과 아이디어의 고갈은 수시로 괴팍함으로 발현되곤 했을 것이다. 이를 견뎌내야 하는 것은 초보 디자이너가 감수해야 하는 필수 덕목이기도 했고 넘어야 할 혹독한 통과의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그 통과의례를 넘지 못했다. 고작 1년도 채 못 버티고 대학원에 진학하며 비겁한 도피를 선택했으니.


외형적으로 실패는 아닌 듯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듯하게 포장하며 시간을 벌어놨을 뿐, 결국 돌아갈 곳이 다시 그곳 이라는 것은 잠시 유보된 좌절일 뿐이었다. 고3 때 까지도 종이인형놀이를 하며 이 길이 내 길임에 한 치의 갈등도 없이 선택했던 세상은 종이인형 놀이를 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 집단에 속하기에는 재능도, 당참도, 성깔도 함량 미달이었다.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은 순탄치 않으나 노력은 가상하여야 하며 그 꿈을 이룬 모습은 행복할 것이라는 공식이 달과 6펜스에는 없다. 오히려 그 꿈을 위해서 가족을 버리고 사회의 지탄을 받는 악행을 범하고 스스로도 고투의 삶을 살다가 천명처럼 주어진 작품을 완성하고는 그림과 함께 소멸한다.

     

‘달’을 지탱하는 것은 인생을 송두리째 내던져야 할 만큼의 무게라는 것이 큰 울림이었던

‘달과 6펜스’     

 

다시 읽는다 해도 울림이 있을 거 같다. 그러나 눈물까지는 아닐 듯하다.

달에 견준다면야 한없이 비루한 삶일지언정 6펜스의 무게 또한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아버린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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