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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섭 Aug 23. 2021

건축기사 이상과 오감도와 거대한 벽

천재 민족시인 이상의 오감도, 90년 기존 해석은 폐기되어야 한다.

   이상이 오감도 연작시를 발표한 지 90년이 되어간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 현대시와 학자들은 오감도를 풀리지 않는 화두로 붙들고 인고의 세월을 보낸다고 한다. 

  필자 역시 오감도 해석을 두어 번 시도했었지만, 많은 의문만 남기고 실패했었다. 기존 학자들의 해석을 참고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오감도에서 멀어졌다가, 어떤 계기로 기존 학자들의 해석을 머리에서 지우고 오감도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가장 새롭게 눈에 띈 것은 이미 알고 있었던 제목 오감도가 조감도에서 왔다는 것과 이상이 건축기사라는 사실이었다. 

  초현실주의, 자아분열, 각혈, 섹스, 자위, 폐병, 모더니즘 등 기존 학자들의 해석을 걷어낸 자리에 건축기사 이상이 조감도와 설계도면을 펼쳐놓은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제목 오감도가 조감도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시제 1호는 전체 도면일 것이라는 예상으로 시를 읽기 시작했다. 


  첫 문장 “13인의 아해”로 알려진 “13”인이 이상이 살던 왜정 식민지 지배시대 조선 민족 인구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제목 오감도에서 까마귀 “오”가 의미하는 불길함과 죽음 등의 의미와 풋풋한 생명 그 자체이기도 한 “아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13인”이라고 해도 되는 것을, 굳이 “아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은 “13인의 아해”가 불행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의도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상이 오감도를 발표한 1934년 당시 불행한 사람들은 조선 민족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드디어 1933년 조선총독부가 1909년 말 1천3백만이던 조선 인구가 2천만 명을 넘어섰다며 제국주의 일본의 치적이라고 선전했다는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상이 조선총독부에 근무하다가 각혈로 그만두던 그해다. 이것이 오감도가 풀리게 된 시작점이다.  90년 동안 굳게 닫혀있던 오감도의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이상은 건축기사였다. 인문학도가 아니었다. 요즘 말로 하면 이공계 출신이다. 최고 실력의 건축기사로 경성고공을 졸업하면서 동시에 조선총독부에 입사할 정도로 뛰어났다. 

  그처럼 뛰어난 건축기사인 이상의 연작시 오감도는 이공계 건축공학적 관점으로 쓴 시다. 오감도를 세밀하게 읽으면 자연스럽게 그것이 드러난다. 이걸 인문학적 관점으로 해석하려고 하면 90년의 세월이 증명하듯 해석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건축공학적 관점이라는 것은 설계도면이 잘 말해준다. 설계도면은 미래의 현실을 담고 있다. 건물이든, 도시이든, 국가이든, 설계도면에는 미래의 현실이 담겨 있다. 

  어떤 추상이나, 관념이나, 사상이 아닌 미래 현실이다. 그러나 이상이 오감도에서 보여주는 건축공학적 관점은 미래 현실이 아닌 현재의 현실이다. 

  즉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를 당하는 조선과 조선 민족의 현실을 시라는 문학적 방식을 통해 설계도면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때문에 희망의 미래 현실이 아니라 절망의 현재 현실을 자각하라는 메시지다. 

  가령 무너져 가는 건물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그 건물의 현재 구조와 내부 상황을 설계도면으로 다시 그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은 1910년 강제 한일합방부터 3.1 운동, 그리고 1930년대 민족말살정책과 민족분열, 만주사변과 상해사변으로 이어지는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 시대를 사는 조선 민족의 처참한 삶과 현실을 보여준 것이다. 

  때문에 조감도에 해당하는 제목이 오감도다. 죽음과 다르지 않은 식민지 노예인 “13인의 아해”가 되어버린 조선 민족의 삶과 현실을 설계도면 형식으로 보여주겠다는 의미다. 그래서 한자 새 ‘조’를 까마귀 ‘오’로 바꿔 변용한 것이다.

      

  이러한 한자 변용은 오감도 시제 15호에서도 볼 수 있다. 거울 안에 나의 심장을 쏘는 권총은 인마살상용 ‘권총’을 의미하는 한자 주먹‘권’이 아니라 문서 ‘권’으로 변용되어 있다. 즉 문서 총으로 거울 안에 내 심장을 쏘는 것이다. 거울 안, 즉 단일의 조선 민족의식 안에 내 심장을 향해 문서 총을 쏜다는 것은 친일파의 창씨개명과 황국신민으로 귀화를 의미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한자 이름을 짓는다. 돌림자에 어떤 한자를 붙여 원하는 의미를 만들거나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상이 오감도에서 보여주는 한자 단어 변용과 한자 조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한자 변용은 의미를 만드는 것이고 한자 조합은 한글 문장을 숨기는 것이다.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발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즉 한자단어 본래의 의미를 제거하고 이상이 원하는 의미를 만들거나 숨기는 도구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한자 조합은 오감도에 100개 이른다. 이공계 건축공학적 관점의 시작법이다. 시멘트, 모래, 자갈, 철근을 섞어서 만든 구조물이 어떤 의미도 없을 듯하지만 사실 그 구조물 속에는 시멘트, 모래, 자갈, 철근, 등 한글 문장이 숨어있다. 

  때문에 구조물 자체는 의미가 없다. 그 의미 없는 구조물 속에 숨어있는 시멘트, 모래, 자갈, 철근이 의미이고 한글 문장인 것이다. 


  또한 오감도 시제 4호 뒤집힌 숫자 사이에 점 역시 이공계 건축공학적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건축기사는 설계도면의 축소비율에 민감하다. 설계도면의 축소비율은 보통 1:100에서 1:900까지 그보다 더 많을 수 있다. 때문에 뒤집힌 숫자 사이에 점을 이공계 관점으로 생각하면 된다. 

  건축설계에서 1:100, 또는 1:900으로 등으로 축소하듯 일장기 태양을 상징하는 원을 점으로 축소하는 개념이 적용된 것이다. 그래서 오감도 시제 7호에도 역시 일장기를 상징하는 점을 글자 사이 가운데 찍은 것이다.      

  오감도 시제 1호 “13인의 아해”로 알려진 “13인”이 1910년 강제 한일합방 당시 1천3백만 조선 민족 인구를 상징하는 것 또한 같은 의미의 축소비율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쉽게 풀린다. 오감도 연작시 15편은 치밀하게 설계도면 형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물이다. 

   이런 이상의 이공계 건축공학적 관점의 오감도를 읽어내고 해석한 내용인, 이상이 항일 민족 시인이고 오감도 연작시가 격렬한 항일 민족 시라는 필자의 해석을 인문학적 관점의 학자들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그것은 출판계도 망설이고 멈짓거리는 등 마찬가지인 듯하다. 

 

  아직도 오감도는 초현실주의, 자아분열, 자위, 섹스, 폐병, 각혈, 모더니즘이라며 풀리지 않는 모호함으로 변하지 않는 장벽을 치고 있다. 그러나 오감도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해석되는 설계도면 형식의 치밀한 시다. 이상은 그런 시를 쓴 시인이다.     

  지록위마라는 말이 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길래, 아니다 사슴이다! 했더니, 사방에서 손가락질을 한다. 어떤 분은 사슴으로 볼 수도 있고, 말로도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시더라.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장벽이 있다. 그 장벽을 구성하는 것은 생존이다. 한 번 만들어진 장벽은 생존으로 굳어지고 권력으로 두꺼워져서 뚫거나 부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생존이 무너지고 권력이 무너지는 것으로 받아들여서, 거품을 물고 항전하고 시퍼런 진실에 침을 뱉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막강산에도 해가 뜨고 새가 날아다니는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90년 전, 이상이 말했다. “호령하여도 에코―가 없는 무인지경은 딱하다.” 정말 딱한 세상이다.  

         

           2021년 8월   김유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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