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강릉 김씨이고 본명은 해경이다. 김해경이 처음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을 사용한 것은 소설에서는 1930년 2월부터 12월까지 조선총독부 종합홍보지였던 『조선』에 발표한 한글 장편소설 「12월12일」이고, 시는 1932년 7월『조선과 건축』에 「건축무한육각면체」라는 제목 아래 7편의 일문시를 발표하면서 부터다. 이러한 필명 ‘이상’의 유래에 대해서 기존에 알려진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1> 김해경의 필명 ‘이상(李箱)’의 유래에 대한 기존의 이야기들
1.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이상의 벗이었던 김기림의 말이다.
조선 총독부 건축기사로 근무할 당시 공사장 인부가 김해경의 성씨를 몰라 이씨라는 의미로 ‘이상(李さん)’이라 부른 것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이상의 여동생 김옥희가 1964년 『신동아』에 ‘이상’이라는 필명이 공사장에서 유래되었다고 한 것과도 연결된다.
“김해경이라는 본 이름이 ‘이상(李箱)’으로 바뀐 것은 오빠가 스물세 살 적 그러니까 1932년의 일입니다. 건축 공사장에서 있었던 일로 오빠가 김해경이고 보면 ‘긴상(金さん)’ 이래야 되는 것을 인부들이 ‘이상(李さん)’으로 부른 데서 이상이라 자칭(自稱)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깁니다.”
공사장 인부가 김해경의 성을 몰라 이상이라고 부른 것이 필명이 되었다는 김기림의 말은 이상을 즉흥적이고 기괴한 사람으로 왜곡시키는 것과 동시에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시 등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던 때문에 생겨난 추측일 뿐이다.
이상의 여동생 김옥희 진술 역시도 이상 사후, 27년이 지난 시점에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라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스스로 다시 맹신하는 진술에 지나지 않는다.
가령 위의 김기림이 말한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한자 ‘씨(氏,さん)’가 아닌 한자 ‘상’ 중에서도 ‘상자 상(箱)’을 붙인 이유가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김해경의 첫 장편소설인「12월12일」이 1930년 년 2월부터 12월까지 조선 총독부 종합홍보지였던『조선』에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연재된 사실이 밝혀졌다.
2. 이상의 경성고등공업학교 졸업 사진첩에 ‘이상(李箱)’이라는 자필 서명이 남아 있어, 건축 기사로 근무하기 이전에 이미 ‘이상’이라는 필명을 쓰고 있었다고 하는 주장이다.
또한 이상의 벗 원용석이라는 사람은 이상이 경성고공 시절 이미 필명을 쓴 것 같다고 증언했고, 이상의 건축과 동기였던 오오스미 역시 경성고공을 함께 다닐 때 ‘이상’이라는 필명을 해서체로 써서 자신에게 보여 주었다고 말한 바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필명 ‘이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필명을 만들어 보여 주었다면 그 의미 역시 함께 알려 주었어야 하는데 필명 ‘이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두 사람의 증언은 다소 신빙성이 부족하고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이러한 원용석과 오오스미의 증언 등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1930년 연재한 소설「12월12일」이외에 1931년『조선과 건축』에 세 번에 걸쳐 「이상한가역반응」 등 일문시 21편을 발표하지만 필명 ‘이상’이 아닌 본명 김해경을 사용한 이유와 1932년 3, 4월 조선총독부 종합홍보지『조선』에 발표한 첫 번째 단편 소설인 「지도의 암살」은 ‘비구(比久)’, 두 번째 단편 소설인「휴업과 사정」은 ‘보산(甫山)’이라는 필명을 사용한 까닭이 설명되지 않는다.
만약 이상이 경성고공 시절부터 자신의 필명을 ‘이상’으로 정했다면 모든 작품에 필명 ‘이상’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시에서는 세 번에 걸쳐 일문시 21편을 발표하면서 본명 김해경을 사용했고 소설에서도 ‘비구(比久)’와 ‘보산(甫山)’을 사용했다는 것은 김해경이 ‘이상’을 필명으로 확정해 놓지 않았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이상이 필명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그것은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와 추구하려는 작품 방향과 주제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은 뒤에 ‘하융(河戎)’이라는 이름으로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때문에 위의 사실과 증언은 김해경의 필명 ‘이상’이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라는 것을 모르는 과장된 추측에 불과하다. 다만, 이상이 이때부터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를 실험했을 수 있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는 될 것이다.
3. 이상과 절친한 사이였던 친구 구본웅에게 선물로 받은 화구 상자에서 필명이 나왔다는 이야기다.
이상의 어릴 적 친구 구본웅에게 선물로 받은 화구 상자에서 필명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화구 상자가 오얏나무로 만들어져, ‘오얏나무 상자’라는 뜻의 ‘이상(李箱)’을 필명으로 지었다는 것이다. 구본웅의 조카 구광모는 2002년11월1일『신동아』에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동광학교를 거쳐 1927년 3월에 보성고보를 졸업한 김해경은 현재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진학했다.
그의 졸업과 대학 입학을 축하하려고 구본웅은 김해경에게 사생상을 선물했다. 그것은 구본웅의 숙부인 구자옥이 구본웅에게 준 선물이었다.
해경은 그간 너무도 가지고 싶던 것이 바로 사생상(화구상자)이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자기도 제대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감격했다.
그는 간절한 소원이던 사생상을 선물로 받은 감사의 표시로 자기 아호에 사생상의 ‘상자’를 의미하는 ‘상(箱)’자를 넣겠다며 흥분했다.”
위의 증언이 사실이라고 하면 김해경의 필명 이상의 의미는 ‘오얏나무 상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김해경이 필명 ‘이상’으로 발표한 시의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고 다만 아주 작은 일 하나를 필명의 근거로 제시하는 증언이다.
이 증언 역시도 앞서 첫 번째 증언과 마찬가지로 이상이 가지고 싶었던 화구상자 하나를 받고 기뻐서 아호에 사생상의 ‘상자’를 의미하는 ‘상(箱)’자를 넣겠다고 흥분했고 그래서 ‘이상’이라는 필명을 만들어 사용했다면, 왜 시에서는 처음부터 필명 이상을 사용하지 않고 김해경 본명을 사용하다가 1932년 7월 처음 이상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는지 그리고 단편소설에 ‘비구(比久), ‘보산(甫山)’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
김해경이 그토록 기뻐하고 흥분했다면 그래서 ‘오얏나무 상자’를 의미하는 ‘이상’을 필명으로 사용하려고 했다면 모든 작품에 ‘이상’을 필명으로 사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것은 역시 김해경이 자신의 본명 이외에 ‘이상李箱’, ‘비구(比久)’, ‘보산(甫山)’ 등의 필명을 사용하면서 필명에 대한 많은 고민과 모색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김해경이 ‘이상’이라는 필명을 즉흥적이거나, 작은 일 하나 때문에 만들어 사용했다고 보기 어렵다. 때문에 구본웅 화가의 조카 구광모의 증언 역시도 명확하지 않은 추측이다.
이러한 진술과 증언 등은 김해경이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한글시 「오감도」에 나타난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격렬한 저항과 조롱과 절규와 목숨을 불사르는 전쟁과 다름없는 항일투쟁의 주제와는 너무나도 관련이 없는 작은 정황적 사실들을 필명의 유래라고 자의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오감도 시제4호」에서 필명 ‘이상’이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임을 알려주고 있음을 모르는 탓에 일어난 억측에 불과하다. 나아가「오감도」연작시에 나타난 이상의 피를 토하는 절규와 조롱과 전쟁과 다름없는 민족정신과 항일투쟁의 빛을 바래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2>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은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다.
김해경의 필명 ‘이상(李箱)’은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다.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라는 것은 이상이 사전에 없는 한자 단어를 만들어서 한글 문장을 숨긴 것을 말한다. 이상만의 시작법 중에 하나다.
가령 연작시 제목인「오감도(烏瞰圖)」역시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 중에 하나다. 흔하게 사용되지 않은 단어 변용 방식이다.
한자를 조합해서 사전에 없는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는 오감도 전편에 100개 이상 나온다. 그 한자 조합 단어에 한글 문장을 숨긴 것이다.
이러한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를 풀어내지 못하면 「오감도」는 해석할 수가 없다. 필자의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 풀이’로 풀어야 한다.
이것이 이상의「오감도」를 해석하는데 큰 어려움을 준 것이고 90년 동안 한국 평론가, 학자들이 인고의 세월을 보내게 한 이유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살펴봐야 할 것은 필명의 유래가 아니라 이상이 언제부터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를 만들기 시작했는가? 하는 것이다.
앞서 두 번째 유래라고 알려진 경성고공 시절 ‘이상’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는 등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김해경은 경성고공 시절부터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를 실험하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것은 1930년 2월부터 12월까지 조선총독부 종합홍보지『조선』에 한글 장편소설「12월12일」을 발표하면서 ‘이상’이라는 필명을 사용한 것과 연결되어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추측일 뿐이다. 그리고 명확하게 김해경이 ‘이상’이라는 필명과 함께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를 처음 시에 사용한 것은 앞서 살폈듯이 1932년 7월 『조선과 건축』에「건축무한육각면체」라는 제목 아래 7편의 일문시를 발표하면서 부터다.
물론 앞서 발표한 21편의 일문시에도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가 사용되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일문시를 번역해서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가 사용되었는지 등을 밝히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런데 『조선과 건축』에「건축무한육각면체」라는 제목 아래 발표한 일문시 7편 중에서 뒤에 이상이 스스로 퇴고와 수정을 거쳐서 오감도 연작시에 포함시킨 작품들이 있다. 「진단 0:1(診斷 0:1)」과 「2십2년(二十二年)」이다.
「진단 0:1(診斷 0:1)」은 「오감도 시제4호」그리고 「2십2년(二十二年)」은 「오감도 시제5호」다.
「오감도 시제4호」와 「오감도 시제5호」에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가 등장한다. 특히 「오감도 시제4호」에서는 필명 ‘이상(李箱)’이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라는 것을 알려 준다.
“이상(以上) 책임의사(責任醫師) 이상(李 箱)”
-오감도 시제4호, 부분-
“이상(以上)은” ‘이미 그렇게 된 바에는’이다. 환자 진단서 형식의 시 마지막 부분에 배치된 ‘이미 그렇게 된 바에는’이 의미하는 것은 환자 용태에 관한 문제의 진단이 끝났다는 것이고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다. 따라서 남은 것은 치료와 회복이다.
그런데 이상이 놀라운 선언을 한다. ‘책임의사 이상’이라고 한다. 자신의 필명인 ‘이상(李箱)’을 명시하고 있다.
의사는 환자의 용태를 파악하고 진단한 뒤에 병에 따라 수술이든, 약이든 처방해서 병을 낳게 하는 존재다.
그런데 이상이 스스로 “책임의사”라고 밝히는 것은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으로 뒤집혀, 식민지 지배를 당하면서 병들어 둘로 갈라져 분열된 조선 민족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처방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용된 필명 ‘이상(李箱)’이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해경의 필명 이상에 숨겨진 문장을 풀어야 “이상(以上) 책임의사(責任醫師) 이상(李箱)”이 하나의 문장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이상(李箱)”
이(李) -옥관(獄官),
옥관(獄官): 형벌에 관한 일을 심리하던 벼슬아치. 즉 형벌을 조사해서 처리하던 벼슬아치,
상(箱): 곳집(상여집), 죽은 사람을 무덤으로 실어 나르는 상여를 보관하고 만드는 집.
따라서 김해경이 필명 ‘이상(李箱)’에 숨겨둔 문장은 ‘형벌을 조사해서 초상을 치게 하겠다.’이다.
즉 조선 민족을 병들게 한 병의 원인인 제국주의 일본을 심판해서 무덤으로 보내겠다는 의미다. 때문에 ‘이상 책임의사 이상’에 숨겨져 있는 한글 문장은 ‘이미 그렇게 된 바에는 책임의사가 되어 조선 민족의 병을 고치고 제국주의 일본을 심판해서 무덤으로 보내겠다.’는 것이다.
김해경의 필명 ‘이상’이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때문에 김해경의 필명 ‘이상’에 대한 유래 등은 무의미한 추측에 불과하다.
<3> 독립전쟁 선언서 필명 "이상(李箱)"
앞서 살폈듯이, 김해경이 처음 필명 ‘이상(李箱)’을 사용한 것은 1930년 조선총독부 종합홍보지인 『조선』에 한글로 발표한 장편소설 「12월12일」이다. 그리고 시에서는 1931년 세 차례에 걸쳐 『조선과 건축』에 일문시 「이상한 가역반응」등 21편을 본명 김해경으로 발표한 뒤에 네 번째 「건축무한육각면체」라는 제목 아래 발표한 일문시 7편에서 필명 ‘이상’을 사용한다. 이것은 김해경이 자신의 필명에 대한 많은 고민과 모색을 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또 다른 고민을 한 듯하다. 1930년 장편소설에 ‘이상’이라는 필명을 사용한 뒤에 1932년 같은 지면에 발표한 두 편의 단편소설에서는 ‘이상’이 아닌 ‘비구, ‘보산’이라는 필명을 사용한 것을 보면,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 소설에서 자신의 필명인 ‘이상(李箱)’에 숨긴 의미와 연결되는 주제를 어떤 형식으로 적용시킬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한 듯하다.
때문에 필명 ‘이상’에 숨긴 의미를 주제로 적용하지 못했을 경우 또는 만족하지 못했을 경우 필명 ‘이상’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따라서 필명 ‘이상’으로 발표한 연작시 「오감도」와 일문시를 제외한 모든 시와 소설 산문 등의 주제가 필명 ‘이상’에 숨긴 의미와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소설과 산문 등에서도 시에 적용한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와 다르지 않은 이상만의 독특한 작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을 밝히는 작업은 다음으로 미룬다.
분명한 것은 김해경이 자신의 필명 ‘이상’과 함께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작품은 「오감도」 연작시다.
「오감도」 연작시는 「오감도 시제4호」에서 보았듯이 필명 ‘이상’에 숨긴 의미인 ‘제국주의 일본을 심판해서 무덤으로 보내겠다.’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때문에 필명의 유래라든지, 언제 만들고 사용했는지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필명 ‘이상’에 숨긴 한글 문장의 의미이다.
필명 ‘이상’에 숨긴 한글 문장이 보여 주는 것은, 김해경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민족정신과 항일 투쟁정신을 담은 시를 쓰기 위해서 ‘이상식 한자 조합 단어’를 실험했고, 그 과정에서 필명 ‘이상’도 만들었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오감도」연작시 15편에서 보여 주는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전쟁과 다름없는 격렬한 투쟁과 조롱과 증언의 작품 세계는 일시적이거나,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오래 준비하고 세밀하게 계획한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제국주의 일본의 형벌을 심판해서 무덤으로 보내겠다는 의미를 숨긴 필명 ‘이상(李箱)’은 해방과 독립을 위한 조선 민족 청년 시인 김해경의 독립전쟁 선언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