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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섭 Jul 05. 2024

비보이- 기억 캡슐<시인 스스로 하는 해설>

창작의 진실

  이주희 시인께서 블로그에 시집 비보이 50편 중에 “기억 캡슐”을 올려주셨습니다. 놀랐습니다. 스쳐 지나갈 시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독자의 눈, 시인의 눈은 시를 꿰뚫어 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창작의 진실을 밝힙니다.   

  

비보이- 기억 캡슐<시인 스스로 하는 해설>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 근적외선으로 촬영한 은하단 ‘SMACS 0723’. 이 망원경의 첫 공개 관측사진이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한겨레 2022.07.12.)    


 

기억 캡슐  


김유섭

   

수억 년 전 호숫가에 메타세쿼이아 세 그루 서 있었지. 

수변 지역에는 꽃창포가 피어 있었고 

흰 갈대꽃이 바람에 휘어졌었지. 

     

하늘에는 구름 맑은 공기가 흘렀고 

피부에 닿는 온도와 습도는 

오래된 연인의 품속이었지.

      

그곳이 어디였을까. 

목성 지나 명왕성 지나 

달 하나 떠올라 밤을 지키던 지평선

      

푸른 폭풍의 시절이 끝나고 암흑기로 접어들 무렵이었으리라. 

깊이 모르는 물속을 바라보며 걷다가 

햇살에 기대서서 찰칵,  

   

흑백 사진 속 그날

인류라는 낯선 형식의 미소가 

손 흔들어 기억 행성의 인사를 건네 온다.

          

【시인 스스로 하는 해설】

  1977년 발사된 보이저1호와 2호에는 금으로 도금된 30센티 크기의 디스크가 들어있다. 있을지 모르는 외계인에게 보내는 인류의 편지다. 그 안에는 115개의 이미지와 파도, 바람, 번개, 새, 고래, 등 동물들이 만드는 다양한 자연적인 소리를 모아 넣었다고 한다. 또 각기 다른 문화와 시대의 음악을 선곡해 추가했고 지구인들이 55개의 언어로 하는 인사도 들어가 있다고 한다.

     

  재미있다. 보이저1호, 2호가 저 광대한 우주로 날아간 지 47년이다. 얼마의 세월이 더 지나가면 외계인이 지구에서 인류가 보낸 편지를 받아보게 될까? 만약 외계인이 있어서 더구나 지적 생물체라면, 인류가 보낸 편지를 받아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광대한 우주에 지구라는 행성이 있고 그 속에 인류와 문명이 있고 그들이 만든 언어, 음악, 자연의 소리를 듣고 놀랍게도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풍경이라며 반갑게 웃을까? 아니면 울까? 아니면  인간과 너무 다른 지적 생물체여서 쓸모없는 쓰레기라며 쓰레기통에 처넣어버릴까? 그때까지 지구가, 인류의 흔적이라도 존재할까? 사실 칼 세이건은 인류를 향해 저 디스크를 보낸 것이리라. 

    

  “기억 캡슐”은 여기에서 출발한 시다. 광대한 우주 속에 먼지보다 더 작은 먼지에 지나지 않은 지구, 그 속에 인류라는 기적의 생물체들, 그들이 누리는 눈부신 자연과 문명 그러나 들여다보면 전쟁과 자연 파괴와 편견과 차별과 불공정과 착취와 거짓과 폭력이 난무하는 멸망으로 가는 전차다.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광포한 탐욕 덩어리다.  

    

  어느 날 호수가 있는 풍경 좋은 식당에서 호사로운 점심을 먹고 나오다가 꽃창포 핀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으면서 한 생각이다. 어쩌면 이 사진 한 장이 멸망해버린 지구에 남아있을, 또는 우주에 떠다닐지도 모를 인류라는 흔적의 유일한 기억 캡슐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우주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독자에게 동의를 구하는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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