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휴식은 어렵지만, 작은 쉼으로는 다시 살아진다

내 하루에 이미 숨어 있던 ‘작은 쉼’을 발견하기까지.

by 서이림

어릴 때, 부모님은 피곤해 보일 때마다 약국에서 작은 갈색 병 하나를 사 오곤 했다. 나는 그게 ‘만병통치약’이라고 믿었다. 병에는 늘 같은 글자가 적혀 있었다.


피로회복제.


부모님은 그걸 마시고 눈을 감았다.

숨을 고르고,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하루를 버텼다.

어린 나는 그게 어른들의 ‘회복의 비밀’이라 생각했다.


어른이 된 지금,

감기몸살로 누워 있는 나에게 남편이 사 온 약봉지 안에도 똑같은 드링크제가 있었다. 라벨엔 그대로 적혀 있었다.


피로회복제.


이상하게 그 글자를 보는 순간 어릴 적 부모님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지친 어깨, 무거운 눈빛, 말없이 약을 마시던 모습.


‘저걸 마시고 정말 회복이 됐을까?’

‘그 많은 피로는 어떻게 버텼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러다 깨달았다. 어쩌면 부모님을 회복시킨 건 약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 순간, 잠시라도 자신에게 허락할 수 있었던 ‘쉼’ 아니었을까.


작은 병 하나에도 의지해야 할 만큼 삶이 빠듯하고 팍팍했으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 하루 안에도 이미 쉼은 있었다.


아침에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오는 길,

공원 한 바퀴 도는 시간.

청소를 하면서 마음이 같이 정리되는 순간.

커피 한 모금 마시며 잠깐 멍해지는 찰나.


나는 그걸 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 작아서, 별거 아닌 것 같아서, 의미 없다고 여겨서.


하지만 작은 쉼은 시끄럽게 오지 않는다. 조용히, 묵묵히, 반복되며 우리를 버티게 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작은 쉼을 발견하고, 인정하고,

이름을 붙이는 연습을 한다.


아침 산책은 ‘숨 고르기 산책’,

청소는 ‘공간 리셋 타임’,

커피 한 모금은 ‘멈춤 한 스푼’.


이렇게 이름을 붙여주면 그 순간들이 나를 회복시키고 있었던 쉼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큰 쉼은 삶을 바꾸지만, 작은 쉼의 누적은 나를 살린다. 그리고 나는 그 작은 쉼들 위에서 조금씩, 천천히 다시 살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