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지키는 새로운 선택
작은 일이었다.
노트북 자판 소리가 시끄럽다는 한마디에, 내 하루는 송두리째 흔들렸다.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 가슴이 철렁하고, 존재까지 불안해지는 걸까.
그 답은 뜻밖에도...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스며들자 마음도 함께 설렜다.
“아, 연휴 시작이다!” 하며 상쾌하게 일어났다.
오늘은 계획이 있었다.
자연 속 도서관에서 나무를 바라보며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컴퓨터도 하기로.
좋아하는 커피와 복숭아, 라면, 김밥까지 챙기며 소풍 가는 기분이었다.
도서관에 도착하니 운도 따랐다.
창밖 뷰가 가장 좋은 자리, 짐 두기도 편한 컴퓨터실 자리를 딱 잡았다.
책을 읽다, 이 기분을 글로 남기고 싶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남성이 성큼성큼 다가와 내 귀에다 뭔가를 속삭였다.
“자판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노트북을 하시려면 디지털실을 이용해 주세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여기 원래 노트북 자리인데? 얼마나 예민하면…’
스스로 무례하고 잘못된 사람처럼 느껴지는 이 감정을,
누군가에게 탓을 돌리고 싶었다. 민원을 넣은 사람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자기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내 앞에 앉은 남성이 헤드폰을 끼고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있었다.
‘너지? 너가 틀림없어’
그를 뚫어쳐다보자 눈이 마주쳤고, 애매한 눈싸움이 시작되었다.
기분은 이미 엉망이 됐다.
디지털실로 갔지만 마음이 틀어져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주차장에 내려가니 내 차 앞에만 불법주차.
차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더운 날씨에 땀은 비 오듯 흘렀다.
아침의 설렘은 온데간데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이게 하루를 망칠 만큼 큰일일까? 책을 읽으면 됐고, 디지털실로 가면 됐는데.
왜 이렇게 작은 일에도 가슴이 철렁하고, 존재가 흔들리는 불안이 밀려올까?’
곰곰이 들여다보니, 이건 단순한 짜증이 아니었다.
수치심이었다.
수치심은 “내가 뭘 잘못했다”가 아니라,
“내가 잘못된 사람 같다”는 감정이다.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 감정은 애착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어릴 때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비춰주는 ‘미러링’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건강한 자기감이 형성된다.
그게 왜곡되거나 무시되는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에도, 누군가의 표정·말투·행동에서 그 시절의 기억이 자극되면,
마치 존재 자체가 흔들리는 듯한 불안을 느끼게 된다.
이번엔 달라지고 싶었다.
“내가 왜 이렇게 예민할까”
“나는 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을까”
“그들은 왜 이렇게 야박할까”
이런 생각 대신, 내 마음을 읽고 다독였다.
‘공공 규칙을 지키고 타인을 배려하고 싶었는데,
예의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속상했구나.
살다 보면 모를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어.
그게 네 존재 자체를 흔들 수는 없지.’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비춰주고 반응해 주었다.
오늘 하루를 결정짓는 건,
외부 자극이 아니라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걸 알았다.
다시 마음속에 싱그러운 햇살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