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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해 Feb 28. 2022

나의 세상에 등장해준 너에게

디얼 마이 아토, 푸키

 

 릴 적, 그러니까 내 나이 한 일곱 살쯤이었을까. 진주는 그 시절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친구였다. 얼굴이 예쁘고 인기가 많은 까닭도 있었지만, 그 아이를 부러워한 가장 큰 이유는 집에 귀여운 강아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엄마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우리 집 강아지는 복슬강아지 학교 갔다 돌아오면 멍멍멍’ 노래도 불러보고, 내가 똥, 오줌도 치우고 열심히 돌볼 테니 우리도 제발 강아지 한 마리만 키우자고 나름 논리 정연하게 조르기도 해봤지만 엄마는 무척이나 단호했고, 난 결국 엄마를 설득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반려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나 의식 수준이 지금과 많이 다르기도 했고, 어떤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일인지도 모른 채 그저 어린 마음에 ‘함께 사는 동물 친구’가 마냥 부러웠던 모양이다.


  그리고 내 나이 서른이 되던 해, 나에게도 드디어 첫 반려견이 생겼다. 한국에선 흔히 블랙독이라 불리는 새까맣고 짧은 털을 가진 미니어처 핀셔. 같은 종의 아이들과 달리 유독 큰 덩치 탓에 종종 도베르만 새끼로 오해받곤 하는 나의 강아지.


 사실 난 조그맣고 털이 하얀 복슬강아지를 기르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이 한인 커뮤니티에서 찾은 강아지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다. 직접 보고 정하자는 남편 손에 이끌려 아토와 처음 만났을 때 난 사랑에 빠져버렸다. 함께 센트럴 파크에 갔던 날, 한 아주머니는 나에게 ‘너 보물을 얻었구나!’ 말했다. 보물 같고 선물 같은 존재. 그래서 우린 순우리말 선물이란 뜻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아토와 함께한 지 일 년 하고 한 달째 되던 날, 다리는 짧지만 긴 허리를 가진 커피우유색 닥스훈트 푸키를 만났다. 형제자매 중 유독 작고 약해 보였던 강아지. 구석에 홀로 앉아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던 푸키의 눈빛을 지금도 기억한다.  첫 눈 맞춤의 순간 서로의 인연임을 알아챘고, 그렇게 우린 가족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막연한 불안함에 초조할 때, 감당하기 힘든 일에 무너질 때,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허덕일 때, 이유 없이 우울하고 무기력할 때도. 남편과 다투는 날, 피곤한 인간관계에 지치는 날, 온 우주에 나만 혼자라 느껴지는 날에도 아토와 푸키는 늘 내 곁에 함께였다. 그저 따뜻한 몸의 온기, 순수한 사랑의 눈빛 만으로도 내게 최대한의 위안이 되어준다. 우린 분명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지만, 가장 가깝게 감정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위로하고 있다.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이해 받음을 느끼게 한다.


 누군가의 반려견 혹은 반려묘의 투병 일지나 이별 소식을 종종 접하곤 한다. 그런 글을 읽을 때면 어김없이 눈물범벅이 되고, 꽤 오랫동안 슬픈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우리에겐 아직 먼 이야기라며 회피하려 해 보지만, 삶이라는 게 실은 아무도 모르는 불확실함 투성이잖은가.


 나는 우리의 이별을 이기적이지 않게 감당하고 참아낼  있을까 수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다가 결국   순간을 상상해버리고 만다. 힘들어진 맘을 달래느라 옆에서 곤히 잠든 아토 푸키 손을 만지작댄다. 잠들었던 강아지들은 뒤척이며 눈을 뜬다. 지금  순간조차  이렇게나 이기적일 뿐이다.


나의 세상에 등장해 준 아토야 푸키야,

이제 여기는 너희의 세상이 되어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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