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존경하고 좋아하는 여자 선배가 있다. 알고 지낸 지 10년이 훌쩍 넘었고, 공적인 자리는 물론 사적인 공간에서 먹고 마시며 보낸 시간도 많다. 기쁜 일, 힘든 일을 알게 되면 어김없이 서로 나눈다. 무엇보다 나보다 10살 넘게 어른인 분이다.
그런데도 선배는 처음 만난 그때부터 지금껏 나에게 존댓말을 한다. 직장에서 만난 관계이니 초반에야 그럴 수 있지만, 아직까지 내게 존대를 하는 게…솔직히 좀 서운한 적도 있었다.
‘날 그만큼 가깝게 여기지 않으시나?’
‘왜 격식을 차리시지. 내가 서운하게 해 드린게 있나?’
내가 꼰대세대라 그런지도 모른다. 존댓말은 상대를 존중해주는 말인 걸 알면서도, 한편으론 거리감이 느껴지곤 한다. 나는 “선배~!”라고 친근하게 부르면서, 술 한 잔 걸치고 감정이 올라올 때면 “언니님!”이라고 앵기고 싶을 정도로 더 가까워지고 싶은데 말이다.
선배도 대화가 무르익으면 반존대 비슷하게 자연스러운 말이 나오곤 하지만, 결코 완전히 “○○야” “~해” 처럼 반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술 좀 마시고 헤어질 때도 어김없이 “잘 들어가요~”라고 인사해 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돌아보니, 좋은 관계는 적당한 거리를 둬야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적당한 거리를 두다 보니 좋은 관계가 된 걸 수도 있고…결국 같은 말일 지도 모른다.
난 원래가 정도 맘도 잘 주는 성향이다. 나에게 웃어주고 친절하게 대해 주는 사람에게 어떻게 거리를 둘 수 있을까. 입사해서도 집에서 간식을 준비해 동료들에게 가져가고, 밸런타인·화이트데이 같은 명절도 챙기고, 생일을 맞은 사람에겐 케이크를 사서 쉬는 시간에 파티도 열고 그랬었다.
하지만 내가 지나치게 정을 준 사람들, 그러니까 ‘너무 가깝게’ 지낸 사람들과의 관계는 대부분 실패했다. 망가지고 어그러졌다. 안 좋게 끝난 애인 관계처럼. ^^
결론은 내 잘못이다.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나는 일로 만난 사이라 해도 그 안에서 좀 더 개인적인, 마치 가족이나 연인 사이에 생기는 어떤 특별한 감정이 있을 수 있다고 믿었다. 거기에서 힘을 얻으려 했다.
고백하자면 때때로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한 회사 동료들, 업무상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에게 배우자나 연인, 친구나 해줄 법한 위로나 공감을 원했던 것 같다. 그래서 기대한 것만큼 관심이나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 서운해하고 토라졌고 결국 내 기억엔 좋지 못한 관계로 각인돼 버린 거다.
좋게 말하면 순진하고 철이 없었고, 냉정히 말하면 나잇값 못하고 민폐를 끼쳤다. 사람들은 각자의 사생활에서 정신적·감정적 에너지를 쏟는 것만으로도 벅차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내가 업무상 만나는 관계에서조차 비슷한 에너지를 원했던 거다.
지나간 일, 아쉽게도 멀어져 버린 이들을 원망하는 게 아니다. 이제는 나야말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관계가 맘 편하고 좋다.
업무상으로 만났는데 왠지 나와 통하는 것 같고, 더 특별한 관계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인간적인 ‘유대관계’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일 관계’가 특별해진 경우가 많다. 주고받을 이해관계가 더 많아졌단 얘기다.
나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아니, 오히려 일을 할 때 이해관계가 많아지는 건 좋은 일이다. 상대방에게 내가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상황이라는 얘기니까.
우리는 모두 나에게 득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잘하려고, 잘 보이려고 한다. 그 마음과 행동을 위선이나 거짓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해도 그건 그것대로 ‘진심’일 거다. 그런 면에서 일하며 만난 관계가 무르익어 형님·아우·언니·누님 하는 호칭들이 오가는 것도 아주 거짓만은 아니다. 일로 만난 그 순간, 그 동안 나누는 친밀감으로 충분하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不可遠)’. 너무 가까워도 안되고 너무 멀어도 안된다는, 업무상 관계에 대한 유명한 조언이다. 오랫동안 이 말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이제는 꽤 동의한다. 존댓말도 이 조언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인 것 같다. 본의 아니게 선을 넘거나, 상대를 불편하게 하거나, 실수할 가능성을 크게 줄여주니까 말이다.
소중하고 길게 이어가고 싶은 관계일수록 좁은 계곡에서 휘몰아치는 급류보다는, 넓은 강에서 유유히 흐르는 잔잔한 물결 같은 사이가 더 나은 것 같다.
오늘따라 늘 존댓말로 반겨주던 선배의 인자한 미소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