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돌을 사랑하는 삶.
아이돌을 사전에 검색해 보았다.
아이돌 : 본디 신화적인 꼭두각시를 뜻하는
영어 IDOL. 그러나 다른 뜻은 다음과 같다.
주로 청소년과 청년에게 가장 높은 인기를 얻는 연예인.
나는 후자에 관심이 더 많다. 그리고 연예인 중에서도 특히 K-POP 아이돌 덕후이다.
나의 아이돌 덕질 역사는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중학생이던 2005년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SS501, 쥬얼리, 보아 등 쟁쟁한 아이돌들이 활동을 하던 시기였다. 특히 교복을 입고 하루만 네 방의 침대가 되고 싶다며 등장한 동방신기는 수많은 소녀들에게 설렘을 주었으며, 그 시절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슈퍼스타였다.
동방신기를 데뷔시킨 sm엔터테인먼트는 아이돌계의 명가답게 차세대 주자로 슈퍼주니어를 데뷔시켰고 역시 성공시켜 인기의 정점을 찍게 만들었다.
또한 똑똑한 소속사는 두 그룹을 컬래버레이션 하여 연말 캐럴송을 부르게 하니 항상 싸우던 두 그룹 팬덤이 쉬는 시간 함께 무대를 돌려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SS501이 'Snow Prince'라는 다소 오글거리는 제목과 콘셉트의 겨울 노래를 발매했으나 이 노래 역시 모두의 컬러링 혹은 벨소리로 히트하며 마음속에 왕자님 한 명쯤은 품게 해 주었다. 이렇게 산뜻한 신인 그룹들이 범람하는 때에 나도 물론 그들의 노래를 좋아하고 즐겼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진정한 찐덕. 마음의 친정. 누구나 한 명쯤 품고 있다는 본진, 우리들의 구 오빠. 그런 그룹은 '신화'였다.
우연히 KBS 예능 '해피투게더'에 컴백한 신화의 모습을 보고 아니 저렇게 웃긴 그룹은 누구인 거지?
이러고 미친 듯이 찾아보니 이미 신인들과 짬이 안 되는 데뷔 7년 차 그룹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노래도 그동안 관심을 안 가졌을 뿐 내가 아는 노래들이 상당히 많았다. 활동했던 기간이 길었던 만큼 히트한 곡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얼굴도 잘생긴 그들은 심지어 sm출신이었다.
그때부터 바로 모든 영상을 섭렵했고 무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마침 그들은 sm을 떠나 새로운 소속사에서 새 출발을 하였고 그런 의미에서 노래 제목을 이렇게 지었다며 들고 나온 노래가 'Brand New'였다.
(훗날 이곡은 신화에게 첫 대상을 안겨주게 된다)
강렬한 사운드에 기승전결이 확실한 곡에 맞춰 무대 구성은 뮤지컬 형식으로 해보고 싶었다며 그 당시 파격적으로 여자 안무가와 함께 합을 맞춰 춤을 추었었다. (사실 지금도 레전드로 남아 있긴 하다. 남자 아이돌이 여자 안무가와 합을 맞춰 춤을 추는 경우는 전무후무하다)
아무튼 무대에서 주는 강렬함과 프로페셔널 한 모습, 그러나 무대 밖에서는 아이같이 까불거리고 친근한 동네 오빠들 같은 모습들에 반해 나는 그 시절 그들을 열렬히 응원했다. 친구들이 모두 너는 왜 나이 많은 아저씨들을 좋아하냐고 할 때에 나는 꿋꿋하게 그들을 응원했다.(생각해보면 그때 신화의 나이는 20대 중반이었을 뿐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가 아니라 mp3로 음악을 감상하던 시절이라, 항상 용량의 제한에 시달려야만 했다. 따라서 어떤 음악을 골라서 들을지에 대한 고찰이 그날 하루의 무드를 좌우했었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학원에서 집으로 어떤 음악을 들으면서 이동할지를 따지면서 정말로 내가 듣고 싶은 음악만 선택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나의 그 중요한 최적의 리스트의 일 순위는 무조건 신화 음악이었다. 타이틀곡뿐만 아니라 수록곡까지 모두 섭렵하기 위해 매일매일 음악 파일을 다시 뺐다가 넣다가 하면서 리스트를 채워나갔다. 다른 가수의 음악은 어쩌다 듣고 대다수는 신화로 가득했다.
그래도 행복했다. 신화의 음악들은 어떤 날은 나를 더 미소 짓게, 또 어떤 날은 나를 위로하고, 다른 어떤 날은 그냥 가만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때까지 나의 신화사랑은 계속되어 나의 주변 친구들은 모두 나를 생각하면 신화를 생각할 정도로 덕질을 했었다. 나의 덕질은 항상 덕밍 아웃(덕후의 세계에서 내가 덕후인 것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고 또 도저히 숨겨지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 또는 열렬히 응원하는 것을 낯부끄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런 사람들은 또한 이렇게 말을 한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내가 그동안 들어본 이유를 쭉 나열해보겠다.
첫 번째,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좋아해서 뭐하냐.
두 번째, 나이가 몇인데 왜 아직도 아이돌에 관심이 많은 거니.
세 번째, 어차피 그렇게 좋아해서 그 사람이 너에게 밥 먹여주는 건 아니잖아.
네 번째, 얼굴에 분칠 한 사람 믿는 게 아닌데 이상한 사람이면 어떡해.
다섯 번째, 어차피 실력도 없고 얼굴만 그럴듯하고 본업을 못하잖아 가수가. 춤만 추고.
그럼 나야말로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냥 좋을 수 도 있잖아?
내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들고 나에게 힘을 주는데
좋아하면 왜 안 되는 거지?
무엇이든지 그날 하루를 살게 할 것이라면,
아주 자그마한 거라도 그게 뭐가 됐든 무조건 힘을 다해서 매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 본 적이 있다.
무엇을 해서라도 당장 이 괴로운 마음을 어떻게든 이겨내고 싶은데,
도저히 당장 나를 파괴할 만큼 용기도 없었고
그렇다고 어디서 술을 마시고 하룻밤을 아무렇게나 놀아버린다고 해도 다음날이면 해가 떠버리는데 그게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푹 빠져서 모든 걸 잊게 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그때 만나게 바로 덕질이었다.
덕후라는 건 결국 깊게 빠진다는 건데,
깊게 빠진다는 건 어쩌면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잊고 싶어서 시작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때의 나는 필사적이었고 내가 힘들 때 그들의 음악이 나에게 다가와준 건지, 아니면 그저 머물러 있던 음악을 내가 발견한 것뿐 인지 모르겠지만
그들로 인해 위로받고 웃었다면 그 시간들을 싫어할 이유가 있을까?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쉽게 폄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응원하게 된 것이다.
그냥 이게 전부다. 모든 덕후의 마음은 이럴 것이다.
나를 알든 모르든, 그 사람이 내가 생각한 사람이든 아니든, 남들이 보기에 외모가 별로든 혹은 외모만큼 실력이 따라가질 못하든.
그냥 내가 응원하는 나만의 스타인 것이다.
왜냐 그러고 싶으니까. 그냥 푹 빠지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누구나 힘들 때 자신의 친구, 자신의 연인, 자신의 동료 등 수많은 인연들에게 도움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연들을 때로는 다 알 것 같기도, 때로는 다 모를 것 같기도 할 것이다.
설사 아무리 가까운 연인이라 할지라도, 아니 심지어 가족일지라도 내가 아닌 타인을 결코 함부로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면 우린 서로 같은 뿌리에 나왔어도 결국엔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고 상대를 바라보는 건 나 자신의 '관점'이라는 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것이니까.
결국 나 자신의 또 다른 모습으로 상대를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저 멀리 나를 모른다고 하여도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차피 또 다른 나 자신이니까.
그들을 사랑하는 일은 동시에 나를 사랑하는 일이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출발하여야만 사랑할 수 있으니까.
스스로의 구원은 어떤 도움을 받더라도 결국 스스로가 해내듯.
마지막 열쇠는 항상 나에게 있다.
그러니 당신이 운명의 상대를 소개팅이나 미팅에서 만나듯 덕후 들도 똑같다.
소위 말하는 덕통 사고(덕후가 교통사고를 당하듯 아이돌의 매력에 치여버리다)를 당해 덕후가 되는 루트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어쩌면 사람들은 일방적인 사랑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팬들이 그렇게 사랑해주지만 연예인들은 거만해서 알지도 못하는데 뭣 하러 나서서 '을'을 자처하냐며 혹 기분 나쁘게 볼 수도 있겠다.
가끔씩 정말로 안 좋은 경우 팬의 마음을 무시하고 나쁘게 버려버리는 연예인들도 있으니까. 나의 스타가 언제나 매 순간 좋은 모습을 보여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그냥 나는 순간을 즐기는 덕후이다.
순간 음악이 좋아서, 퍼포먼스가 좋아서, 그들이 그 순간엔 진실되어 보여서.
그래서 아직도 신화를 덕질하냐고?
그러면 서두에 내가 ‘구 오빠’라고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의 구 오빠 신화는 대학교 때 첫 콘서트를 가 보았고, 그 이후로 몇 번의 콘서트를 더 가고 때로는 앨범을 열심히 사 모으다가 '탈덕'을 했다.
내가 탈덕을 했을 때 주위의 친구들은 '왜 무슨 논란 있대?'라고 물어왔다.
물론 대다수의 덕후 들은 자신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문제가 발생하면 탈덕을 하곤 하는데,
꼭 그 스타에게 논란이 있어서만 탈덕을 하는 건 아니다.
그냥 오랜 인연이 지속되면 매일매일 보고 싶지는 않듯.
어쩌다 연락을 오랜만에 하는 친구여도 어색하지 않고 반갑듯.
다만 그냥 그렇게 사는 게 바쁘면 멀어지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학창 시절에서 대학교까지 함께한 신화와 멀어져 갔다.
그리고 가끔 그리운 날에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처럼 반갑게 그들의 음악을 찾아들었다.
여전히 신화는 나에게 처음으로 앨범을 산 가수, 처음으로 콘서트를 간 가수,
그 콘서트를 가기 위해 처음으로 알바라는 걸 해보게 한 가수,
처음으로 체조경기장에 가보게 해 준 가수,
처음으로 연예인에게 편지를 써보게 해 준 가수,
아직도 외국영화를 볼 때 가운데 좌석이 마땅치 않으면 왼쪽으로 예매하는 게 좋다는 지식을 기억하게 해 준 가수
(한국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게 익숙하니까 왼쪽이 더 시각적으로 자막에도 집중하고 눈이 편하다고 함.이라고 김동완이 알려줌) 등등 인생의 여러 조각을 같이 나눈 가수이다.
그들과 그들의 노래를 생각하면 나는 어쩐지 아련해진다. 다시는 못 돌아갈 그때의 마음이 너무 순수했고 그래서 즐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난 앞으로도 계속 아이돌 덕후 일 것이다. 나이가 몇 살 이든 나에겐 역시 아이돌 음악이 제일 신나고 기대가 된다.
여전히 아이유의 신곡을 듣고 때때로 마마무의 노래도 듣고, 엔플라잉이나 데이 식스 같은 밴드 아이돌 음악도 듣고, 퍼포먼스는 역시 방탄소년단이지 하고 감탄도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하고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건 뭐든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생각난 김에 역시 나의 최애 곡 신화 Trippin'을 들으러 가야겠다.
‘그대 내 맘에 들어왔죠. 더는 내 앞에 두려울 게 없죠. 새까만 밤 너무 깜깜한 밤.
내 곁에 있어 나는 마치….’
중학생 소녀가 mp3로 듣던 음악을 이제는 스피커로 들으며 맥주와 함께 오늘의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