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에 맡길 필요 없는 일이 되길 바라는
오늘은 언덕에 앉아 멍하니 노을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새빨갛게 물든 하늘에 감탄하며 사진 몇 장을 찍는 것에 그칠 작정이었으나, 일순간 호기심이 치고 올라왔다. 노을이 다 사라져 갈 때까지 그 찰나의 순간을 목격하면 어떤 기분일까. 그리하여 풀밭에 뭐하나 깔아 둘 생각도 안 하고 바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노을을 응시하였다. 노을이 사라져 가는 순간은 웅장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저 일순간이었다. 일순간 어둠이 찾아왔고, 물감에 물을 한 번에 엎질러버린 듯 눈 깜짝할 새 그렇게 사라져 갔다. 서서히 번져가듯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의 시작과 달리 끝은 알아챌 수도 없게 다가왔다. 어둠은 늘 그렇게 어느새 다가온다.
요새는 왜 글을 쓰지 않느냐고 묻는 지인이 있었다. 대부분은 알아채지도 못할 일을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알 수 없는 책임감이 샘솟았다. 어떤 이야기든 쓰지 않으면 넌 영영 어둠에 잠식되고 말 거야. 그렇게 혼자 남아 쓰레기와 뒹굴겠지. 밤이 되면 속삭이는 말들이 무서워 쫓기듯 글을 쓰던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렇게 쓰고 나면 애처롭게도 아주 작은 성취감이 들곤 했다. 늘 나를 골목 끝까지 몰아붙이고 나서야 나는 아주 야위어버린 칭찬 하나를 나에게 겨우 건네줄 수 있었다. 좀 더 즐겁게 쓸 수는 없을까? 생각에 골몰하던 사이 어둠이 찾아왔다.
발버둥 치고 가라앉고 다시 손을 흔들고 그리고 다시 울부짖고 마음이 마음대로 안 돼서 애가 타는 날들이 많아졌다. 마음을 쥐고 흔드는 주인이 내가 될 수 없는 게 답답했다. 그래, 속된 말로 나는 나쁜 년이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꼴이 참 병신 같구나. 그러는 순간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기분은 여전히 저 멀리 혼자 몇 미터는 질주하고 있었다. 그래, 육신을 여기 두고 갈 테니 너 혼자 달려가. 차라리 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못하는 머저리처럼 여기 그대로 숨어있을게.
어둠이 찾아드는 하늘 위에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지긋지긋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행운을 한 번만 저에게 주세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지만 가끔 너무 견디기 힘들 정도로 힘들어요.
그러자 그 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별이 아니라 비행기였던 모양이다. 나에게로 점점 가까워진다. 그러나 나는 별이라고 믿기로 한다. 언젠가 흡혈귀는 있다고 믿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한 존재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 비행기를 별이라고 믿기로 한다. 오늘 내 기도가 헛되지 않을 거라고 믿기로 한다. 언젠가 이 지긋지긋한 마음을 벗어나 영원히 사랑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때로는 짙은 어둠에 가려져 도무지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며 길 한가운데에서 눈물짓더라도 또다시 물감을 부은 듯 아름다운 하늘이 찾아올 행운을 믿는다. 아니다 말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반드시 찾아올 테니 이제 나도 행운에 걸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언제나 믿겠다 오늘 바라본 별빛을.
*오늘의 제목은 노래 제목에서 따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