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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Sep 13. 2021

paint me naked

운에 맡길 필요 없는 일이 되길 바라는

오늘은 언덕에 앉아 멍하니 노을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새빨갛게 물든 하늘에 감탄하며 사진 몇 장을 찍는 것에 그칠 작정이었으나, 일순간 호기심이 치고 올라왔다. 노을이 다 사라져 갈 때까지 그 찰나의 순간을 목격하면 어떤 기분일까. 그리하여 풀밭에 뭐하나 깔아 둘 생각도 안 하고 바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노을을 응시하였다. 노을이 사라져 가는 순간은 웅장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저 일순간이었다. 일순간 어둠이 찾아왔고, 물감에 물을 한 번에 엎질러버린 듯 눈 깜짝할 새 그렇게 사라져 갔다. 서서히 번져가듯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의 시작과 달리 끝은 알아챌 수도 없게 다가왔다. 어둠은 늘 그렇게 어느새 다가온다.

요새는 왜 글을 쓰지 않느냐고 묻는 지인이 있었다. 대부분은 알아채지도 못할 일을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알 수 없는 책임감이 샘솟았다. 어떤 이야기든 쓰지 않으면 넌 영영 어둠에 잠식되고 말 거야. 그렇게 혼자 남아 쓰레기와 뒹굴겠지. 밤이 되면 속삭이는 말들이 무서워 쫓기듯 글을 쓰던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렇게 쓰고 나면 애처롭게도 아주 작은 성취감이 들곤 했다. 늘 나를 골목 끝까지 몰아붙이고 나서야 나는 아주 야위어버린 칭찬 하나를 나에게 겨우 건네줄 수 있었다. 좀 더 즐겁게 쓸 수는 없을까? 생각에 골몰하던 사이 어둠이 찾아왔다.

발버둥 치고 가라앉고 다시 손을 흔들고 그리고 다시 울부짖고 마음이 마음대로 안 돼서 애가 타는 날들이 많아졌다. 마음을 쥐고 흔드는 주인이 내가 될 수 없는 게 답답했다. 그래, 속된 말로 나는 나쁜 년이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꼴이 참 병신 같구나. 그러는 순간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기분은 여전히 저 멀리 혼자 몇 미터는 질주하고 있었다. 그래, 육신을 여기 두고 갈 테니 너 혼자 달려가. 차라리 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못하는 머저리처럼 여기 그대로 숨어있을게.

어둠이 찾아드는 하늘 위에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지긋지긋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행운을 한 번만 저에게 주세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지만 가끔 너무 견디기 힘들 정도로 힘들어요.

그러자  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별이 아니라 비행기였던 모양이다. 나에게로 점점 가까워진다. 그러나 나는 별이라고 믿기로 한다. 언젠가 흡혈귀는 있다고 믿는 사람이  명이라도 있는  존재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 비행기를 별이라고 믿기로 한다. 오늘  기도가 헛되지 않을 거라고 믿기로 한다. 언젠가  지긋지긋한 마음을 벗어나 영원히 사랑을   있을 거라고 믿는다. 때로는 짙은 어둠에 가려져 도무지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며  한가운데에서 눈물짓더라도 또다시 물감을 부은 듯 아름다운 하늘이 찾아올 행운을 믿는다. 아니다 말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반드시 찾아올 테니 이제 나도 행운에 걸지 않아도  것이다. 언제나 믿겠다 오늘 바라본 별빛을.




*오늘의 제목은 노래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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